지치지도 않고 또 왔네
7)
처음 볼 땐 모든 장면이 또렷하고 화려해 손꼽기 어려웠지만 2회차에선 제일 좋았던 순간을 고를 수 있게 되었어요!
그건 바로 슌과 키쿠오의 기량 차이가 극명하게 도드라진 도죠지의 첫 무대였는데요.
신기하게도 이 무대에선 무섭다! 고 느낀 순간이 한 번도 없었고 (와중에 자꾸 누가 슌짱 입술 저렇게 옹졸하게 바르셔서... 몰입 파사삭 이었던걸 제외하고)
품격이랄지 무게가 다르게 전해질만큼 키쿠오의 기품이... 정말 어나더 레벨이었어요... 기품으로 무대를 찢어버릴 수도 있군요?
TMI지만 제가 동양꽃꽂이를 참 좋아해서 일본의 이케바나를 오래 배웠습니다. 여기에 가장 큰 매력은 꽂는 사람의 기량을 드러내는 포인트가 꽃의 가짓수를 덜어내면 덜어낼수록 나타난다는 거였어요.
서양 꽃꽂이는 좀 화려하게 꽃을 많이 꽂아서 저에게는 그 부피감이 과하다 싶게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이케바나는 예리하게 다듬은 감각으로 정말 필요한 곳에만 선을 더해 화면을 나누는 작업이 아주 짜릿하게 좋았어요.
이 얘기가 왜 나오냐, 저 첫 무대의 키쿠오가 저에게는 딱 이케바나처럼 보였거든요. 기량을 십분 발휘해 최소한의 선과 면으로 표현된 작품처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딱 알맞은 무게로, 자신이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와 가치를 아는 표정으로 자리한 꽃처럼.
상대적으로 슌짱은 (제가 느끼기에) 아직 덜 익고 무게가 좀 가볍게 보이는 연기였달까요! 도죠지에서의 두 사람의 캐릭터를 알지 못하기에 섣부른 판단일 수 있겠습니다... 어서 국보의 원작소설과 올려진 작품공부를 두더지처럼 파보고 싶어요.....
기가 막히게 느껴진 키쿠오의 동작은 천을 펼쳐 입으로 물었다가 놓으며 천천히 몸을 움직이는 장면이나 무릎을 꿇고 앉아 입술에 바르려 붓에 염료를 개는 장면의 우아함은 진짜... 돌아버려ㅜ
또 좋아하는 장면은 무대에 난입한 무뢰한과 그 일당들에 의해 업신여겨진 채 옥상에 간 키쿠오의 모습이었습니다.
맞아서 생긴 멍인지 번진 화장인지 모를 붉은색이 볼과 눈매, 입매에 가득한 채로 위스키를 병째 들이키는 키쿠오.
스틸컷으로 보면 선명한 블루였지만(의상인 레드와 딱 알맞게 선명하도록) 실제 장면에서의 느낌은 전반적으로 회색이었어요. 아니 근데 춤선이 왜 그렇게 예쁜겨? 곧은 등과 동그랗게 말았다 펼치는 팔꿈치와 팔의 선이 너무 아름다웠어요ㅠ(발레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것도 변한 지점입니다만 처음 봤을 땐 마더의 김혜자 선생님의 라스트춤 + 조커의 슬픔 가득한 그 춤과 닮았다고 느껴져
솔직히 마음을 닫고 감상했던 것 같아요.... 슬픔을 춤으로 승화해? 아 이런 거 진짜 싫어... 뮤지컬 영화 같잖아ㅠ... 의 감상이었어요.. 반성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에선 아무 제동장치 없이 봐서 그런지, 그렇게 오글거리지도 않고 그냥 순수히 아름답더라고요?
누군가의 슬픔을 아름답다고 말해서 미안합니다만, 보이는 그대로의 감상은 “시간이 만들어낸 몸의 기록은 언제 봐도 존경스럽다는 겁니다”.
이 장면을 보며, 한지로가 첫 무대를 앞둔 자신의 아들 슌스케에게 “피가 지켜줄 거다, 넌 태어날 때부터 배우였다.“(.... 젠장)고 말하고, 키쿠오에겐 ”네가 우리 집에 온 지 7년, 하루라도 연습을 쉰 적이 있느냐 머리론 동작을 잊었어도 몸이 기억할 거다. “라는 말이 좀 야속했거든요?
근데 이게 찐인 거 같어요. 타고난 피? 주어진 재능을 믿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망가지는 지를 봐왔기 때문에(옙! 그게 바로 전데요?)
얼마나 안주하기가 쉬워요 사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재능까지 있다는 사실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고, 남들이 기울이는 노력에 비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기량이 훨씬 커다랗기에 작은 우물 안에 몇 년만 머물러도 뿌리부터 썩게 되거든요. 그 도취가 정말 무서운 거라 유혹에 매몰되지 않은 채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더 혹독하게 진실하게 땀방울로 채워낸 시간이, 키쿠오를 지켜낸 것 같아요. 진정 몸으로 증명하고 배운 그 삶만이 진실이니까.
공복에 술을 때려 부어 취해도, 마음이 부서져도 몸과 뼈는 가장 익숙한 그 아름다움에 위치하는 경지.
또 같은 작품을 여러 차례 거듭할수록 관성이 생기고 익숙함에 속아 편하고 싶어질 텐데, 그걸 경계하듯 매 순간 처음처럼 같은 장면과 순간이 단 한 번도 없듯 간절해 보이는 무대였달까요!
소네자키 신주의 오하츠 역을 했다가, 그 상대역인 도쿠베이를 맡는 용기도 뭐랄까, 부자가 된 기분이 아닐까?
똑같은 작품이더라도 그 안에 다른 역할을 맡는 건, 누구로 그 작품을 살아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니까,
여러 시점에서 꼭꼭 씹어 입체적으로 작품을 소화하려는 키쿠오의 욕심과 그릇이 느껴지는 행보였습니다.
8) 계절감과 온도를 드러내는 자연물
일본영화를 볼 때 유독 신경 쓰는 부분이 계절로 드러낸 시간의 흐름이기에 조금 식물에 집착해 작품을 보게 되었어요.
가장 화려하게 봄을 안내하던 만개한 벚꽃아래 소년 키쿠오와 슌이 자전거를 타고 하교하던 오사카
다음날 교토의 기루에서 후지코마와 키쿠오만이 머물던 복도의 중정(두 사람이 앉은 공간은 어둡고 바깥은 어슴푸레 빛이 드리워져)이 눈에 띄었어요.
소박하게 하나의 긴 화분에 세 가지 다른 종류의 화초를 심은 게 유난히 신경이 쓰였는데요! (심지어 대화도 계절의 극치... 나가사키는 눈이 드물지? 였기에..)
가장 왼쪽이 뭔가 봉숭아꽃 같은 느낌? 중간은 좀 비이이죽 하고 웃자란 듯 혼자 푱 올라와있고! 오른쪽 친구는 왜 기억이 안 나지... 아직 싹이 안 났니..?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왜 인지 모르게 영화를 보고 오는 길 내내 그 화분의 정경이 마음에 남았어요.
‘되게 고급 요정인데 저런 가정집 화분? 심지어 관상용도 아닌 채소 같은 화초가 숭숭 있다고?’하는 의아함과 그 작은 초록들이 제법 여름 같은 감각을 줬구나. 하고요
어제까진 봄이었다가 갑자기 훌쩍 어른이 된 키쿠오처럼 불쑥 여름이 찾아와 버린 순간을 묘사하는 듯했달까!
또 무대와 의상에 황금색이 많아 그런지, 도죠지 자체가 제겐 가을의 풍취를 자아냈고 (요즘 거리가 온통 노랑물결인 가을의 한복판이라 더 추출모드처럼 보였을지도!)
백로아가씨는 (백로가 겨울새여서 그런지) 중후한 무대의 컬러도, 컨페티도 모두 촘촘히 겨울을 묘사하고 있었어요.
키쿠오가 본 만기쿠 선생님의 첫 작품도 이 겨울 무대라, 그의 감정이 좀 더 직관적으로 닿았고요.
모든 잎과 열매가 자취를 감추고 오롯이 본질만이 자리하는 계절. 그토록 선명한 가지가 빛을 만나 그림자를 드리워 공간을 채우는 시간.
혹자는 다음 계절을 기대하고 준비하는 시간이라 부르지만, 저에겐 그저 철저히 홀로 이 까마득한 어둠과 추위에서 살아남아야 맞이할 수 있는, 온기를 그리워하는 시간처럼 느껴졌어요.
이에 슌은 그저 신기해하며 감탄만이 가득한 감상이었다면, 키쿠오는 겁에 질리고 두려워했죠.
잘 벼려진 칼날 같은 만기쿠의 깊이는 끝을 모르게 이어져 늪만큼이나 서늘했어요.
분명 눈앞은 설경으로 찬란한데 아득한 검은 입처럼 보였던 것은, 슌의 어머니가 말한 바닥이 없는 키쿠오의 묘사와 겹쳐 보였기 때문일 거예요. 만기쿠의 압도적인 장악력과 더불어 처연하게 묵직한 슬픔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릿느릿 무대밖으로 기이할 정도로 몸을 숙여 다가오는 듯 느껴졌거든요.
서서히 부피를 키워 모두를 질식시키러 오는 무언가처럼.
또 눈에 띈 묘사는, 만기쿠의 의상이었는데요. 백로였기에 깃털을 표현한 걸 테지만 빛을 받아 반짝일 정도의 질감은 얼음을 떠올리게 했어요.
언뜻 비늘처럼 느껴질 만큼 잘게 섹터가 쪼개져 있었는데, 이제 곧 그 얼음들이 우수수 쏟아져, 곁에 머물렀던 소중한 이들을 모두 상처 입힐 준비가 되어있는 듯 보였죠.
9) 수많은 메타포를 품은 식물들에 관하여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모두 자유니 까요. 저는 꽃말 덕후이기도 해서, 같은 꽃이라도 색이 다르면 또 다른 의미를 품을 수 있다는 세계를 처음 알았을 때 너무 충격적으로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시 같고 그림 같고 암호 같기도 해서 풀어도 풀지 않아도 언제나 아름다운 식물들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제 눈에 띈 식물의 마음들을 꼽자면, 극 중에서 처음 등장하는 인간 국보, 만기쿠 선생님에게 키쿠오를 소개하러 들른 대기실 장면인데요.
작은 방 둘레를 빼곡히 채운 축하 꽃바구니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나라의 화환처럼, 성명과 축하의 문장을 적은 카드가 중앙에 자리해 마음을 전하려 달려온 존재들. 이 하나하나의 무게가 사람으로 치환되어 등을 밀어주고 응원하는 역할을 하잖아요? 그래서 더욱 슬퍼졌던 장면이 있어요ㅠ
처음으로 커다란 무대에서 도죠지를 연기하기 위해 파들 오들 떨며 준비하던 슌과 키쿠오의 대기실 모습인데요.
슌짱의 오른편엔 꽃들이 빈데 없이 한가득 차있고 왼편 키쿠오존엔 딱 하나, 하루에가 보낸 흰 캄파눌라 바구니가 기억나요.
흰색 캄파눌라의 꽃말은 ‘순수와 완벽’이라고 소개되며, 전반적으로 품고 있는 꽃말은 ‘따뜻한 사랑, 변하지 않음, 감사, 성실’이라고 해요. 그중에 콕하고, 변하지 않음이 마음을 찔렀는데요? 누가 누구에게 변하지 않음을 약속하고 있는 걸까요?
상황적으론 하루에가 그 꽃들을 고르며 키쿠오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낸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가 느낀 건 키쿠오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에 아연해진 그녀의 감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인생 만화책, 윤지운 작가님의 파한집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사람은 그렇게 자주 변하는 게 아니지.
(중략) 사람은 자주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변한다.
... 변하지 않는 사람은 변하는 사람보다 더욱 매정한 법이다. 그러니 너는 언젠가는 스스로를 용서하기 바란다.
네가 변했던 것은 너의 인간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오로지 인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기에 당연히 변하는 건데요ㅠ
인간답게 인간처럼 흔들리기도 하고 아프다고 소리 지를 법도 한데, 누구에게 기대본 적도 속마음을 털어내 본 적도 없이 홀로 걸어온 키쿠오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아니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남에게 의지하는 법을요!! (얹혀살았지만 누구보다 그곳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편하게 쉬어본 적도 마음을 뉘어본 적도 없는 곳이니까요!!!!!!) 거기에 아연해진 게 아닐까요? 하루에도 키쿠오도 모두 따뜻한 사랑을 원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하루에는 잘 알았던 것 같아요. 슌스케 때문에.
등나무꽃은 향이 매력적이라, 사람에게뿐 아니라 벌과 곤충들에게도 인기 있는 밀원 식물입니다.
아름다운 색과 형태를 가졌지만, 등나무의 모든 부분이 독성을 가졌고 ‘환영’이란 꽃말까지 지녀 알면 알수록 문학적인 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슌과 키쿠오가 처음으로 함께 연습했던 작품도 등나무 정령이었기에, 어서 작품들을 더 파보고 싶네요.
가부키 무대에 사용했던 식물 장식 하나하나와 기모노 의상에 패턴으로 사용된 꽃과 이곳저곳에 수놓아진 식물들의 의미마저 궁금해지기에 이르는데...
(a.k.a 탄바야 가문을 상징하는 소나무 문양의 표식 같은 것들)
아무리 꽃들이 여러 다른 의미를 품었다 할지라도, 우리가 꽃을 선물하는 가장 큰 목적은 “축하와 환대”잖아요?
영영 채워지지 않을 것 같던 키쿠오의 빈 꽃다발의 자리는 극 중 아야노의 마지막 문장이 꽈악 하고 들어차, 제자리를 찾았어요.
평생을 비워둔 공간에 온기 어린 마음이 꼭 맞는 모양으로 걸어 들어가, 응원의 목소리가 되었죠. 원망과 미움이 쏟아질 줄 알았던 순간에 이렇게 따스한 말이 채워져 저는 정말 깜짝 놀랐지 뭡니까... 역시 후지코마의 딸이라 그런가..! 기개와 그릇이 남다르다 정말...
10) 이제야 알겠어요...슌짱이 하루에를 처음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군요?????
1회 차에선 몰랐고..2회차부턴 세모눈으로 슌과 하루에를 관찰했는데... 마.. 어딜!!!! 어리광 부리지 마라 카이...
아버지의 대역으로 자신이 아닌, 키쿠오가 선택된 걸 알고 포로록...하루에에게 가지 않슴까?
아주 귀염뽀짝하게 장바구니에 대파와 이것저것 장 봐온 하루에+비 내림... 들어오라고?? 들어오라고 해서 전 첫회차에서도 홀로 탄식했습니다만?
(ㅋㅋㅋ진짜 넘 크게 총 맞은 소리 내서 죄송합니다.. 근데 제발 그 길을 가지 마오... 그 강 건너지 마오.. 속으로 외쳤는데ㅜ왜 슬픈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는가)
첫회차에서 제가 이해한 건, 슌스케가 키쿠오의 여자를 빼앗은 게 일종의 자격지심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라도 키쿠오의 무엇을 망가뜨리고 싶다?
근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 관계에서 능동적이었던 건 하루에였거든요. 시선도 반응도 슌을 향해 있었고...
키쿠오가 프러포즈한 새벽과 아침으로 건너가며, 하루에가 몰래 울었던 장면도
첫 감정은 ‘뭐여 이제 쥐뿔도 없는 키쿠오를 더는 사랑 못해 그런 거요? 왜 거절한 거요!!’였다면
결혼하자는 말에, 너에게 지금 중요한 시기니까 더 높이 올라가야 해. 내가 돈 많이 벌어 이것저것 해줄 거야.라는 말에 그는 함구했다 말임...
필요 없다 해야지....
그런 걸 왜 네가 해주겠다고 하는지, 내 손으로 거머쥘테니... 넌 그저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된 다해야지....
거절하니까 팩! 아무 말도 하질 않으니까요... 이쯤 되니 그의 청혼이 그냥 빈볼이었나 싶고 그러네요?
하루에도 후지코마도 1인칭을 “와타시”가 아닌 “우치”라고 칭하는 게 무척 신경 쓰였다...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가?
여성이나 어린아이가 친근하게 자신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기도, 간사이 지방의 사투리였기도 하다는데, 우치...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일단 집이라, 계속 생각하게 됐다. 하루에에겐 무엇이 집일까? 어떤 것이 집의 필수조건일까? 왜 하루에에게 키쿠오가 평생의 집이 되지 못했을까?
하루에 스스로가 선택해, 키쿠오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슌이 말을 옮기는 장면이 있었다. 하루에를 좀 만나달라고, 널 보고 싶어 한다고
?? 제정신?? 철면피세요?? 뭘.. 뭘 보고 싶다고 지금??
하고 첫회차의 전... 천불이 났는데요?
극의 마지막, 인간 국보가 된 키쿠오의 무대를 보며 그토록 흐뭇하고 뿌듯하게, 자랑스럽게 웃고 있는 하루에를 보며
아 이런 형태도 사랑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프러포즈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키쿠오가 원하지도 찾지도 않았던 페르시아 카펫과 공연홀을 지어준다고 까지 말하며, 왜 청혼을 거절했을까? 바락바락 이해를 못 했던 1회 차의 석화에게
넌 재능 있는 (조금 있는 거 말고 어나더 레벨의 재능) 예술가의 연인이 되어본 적 없잖니? 하고 하루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아마, 천재 화가와 천재 공연예술가는 성질이 너무 달라 그런 것 같아요.
하루에는 거듭해 키쿠오의 무대를 볼수록, 슌의 엄마가 말한 바닥이 없는 재능이 몸집을 부풀려 가는 모습에 너무 두려워졌을 것 같아요. 나와 같은 곳을 보는 게 아닌 그는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언제나 나의 건너편에 있는 사람처럼 현실감이 없었겠죠.
그 빛에 키쿠오가 눈이 멀어, 언젠가 날 바라봐주지 않을 것 같아서. 저 조명 아래 당신과 나의 세계가 아득하리만치 멀어, 당신이 갈망하는 그곳엔 내가 없을 것만 같았거든요.
하지만 슌스케는 너무나도 인간이라, 하루에의 마음이 향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인간답게 연약해서, 두려울 때 외로울 때 하루에 자신처럼, 곁을 내어달라 가지 말라 울고 소리치고 손을 뻗을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게 무척이나 사랑스러웠을 테지. 키쿠오는 결코 손을 내밀지 않으니까.
그래서 결국, 이제서야 물어보고 싶어졌다.
키쿠오, 넌 괴로울 때 무서울 때 외로워 눈물이 마르지 않을 때 누구에게 손을 뻗었어?
나 좀 안아달라고 떼를 써본 적은 있었어?
여태 누군가의 앞에서 마음 놓고 소리 내 울어 본 적은 있을까? 하고
이 모든 순간들이 모여 가부키로 향했던 거겠지? 단 하루도 마음이 느슨해져 눈물이 비어 나오지 않게 틀어막고
머뭇거리는 마음을 틀어잡아 곧게 향하던 그 발걸음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너무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 눈물 흘릴 시간을 모아 일단 춤을 추는 게 맞았던 걸까?
순서로는 무엇이 먼저였을까?
가부키를 했기에 슬펐던 걸까, 슬퍼서 가부키를 하게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