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털자... 국보 2회차 후기 (3)

드디어 내일 3회차를 보러 가니까요(광기)

by 윤석화




11) 만기쿠 선생님과 처음 만난 날, 그가 손끝으로 키쿠오를 부르던 동작은 마치 시간이 멎은 듯 우아해서 전 단숨에 홀려버렸습니다.

정말로 마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그의 손만이 중력을 받지 않는 듯 유려해, 마음을 쿠당탕탕 빼앗겼죠.


여명의 순간, 아름다운 것이 한 톨도 남지 않은 그 공간에 누운 채 또다시 키쿠오를 부르는데... 그 아름다운 손은 다시 한번 마법을 펼칩니다ㅠㅠ

그 우아한 움직임을 키쿠오가 쏙 빼닮게 배웠다는 것인데요ㅠㅠ손가락 하나하나의 속도 마저, 손끝마다 찾아온 계절이 다른 듯 이야기를 풀어내는 장면이 아주 흡족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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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고 작은 디테일까지 모두 진심을 쏟아내는 장인들의 마음이 전 너무 좋아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는 그 부분까지도 아주아주 철저하게 스토리를 쌓아 완벽하게 연습해 낸 정성과 시간의 결정체 같은 것들이요...


모든 것이 숨 가쁘게 빠르고, 화려하게 마음을 빼앗는 것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조금쯤은 심장을 느리게 진정시키고 호흡을 가다듬게 만드는 순간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

마치 그 만은 세계와 시간이 달리 흐르는 듯, 느긋하고 그윽하게 품위를 가꾸어 온 사람.


누군가는 직업병이라 부를지 몰라도, 온나카타를 평생 연기해 온 그가 가장 작은 움직임마저 아름다움으로 제련해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일상과 직업을 분리할 수 없을 만큼, 온통 진심이라 결국 자신의 모든 순간이 촘촘하게 (직)업이 되는 게 가슴 웅장+뻑적 해질 만큼 전 좋더라고요.



12)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혈혈단신으로 오사카에 오게 된 키쿠오, 하루에를 잃은 키쿠오, 야쿠자의 아들인 것이 세상에 드러나 주역으로서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게 된 키쿠오, 집을 나온 아키코와 불러주는 곳이 어디든 찾아가 연기를 하며 업신여겨지던 키쿠오


잃은 것이 이리도 많다면 얻는 것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소중한 것을 잃을 땐,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빼앗아놓곤,

이제야 겨우 소중한 것이 생긴 사람에게 여전히 모진 세상이다.


만약 옥상에서 위스키를 먹던 날로부터의 시련이 계속 이어졌다면 어떨까?

그다음 날 마츠토모 주관사의 타케노가 키쿠오를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만기쿠 스승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만나 뵙지 못했더라면?


수렁의 가장 깊은 곳에 빠진 그 순간이 죽을 때까지 지속됐다면?

그럼에도 여전히 키쿠오는 가부키를 하고 있었을까?


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그림은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림을 그려내는 창작자가 동시에 최초의 관객일 수 있기 때문이죠.

그저 내가 보고 싶어서, 내 눈이 평화롭길 바라는 마음으로도 그림은 계속 그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음악이나 공연 예술은 어떨까요?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이 없거나 들어주는 귀가 없다고 해도 지속할 수 있을까요? 오롯이 나의 동기로, 나의 열정만으로 그 공백은 채워질 수 있는 걸까요?

아무도 날 찾지도 원하지도 않는데, 그저 내가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걸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필연적으로 예술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줄다리기 속에 존재해요.

물론 키쿠오 같은 천재들은 이런 고민을 평생 하지 않을 수도 있을 테지만요.

하지만 여타의 창작자들은 늘 품고 있는 질문이죠.

무엇을 전하는 예술가로 남고 싶은가? 내가 사라진 세계에서 어떻게 기억되는 예술가로 남을 것인가?

난 왜 예술을 하고 싶은가? 예술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가?


흔들리고 부서지면서 새로운 답을 계속해서 찾아내는 예술가로, 저는 남고 싶어요. 그림은 평생 그릴테니까.



13) 키쿠오가 평생을 찾아 헤맨 풍경에 대한 이야기(후후 전 오피셜하게 감독님이 말하는 인터뷰는 전혀 보지 않는 사람이란 것을 미리 전합니다.)

2회차를 겪어보니 그 풍경을 언제 처음 봤는지를 정확히 알게 되었는데요.


처음으로 큰 무대에서 슌과 도죠지 무대를 마치고 발견한 경치였어요. 부유하는 먼지 같기도 나부끼는 꽃잎처럼도, 실제로 보이던 하얀 컨페티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회오리치는 불꽃은 뭐였을까? 이제 막 불이 붙기 시작한 마음의 장면일까?


불안감으로 가득했던 나날로부터 성공의 첫 순간을 기념하는 풍경이었던 걸까?

믿을 수 있는 게 자신의 몸뿐이었던 그에게 성취감과 자기 확신을 부여한 순간이었던 걸까요?

아 나도 할 수 있구나, 피가 없어도 내가 연습해 온 시간, 고군분투해 몸에 기록해 낸 기억들로 이렇게 해낼 수가 있는 거구 나하고 안도해, 발견한 풍경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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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고 큰 세계로 처음 발돋움한 순간의 설렘일 수도 있겠어요. 그래서 떠오른, 흐드러진 벚꽃길에 슌과 함께 자전거를 타며 하교하던 기억.

“이제 우리 가문의 정통제자가 된다지? 큰 무대에 설 수 있게 될지도 몰라”, 하는 슌의 목소리가 들리던 그 순간 키쿠오가 보았던 풍경이 오버랩된 것일 수도 있겠다. 차곡차곡 그날로부터 쌓아온 시간이 이런 풍경을 만들어냈구나, 하는!


사실 그 장면이 실제로 무엇이었는지를 판단하고 맞추는 것보단 까무라칠 만큼 고도의 집중력으로 몰두하던 그 순간에서 물러난 풍경이란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긴 호흡으로 촘촘하게 시선과 손끝까지 온 힘을 다하던 시간에서 멀어져, 명상처럼 텅 빈 풍경과 숨 고를 장면을 마주하는 것.


화려하고 컬러풀한 세계에서 눈을 돌리고, 빛과 어둠으로만 지어진 무채색의 세계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것.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철저히 무의 장면일 수도 있겠다는 통찰과 쉼의 무게, 그 중요함을 그가 일찍이 알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4) 이제 이건 국보후기와 조금 다른 얘기지만...

확실히 영화는 어떤 관객과 어느 극장에서 보게 되는지에 따라 몰입도와 이해도가 아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물론 제가 개복치라 그렇습니다만)


첫 회차에 정말... 해괴한 포인트에서 웃음벨이 눌리는 사람이 우리 줄에 있어서... 너무 괴로웠어요.. 이거 슬픈 씬인데 왜 자꾸 웃으시는지ㅠ(머리 열어보고 싶단 생각함....)


2회차는 다행히... 주말에 보지 않을 수 있었고... 상업 영화관이 아닌 곳에서 볼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숨도 크게 쉬지 않는 분들과 함께 보아서 몰입이 엄청났고요..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장면에서 조차 왈칵+눈물핑 할 정도였어요...


옥상에서 춤출 때마저도 어머.... 이거 이렇게 아름다웠던가...?(황홀)


3회차를 보면 또 달라지려나요? 이번엔 덕메와 함께 영화가 끝나자마자 후기를 나눌 수 있어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능 원작 소설과 3회차 후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투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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