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화
뒤늦게 정신이든 사내가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여기가 A구역인가?]
주위가 어두워 동공을 확장해 가며 주변의 사물을 눈에 담으려 할 때 갑가지 인공 태양이 켜졌다.
한껏 벌려놓은 동공 사이로 빛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자 사내가 '악'소리와 함께 몸이 경직되어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B11로 들어온 후 생긴 습관이었지만 행성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인공태양 때문에 생긴 B11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의 습관이기도 했다.
빛이 적응되자 주변의 사물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간밤에 위엄을 자랑하던 철탑이었다.
철탑에 커다랗게 A라고 적혀 있었지만 간밤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었다.
[와 하하! 살았다. 살았어 하하하!]
그제야 마음이 놓인 사내가 그간의 한스러움을 토해내듯 큰 목소리로 웃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사내가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주위를 돌아봐도 인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전에 도망 다니던 삶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그가 넉이 나간 모습으로 푸념할 때 어느 틈에 그의 뒤에서 나타난 경영과 우식 그리고 소연과 몇몇의 요원들이 모습을 드러내 그에게 다가갔다.
요원들의 걸음소리에 놀란 사내가 뒤를 돌아보며 빠르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우식이 사내에게 소리쳤다.
[이봐 아저씨! 안 잡아먹어요 피곤하게 하지 말고 이리 와요!]
[뭐? 요원인가?]
[예~! 그러니까 이리 오세요]
왼쪽귀를 후비적거리며 따라오던 우식의 표정이 귀찮고 매우 성의 없어 보였다.
하지만 사내는 여전히 긴장을 누추지 않았고 거리를 유지했다.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믿기 싫으면 그만두던가]
우식이 따라오다 말고 획 돌아가려는데 소연이 그의 팔을 잡아채며 눈을 흘겼다.
그러자 우식이 크게 한숨을 몰아쉬며 입을 삐죽이 내밀고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어 사내 쪽으로 던졌다.
[아저씨! 그거 아저씨 거 맞지?]
상자를 열어보던 사내가 화들짝 놀라 따라오던 요원들의 얼굴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그러다 갑자기 태도를 바꿔 요원들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당신들 뭐 하는 사람들이야! 왜! 이제야 나타나는 거야!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아!]
그의 고압적인 태도에 화가 난 우식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경영이 그런 우식을 대신해 차분히 대응했다.
[야!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그만해]
[이봐요 의원 나으리 여기선 우리가 법이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가셔도 됩니다.]
[뭐야? 당신들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거야!]
[내 알바 아니고 내가 아는 건 당신은 죄인이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거요.]
[아니야! 아직 재판 중이야]
[그럴까요?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때까지 당신이 살아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경영의 차분하면서도 무거운 목소리에 기가 눌린 사내가 잠시 주춤거리다 약이 올랐는지 소리를 질렀다.
[나! 최진철이야! 국회의원 최진철~]
말없이 보고 있던 소연이 진철을 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갑작스러운 소연의 반응에 진철도 요원들도 소연에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참을 웃던 소연이 오른손을 들어 진철의 바지 쪽을 가르치자 일제히 시선이 진철의 바지에 쏠렸다.
지난밤 킬링족의 위협에 놀란 진철이 바지에 소변을 지렸고 때문에 여전히 축축이 젖은 바지가 도드라져 있었다.
한참을 깔깔대던 소연이 진철의 고압적 태도를 비웃듯 비아냥거렸다.
[예~ 지린내 나는 국회의원이었던 아저씨, 보통은 구린내가 나던데 아저씨는 지린내가 나네요 하하하!]
소연의 비아냥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진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청렴하지 못한 정치인은 '뒤가 구린 정치인'이라고 불리곤 했으며, 이를 비유하여 그런 정치인을 '구린내 나는 사람'이라고 일컬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진철이 고개를 숙이자 비아냥 거리던 소연은 말을 물렸고 경영이 소연의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과는 당신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에게 하셔야지요.]
[.......]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의 삶도 자율성과 자기 결정 하에 이루어져야 하고 또 책임져야 한다고 믿소 그런 믿음 때문에 당신을 이리로 데리고 온 것이요 그러니 남은 삶을 제발 허투루 보내지 마세요. 그것으로 감사함을 갚으시오]
경영의 이야기를 듣던 진철이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어 물었다.
[혹시~~~ 동일 씨 따님 아닙니까?]
진철의 물음에 소연은 아연실색하였다.
12화 계속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던 소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복도끝쪽 왼쪽 두 번째에 있는 경영의 집무실을 지날 때 집무실의 문이 급하게 열리더니 경영과 우식이 화가 난 모습으로 밖으로 나왔다.
경영의 집무실 앞에 모인 세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문이 갑자기 열렸기에 소연의 동물적 반응에 경영과 우식이 서로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무언의 소통을 이어갔고 그 모습에 소연이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아이씨 깜짝이야]
[뭐야 둘이 여기서 뭘 해?]
[우식이 너는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소연이 물었지만 우식은 아무런 말도 없이 뒤돌아 나갔다.
[제 왜? 저레요?]
[잠깐 들어와 이야기 좀 하자]
경영이 소연의 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집무실로 끌고 들어갔다.
[이거 놔요 무슨 말인데 그러세요?]
[괜찮니? 너 말이야 괜찮냐고?]
경영의 말에 소연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이제 이곳 사람들은 네가 동일이 딸이라는 거 다 알아버렸다. 방금 그 녀석도 그걸 확인하고자 온 거고]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문쪽을 바라보던 소연이 시선을 유지한 체 말했다.
[어쩔 수 없지요 이렇게 된 이상 모두에게 진실을 알려야지요]
[뭐야! 그러면 너는 너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데]
[..........]
[차라리 처음부터 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만하세요 내일은 내가 알아서 해요]
소연은 여전히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여주기 싫어서일 뿐 경영이 싫어서는 아니었다.
그 길로 밖으로 나온 소연이 탑을 벋어나 한동안 A구역을 홀로 걸었다.
그녀의 마음속은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아버지가 킬링족에 잠입한 비밀요원이라는 점을 발설하면 비밀 취급법 위반으로 중범죄에 해당함으로 그녀 역시 범죄자 신분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비밀을 밝힐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비밀을 밝히지 않으면, 그녀의 아버지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무슨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누가 그딴 거 되라고 등이라도 떠밀었나 본인이 선택한 거잖아]
[엄마를 구하기 위한 선택이라 했지만, 벌써 15년이나 지났어.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소연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목적이 도 없는 길을 걸었다.
어느 쪽도 내릴 수 없는 선택 앞에 서서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 선택을 하는 것 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에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소연이 복잡한 생각들에 골머리를 섞고 있을 때 오른팔에 차고 있던 시계에서 귀환을 알리는 적색빛이 번쩍였다.
보통은 지구에서 죄수들이 올 때 그것을 알리는 불빛이었다.
하지만 소연은 어떠한 지시도 하달받지 못했기 때문에 의아해했다.
그렇게 소연은 의문을 안고 서둘러 복귀하였다.
그녀가 복귀하자마자 재일먼저 찾은 곳은 경영의 집무실이었다.
노크도 없이 바로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에 경영은 없었다.
[아저씨 어떻게 된...]
다음으로 소연이 들린 곳은 탑의 꼭대기였으나 그곳에도 경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신의 방에 도착한 소연은 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경영의 모습을 보았다.
[아저씨!]
[네가 찾아올 줄 알았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기에 내가 찾아왔다. 그래 결론이 서더냐?]
경영의 말에 고개만 가로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한번 만나보지 않을래?]
경영이 물었지만 소연은 답하지 못했다.
15년 동안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아버지였기에 그가 여전히 요원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쉽사리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요원의 임무를 뛰고 그곳에 잠입해 있다는 사실이 양쪽진영 모두에게 부담스럽긴 매 한 가지였다.
그 시각 우식이 이끄는 요원은 지구로부터 날아온 비행선을 맞이하고 있었다.
[슈슈슉]
비행선이 괴도를 그리며 죄인 다섯을 내려놓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식과 대원들은 빨간 머리 사내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번에 A구역으로 안내할 사람의 특이사항에 '빨간 머리'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식이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기회에 소연팀장을 뛰어넘을 수 있겠는데 하하하]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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