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째 이야기
A 구역을 알리는 빨간색 표지판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그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너무나도 큰 행복에 벅차오르는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빨리 뛰었기에 표지판의 색상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처음 이곳으로 올 때만 하더라도 빨간 바탕에 검은색 글씨일까? 백색 바탕에 적색 글씨일까? 하는 무의미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그였지만 막상 활자 A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서둘러 자진의 남은 생을 책임져 줄 A 구역으로의 입성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토록 찾아서 해 매던 A 구역에 도착한 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이성을 잃었다.
정신없이 입구를 찾기 위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조망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철문을 발견하곤 마치 미친 사람처럼 쾅쾅거리며 두드렸다.
[쾅쾅쾅 여보세요!]
그런 그의 행동은 어느새 도착한 B조의 적외선 모니터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었다.
[저 사람도 두드리네... 바보 아니야?]
[왜? 다들 두드리지? 그러다 킬링족이 들으면 어쩌려고….]
소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들의 짐승 소리가 들렸다.
[콰야~!]
[귀신같은 놈들...]
소연이 빠른 동작으로 장총에 적외선 카메라를 장착하였다. 그리고 열려있는 창문으로 총구를 밀어 넣고 킬링족과 사내를 번갈아 가며 조준하였다.
[저쪽이다. 콰야~]
오래된 지프 차량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족장 이번엔 산소 조끼 저에게 주시는 겁니다.]
[.......]
[지난번에 주신다고 했잖아요]
[잡는다면 약속은 지킨다. 하지만 이번엔 힘들겠는데….]
[예? 힘들다니요. 무조건 제게 주셔야 해요. 저놈은 내 거야! 하하하! 콰야~]
지형이 험한 탓에 지프 차량이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동일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 철탑의 상부 어딘가에 시선을 둔 채 눈을 떼지 않았다.
어느덧 사내가 있는 곳까지 다가왔지만, 동일은 서두르지 않았다.
하지만 동일과는 달리 함께한 킬링족의 사내들은 연신 짐승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 나갔다.
그들이 죄수와의 거리를 좁혀나갔지만, 어찌 된 일인지 죄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저 자식 뭐야! 왜? 달아나지 않는 거야?]
총구에 달린 적외선 망원경으로 죄수와 킬링족의 움직임을 바라보던 소연이 중얼거렸다.
소연의 모습을 지켜보던 경영이 소연의 배면에서 이야기했다.
['동결 반응'이야! '겨우 참기 반응이라고도 하지 이 현상은 우리의 중추 신경계가 위협적인 상황에 반응하는 방식 중 하나인데 기본적인 생존 전략 중 하나지, 본래는 살기 위한 무의식적 행동인데 지금은 오히려 독이 되어버린 거지 녀석들은 그걸 노리는 거야. 영리한 놈들이지!]
[동결반응?]
[그래! 저 녀석들이 지르는 괴물 같은 소리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상대가 동결 반응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거야]
이야기를 듣던 소연의 총구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멈춰!]
동일이 소리쳤지만 통제되지 않았다.
먼저 달려들던 녀석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지만, 뒤따르던 녀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멈춰! 멈추라고 이 자식들아!]
[저건 내 거예요. 하하하!]
[멈추라고 더 나가면 위험해 인마!]
동일이 고함을 지르자, 일부는 머뭇거렸고 일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하하 족장이 소리 지르는 것을 보니 저 자식 산소가 많은 것이 확실해! 콰야~]
동일은 자기 말이 무시당하자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그것보다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가는 동료의 안위가 더 걱정스러웠다.
동일은 차량의 바퀴 위로 오른쪽 다리를 들어 발목에 차고 있던 단검 서너 자루를 끄집어낸 후 주저 없이 동료를 향해 집어던졌다.
그러자 앞서가던 녀석들이 하나둘 다리를 절면서 쓰러졌다.
천천히 쓰러진 녀석들 쪽으로 걸어와 다리에 박힌 단검을 하나하나 회수하였다.
[죽는다고 이 자식아!]
[아아악!]
동일이 다리에 박힌 칼을 뽑아내어 칼에 묻은 피를 그자들의 뺨에 닦아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한 번만 더 그러면 다음엔 네놈 머리에 꽂아줄 테다]
고통 속에 소리를 지르던 녀석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동일을 올려다보았지만 이내 독기 서린 동일의 눈빛에 기가 눌려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눈에 담던 동일이 이번엔 어둠에 묻혀 형태를 알 수 없는 탑의 상부 어디쯤을 말없이 응시하며 한동안 자리를 지켰다.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