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게임

13 - 14화

by 서기선

13화

비행선에서 재일 마지막에 내린 빨간 머리는 한동안 주변을 쭈뼛거리고 서있다가 다른 죄수들이 모두 흩어진 후에야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도 다른 죄수들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 채 그저 현장을 벗어나기에 급급했다.

[저자식 조금 이상하지 않아?]

[뭐가? 말입니까?]

[다른 놈들은 보통 사방으로 흩어져 달리기 바쁜데 저 녀석은 왜 움직이질 않지?]

[어라! 그리고 보니 그렇네요]

빨간 머리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는가 하면 딱히 몇 걸음 걷지도 않고 주져 앉아 신발 밑창을 털어내는 등 기이한 행동을 연신 해대고 있었다.

지켜보던 우식이 빨간 머리를 놀릴 심산으로 A구역의 반대 방향에서 작은 소리를 내 보았다.

[콰야~]

그러자 그 소리에 빨간 머리가 소리 나는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뭐야 저자식 왜? 이쪽으로 오는 거지? 킬링족이 무섭지 않은가?]

소리 나는 쪽으로 다가오던 빨간 머리가 이번엔 반대로 소리를 질렀다.

[어디 있냐? 길림인지 킬링인지 나와봐라~ 재발 나오서 나 좀 죽여주라]

예상치 못한 빨간 머리의 반응에 놀란 우식이 한동안 머뭇거리다 이번엔 작전을 바꿔 A구역 쪽에서 킬링족 흉내를 내 보았다.

[콰야~]

그러자 우식의 예상대로 녀석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리 나는 쪽으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다행히 사방이 어둠에 깔려 근접한 것 말고는 식별이 힘들었기에 녀석이 다가와도 대원들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뒤쪽으로 빠지면서 우식이 계속 같은 소리를 내자 그자 역시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왔다.

어느덧 A구역까지 녀석을 유인하는 데 성공한 우식이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마지막 성대모사를 다려할 때였다.

반대방향에서 귀에 익은 킬링족의 음성이 들려왔다.

[콰야~]

그러자 당황한 우식이 제차 소리를 질렀다.

[콰야~]

사방에서 킬링족의 소리가 들리자 빨간 머리는 당황해하며 좌우를 두리번거릴 뿐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러다 녀석이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여기다 여기 이놈들아! 날 얼른 잡아가라]

그 소리에 반응한 킬링족이 빠르게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적외선 카메라로 이미 사방에서 출몰하는 킬링족의 모습을 확인한 우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빨간 머리를 향해 소리쳤다.

[야이 개자식아 빨리 안 튀어와]

조금만 더 오면 안전하게 A구역 안으로 올 수 있었지만 녀석은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들 뭐야? 킬링족이야? 요원이야?]

[시끄럽고 빨리 와 시간 없어]

[싫어 당신 요원이지!]

빨간 머리가 A구역의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자 우식이 그자의 종아리에 총을 한발 쏘았다.

총상을 입은 빨간 머리가 그 자리에 주져 않아 고통스러워할 때 우식이 그자를 끌고 A구역으로 들어왔다.

철문을 사이에 두고 우식과 킬링족이 대치할 때 우식이 큰 소리로 왜 쳤다.

[어이 거기 족장님 그러길래 좀 열심히 좀 뛰시지 늦었잖아 캬캬캬]

[그러다 식구들 죄다 죽이겠어 그리 능력이 없어서야 캬캬캬 다음에 또 보자고]

우식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동안 빨간 머리가 철조망을 향해 기며 울부짖었다.

[나 좀 죽여줘]

그 모습에 화가 난 우식이 빨간 머리의 뺨을 후려갈기며 말했다.

[넌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야 내 허락 없이는 함부로 죽지도 못해 더 살면서 오랫동안 고통 속에 살아야지 그래야 피해자들이 조금은 덜 억울할 거 아니야 안 그래?]

[제발 죽여줘~]

우식이 구둣발로 빨간 머리의 옆구리를 걷어차자 쿠렉 소리와 함께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너 같은 놈들은 죽음도 사치야 너 때문에 아직도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봐 미안하지도 않니?]

[지금의 고통을 잊으려 죽겠다고? 미친놈! 안 돼 너는 평생 죽을 때까지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해]

[제발]

[한마디만 더 떠들면 죽지 않을 만큼 패줄 테다 그러니 조용히 아가리 닥쳐]

우식의 눈에서 살기가 돌자 지켜보던 대원이 우식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이동포털로 끌고 들어갔다.


14화 계속


포털을 통해 철탑 내부로 이동한 우식은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지 못한 채 씩씩거렸다.

그가 총기반납을 위해 최상층 총기반납함에 다다랐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경영을 목격하는 순간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그에게 따지듯 물었다.

[방금 보셨지요! 저런 패배자 녀석도 살려야 하나요?]

[기껏 살려놨더니 죽여달라니... 내참 어이가 없어서 누군 살리고 싶어 그런 줄 아나...]

[성질 같아선 동일에게 줘 버리고 싶구먼...]

혼자 연신 떠들던 우식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동일의 이름을 이야기하였고 그러다 문득 소연과 경영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에휴~]

그는 울분이 목 아래까지 쳐 올라왔지만 애써 그것을 눌러 평점심을 가져가기 위해 날숨을 연이어 내뱉었다.

경영은 그의 들숨의 소리보다 날숨의 소리가 신경을 거슬렸지만, 그 역시 그런 우식의 모습을 안타까워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은 잠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인 양 우식이 타고 온 포털로 몸을 실어 탑 외각으로 이동하였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오랜 침묵을 비집고 경영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다. 너무 미워하지 마라]

[허이참! 어이가 없네... 내가 뭘 생각한다고 미워하지 말랍니까?]

[.......]

[기껏 하신다는 말씀이 미워하지 말라니... 너무하십니다.]

[내가 말을 하면 나 또한 범죄자가 된다. 그래 내가 그리됐으면 좋겠냐?]

[아휴~ 답답해! 그래도 우리끼린... 아닙니다. 고고하게 사세요!]

[이 녀석이]

[의리가 있지 어떻게 그러냐고요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아무튼 둘 다 똑같아 나만 바보지 나만 바보야]

여전히 씩씩거리는 우식의 어깨를 '툭'하고 치자 그가 돌아봤다.

그러자 경영이 A구역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너를 저기서 만나고 싶진 않았다.]

[뭐 그리되면 제가... 설마 죽도록 나 두겠습니까!]

[혹시 아냐 밉다고 모른 척할지!]

[뭐요!!!]

[하하하! 소연이도 많이 힘들어, 그 녀석 너도 잘 알잖니 센 척 하지만 여린 거 아마 지금쯤 많이 괴로울께다.]

[어쩌라고요 저 아직 화 안 풀렸습니다.]

[.......]

[알았어요! 노인네 또 심각해하시네... 아유 아무튼 왜! 이리 밉지!]

[뭐야!]

[가요 가~ 얼른 가요~ 노인네! 진짜 밉다. 미워!]


우식이 천천히 소연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눈에는 원망과 상처가 번갈아 가며 떠올랐다.

우식이 소연의 방문 앞에 서서 잠시 주저하더니 문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평소였으면 발길질로 노크했을 문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방문을 열자 장미향이 밀려와 우식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개집에 뭐가 그리 우울해서...]

우식이 혼잣말로 조용히 속삭였다.

우울할 때 간혹 기분전환을 위해 뿌리는 소연의 습관 중 하나였다.

간혹 가구배치를 다시 하기도 했지만 그 경우는 자신을 학대해 상황을 잊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지금처럼 마음이 불편하거나 우울할 땐 늘 ~ 장미향을 사용했다.

우식이 들어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녀는 뒤돌아 확인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우식과 경영 말고는 없었기에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등을 내여줄 수 있었기에 어쩌면 방문을 여는 순간 이미 눈치채고 있었을지 모른다.

우식이 소연의 어깨를 잡고 천천히 그녀를 돌려세우자 저항하지 않고 그의 속도에 몸을 실어 돌아앉았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녀는 눈으로 사과하고 있었다.

우식 또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몰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비밀을 숨기고 힘들어했을 그녀를 생각하니 자신이 내뱉을 말의 무개를 먼저 생각하게 되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침묵과 함께 고민이 늘어날 때쯤 소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해, 우식아.]

우식은 그녀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가 먼저 마음을 열어주길 기다리는 듯했다.

또다시 짧은 시간이 흐른 뒤 소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숨길 생각은 없었어. 그저 규칙이었고 그래야만 했어. 결과적으로 너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우식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 속에는 여전히 서운함이 숨어 있었다.

[이해해 나라도 그랬을 거야. 하지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어 그건 네가 이해해 무섭진 않았어?]

소연은 울먹이며 답했다.

[무서웠어. 네게 거짓말하는 것도, 그 비밀을 동료들에게 들키는 것도, 늘~ 무서웠어.]

우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소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런 규정을 만든 윗 대가리가 잘못된 것이지 가족이면 뭐! 그런 것이 뭐 어때서...]

소연은 허세스러운 우식을 보며 애써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커다란 눈에선 여전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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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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