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어있는 소연의 머리카락이 우식의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내렸다.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던 우식의 손길은 그가 잠이 들고서야 멈췄다.
잠들어있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우식의 발걸음이 방을 나온 뒤 경영의 집무실로 곧장 이어졌다.
[똑똑 행관님 계십니까? 우식이 입니다.]
[그래 들어와]
우식이 집무실의 문을 열자 경영이 쓰고 있던 안경을 내려놓으며 우식을 맞이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소연의 방에서 오는 길입니다.]
[....... 계속 서서 이야기할 참인가? 앉아]
우식은 엉덩이를 잔뜩 앞쪽으로 끌어당겨 소파 끝에 걸터앉아 경영과 마주하길 기다렸다.
마침내 경영이 맞은편에 도착했지만 그가 앉기도 전에 온갖 질문을 쏟아냈다.
[물론 제가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으시겠지요?]
[행관님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그자는 적입니까? 아군입니까?]
우식이 쏟아내는 질문을 듣고 있던 경영이 책상 위를 손 끝으로 '톡톡' 하고 가볍게 내래치자 정신없이 내뱉던 우식의 질문이 멈췄다.
[아까도 이야기했듯 내가 발설하면 나 역시 범죄자가 된다.]
[그리고 분명한 건 처음엔 그자도 우리와 같은 아군이었네 하지만 지금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물론 추축이지만... 나 역시도 그것이 궁금하긴 매 한 가지야]
[알아볼 방법은 없나요?]
[이미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그 역시 불투명해 아직 알아낸 것이 아무것도 없거든]
[조치라면....]
[우리 쪽요원을 보냈다는 말일세]
[!!!!!!! 혹시 동석인가? 그 사람 말입니까?]
[역시 알고 있었구먼!]
잔뜩 화가 난 동일이 커다란 건물잔해 위로 올라가 킬링족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누구든 나를 이길 수 있는 놈은 언제든 덤벼라 그리고 이길 수 없다면 내 말에 복종해라]
[이렇게 계속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산소는 없다.]
동일의 말에 군중이 삽시간에 술렁거렸다.
그러다 무리 중 누군가 소리쳤다.
[누구야! 이번엔 도대체 어떤 놈이야!]
술렁이던 인파 사이로 작은 길이 만들어지며 사내 하나가 홀로 서서 사방을 곁눈질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미 안 해! 미안해! 고의는 아니야 내가 미쳤었나 봐! 용서해 주세요]
그가 사방을 돌아보며 연신 사과했지만 그를 지켜보던 눈길은 차갑기만 했다.
[뭐야 미 안 하다고 했잖아! 너희는 뭐 다를 것 같아! 아니야 진짜 미안해 그러니 살려줘 한번만 한번.....]
지켜보던 동석의 손도끼가 그자의 머리에 꽂히자 붉은 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이 시끄러워 사내세끼가 뭔 말이 그리 많아]
동석이 쓰러진 사내의 머리에서 자신의 손도끼를 회수하며 나직이 속삭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동일이 건물에서 내려와 동석에게로 향했다.
[넌 뭐냐? 처음 보는데...]
[아~ 나~ 신참인데 나도 좀 살아보려고 왔어요. 빌어먹을 이제 고작 2년 남았거든 캬캬캬]
[죽고 싶어 제 발로 찾아온 건가? 우리가 죽이면 어쩌려고 이곳엘 와?]
[하~ 씨발 뭐래! 고작 2년 남아서 살고 싶어 찾아왔다니까. 그리고 설마 당신들이 고작 2년 더 살겠다고 나 같은 놈 죽이기야 하겠어요?]
[하하하 이 자식 배짱이 아주 좋은데]
[배짱이 좋은 게 아니라 이제 이 삶도 곧 끝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무서울 게 없던데 캬캬캬]
[이름이 뭐냐?]
[나! 동석이요 성은 없고 그냥 동석이라고 부르시오]
[나동석도 나쁘지 않은데...]
동일이 나직이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동석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고함을 질렀다.
[아이씨발 난 성이 없다고 그냥 동석이라고 뭔 말이 그리 많아~ 난 부모 같은 거 없어 그러니까 그냥 동석이야 알았어? 한 번만 더 이상한 성 갖다 붙이면 족장이고 뭐고 가만있지 않을 거야.]
씩씩거리는 동석을 지켜보던 동일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래? 그럼 증명해 봐!]
순간 낯빛이 어두워진 동석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동일에게 다가가 조용히 비아냥 거렸다.
[당신 하나만 쓰러뜨리면 증명이 되는 건가? 어떻게 지금 증명을 해 드릴까?]
동석의 도발에도 동일은 동요하지 않고 그저 너털웃음만 지어 보였다.
말없이 한참을 웃고 있자 오히려 동석이 당황해했다.
[뭐야 씨발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그 말에 동일이 웃음을 거둬들이며 대중을 향해 소리쳤다.
[오래간만에 지원자가 나왔다.]
동일이 소리치자 킬링족의 웃음소리가 하늘을 가득 매웠다.
[와! 하하!, 하하하]
16화 계속
사방을 에워싼 킬링족 사이로 동석과 동일이 으르렁거리며 빙빙 돌고 있다.
잔뜩 성이난 동석의 팔뚝에서 구릿빛 땀방울이 흘러내려 대지위에 떨어졌다.
잔뜩 찌푸린 동일의 미간 아래로 날카로운 눈매가 쉬운 상대가 아님을 짐작케 했다.
동일이 눈가에 흐르는 땀을 닦으려는 순간 동석이 그의 몸을 파고들었지만 동일은 영리했다.
파고드는 동석의 힘을 역이용해 살짝 비켜서며 동석의 중심을 흐트러뜨렸고 그 바람에 동석이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동일이 넘어진 동석을 뒤에서 끌어안고 목을 졸랐지만 동석의 힘이 동일의 팔을 물리고 다시 한번 대치상태를 유지했다.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와 주변엔 누굴 응원하는지 알 수 없는 으쌰으쌰 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기회를 엿보던 둘은 서로를 향해 주먹과 발로 빠른 공격을 했지만 여전히 승부가 나지 않았다.
힘에선 동석이 앞섰지만 동일의 노련함을 넘어서긴 힘들었다.
동일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세를 바꾸려는 순간 동석이 발길질을 했다.
급작스런 동석의 발차기가 동일의 복부를 강타했지만 동일도 그 순간, 동석의 무릎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둘은 상처와 통증을 느꼈지만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너는 나를 이길 수 없어!] 동일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말하는 게 아니야 네 말대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지]
동석이 대답하며 다시 동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둘의 싸움은 흡사 소싸움 같아 보였다.
둘의 거친 싸움은 잠시도 멈출 줄을 모르고 계속되었지만, 끝내 어느 쪽도 무릎 꿇지 않았다.
[하아악!] 동석의 거친 숨이 허공을 맴돌다 맥없이 떨어졌다.
[하아~ 하아~] 당장이라도 목구멍을 타고 내장이 올라올 것만 같은 거친 숨소리를 내는 동일도 힘겨워 보이긴 매 한 가지였다.
다시 한번 동석이 빠르게 달려 동일을 잡아보려 했지만 노련한 동일은 여전히 동석의 힘을 역으로 이용해 가며 동석을 내동댕이 쳤다.
쓰러져 바닥을 기는 동석을 보았지만 동일은 달려들지 않았다.
사실 그럴만한 힘 도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 모두 힘들게 숨을 쉬며 땅에 쓰러졌다.
그들은 눈빛으로 서로의 의지와 용기를 인정했다.
주변을 지키던 킬링족들이 박수를 치며 그들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다.
[너! 쫌 한다.] 동일이 먼저 동석에게 말을 건네자 그가 답 했다.
[나를 상대로 이렇게 까지 한 사람도 당신이 처음입니다.]
[너 이제부터 내 오른팔 해라.]
[그러면 나 이제 더 살 수 있는 거유?]
[내 말 안 듣고 날뛰다 뒤진 놈 많다. 그리 날뛰지만 않는다면 네 산소는 내가 책임지지]
둘은 서로를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와~ 하하하!]
쓰다듬던 손길도 토닥이던 마음도 모두 사라지자 소연이 눈을 떴다.
이제 막 방을 나가는 우식의 뒷모습을 발견했지만 부르지 않았다.
딱히 불러 세워도 해줄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 우식아! 이건 내 몫이야.' 소연은 돌아가는 우식을 향해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킬링족이 잠자리에 들었지만 동석과 동일은 여전히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동석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동일은 주로 듣는 쪽이었다.
그는 간혹 추임새를 넣는 것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깨뜨리지 않고 유지하고 있을 뿐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년 놈을 모두 죽여버렸지요]
[저런 ~ 그럴만했네]
[그런데 막상 B11에 오고 나니 억울한 생각이 드는 겁니다.]
[뭐가?]
[생각해 보세요 원인재공은 그년이 먼저 한 거잖아요. 물론 죽이는 건 너무하긴 했지만...]
한참을 이야기하는 동석의 눈치를 살피던 동일이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 돌연 동석에게 질 물을 했다.
[그런데 나에게 바라는 게 정말 산소뿐이야?]
[예?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당연히 그거면 됐지 뭘 줄 것이 또 있나요?]
[아닐 텐데...]
[무슨 말씀이신지....]
[너! 뒷목에 독수리 그건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
동일의 말에 놀란 동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동일을 내려다보는데 동일이 나지막이 '앉아' 하며 속삭였다.
쭈뼛거리는 동석을 향해 웃어 보이며 다시 한번 나지막이 속삭였다.
[너무 티 나게는 행동하지 마라]
[그럼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요?]
[아니 처음엔 몰랐지 네 목에 독수리를 보기 전까진]
[.......]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거다 그때까지 처신 잘해라]
[저~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아니 아직은 아무것도 묻지 마라]
묻지 말라는 동일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갔지만 그는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사신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