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 번째 이야기
'백! 백! 백!' 철탑 내부에 또다시 경적이 시끄럽게 울렸다.
소리에 놀란 소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실로 달렸고 요원들 역시 빠르게 대기실로 모여들었다.
이들의 오랜 시간 몸에 밴 습관이었다.
제일 먼저 대기실로 들어온 소연이 뒤이어 들어오는 요원들을 시선을 느끼며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했다.
평소와 다른 요원들의 태도가 신경 쓰인 소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기실을 막 빠져나갈 때 입구에서 우식과 마주쳤다.
소연이 우식을 지나쳐 복도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우식이 그녀의 팔을 잡아 돌려세우며,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 했지만, 그녀는 우식의 시선을 피해 바닥만 응시할 뿐 떨어진 시선을 끌어올릴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냥 있어] 우식이 말했다.
[이거 놔! 나도 참 바보 같다. 경적이 울리니 생각 없이 이곳으로 뛰어왔으니 말이야]
소연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던 우식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는 처음부터 놓아줄 의사가 없어 보였다.
[이 손 놓으라고!]
그들이 입구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소집의 주최자인 경영이 마지막으로 들어오며 입구에 서 있던 둘의 어깨를 밀고 대기실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을 했다.
[뭣들 하나 들어가지 않고?]
그들이 들어서자, 대기실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연 본인만 그들의 시선이 불편했을 뿐 요원들은 그리 보이지 않았다.
더러는 소연을 부르는 요원도 있었고 어떤 무리에선 손가락 하트를 보내기도 했으며 일부에선 박수를 치는 요원도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반응과 사뭇 다른 요원들의 행동에 당황한 소연이 놀라 읊조렸다.
[뭐지?]
[뭐긴 뭐야 이 녀석아! 팀원들이 널 찾는 소리지! 어서 들어가]
여전히 뒤에서 소연을 밀고 있던 경영이 입가에 미소를 애써 참아내며 말했다.
그 시각 동석은 동일이 사라진 어둠 속을 응시하다 문득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의도적 접근을 알아버린 동일이 이후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스러웠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인 '너무 티 나게 행동하진 말라'는 조언이 계속해서 마음을 무겁게 했다.
[아~ 기분 더럽네... 이렇게 된 이상 떠나야 하나?]
조용히 혼잣말로 읊조리던 동석의 마음은 여전히 좌불안석(坐不安席)이었다.
더욱이 자신의 신분이 탄로 난 이상 더는 스파이로서의 소행을 다하지 못할 것이 너무나도 뻔한데 계속 남아있어야 할지 그를 믿어야 할지 복잡한 생각에 두통이 생길 것만 같았다.
[이번에 여러분들이 살려야 할 상대는 미성년자이다. 그들은 반듯이 살려야 한다.]
[그들? 도대체 몇 명이라는 거야?]
[조용히 집중해! 만약 킬링족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반듯이 총력을 다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작전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요원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영에게 물었다.
[도대체 살려야 하는 녀석이 몇 명이나 됩니까? 수색조와 대기조 명단을 언제쯤 알 수 있나요?]
요원의 물음에 짜증 섞인 모습을 보이던 경영이 잠시 긴 한숨을 몰아쉰 후 대답하였다.
[내 말이 다 끝난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그때 발언권을 주겠네!]
[.......]
입을 삐죽이 내밀며 자리에 앉던 요원이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무도 동요하지 않자 다시 정면을 응시하며 경영의 말에 귀 기울였다.
[이번에 A 구역으로 데리고 올 아이들은 3명이고 모두 14살이다]
법이 개정되지만 않았다면 촉법소년이었을 아이들이었다.
과거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촉법소년 법을 만들었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사회적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미성년자는 아직 자라는 중이기에 성인에 비해 옳고 그름과 같은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그들의 처벌을 성인과 같은 잣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일각에서 이야기했지만, 악용사례가 넘쳐났고 방법이 성인의 범죄보다 더욱 악랄하고 잔인하다는 것이 법 개정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 실망한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촉법소년법을 철회하는데 동의했고 그로 인해 B11을 찾는 아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이 어쩌다가….]
요원들 중 누군가 말했다.
[집단구타로 3명이 죽었고 5명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만 들었다.]
[와~ 암튼 요즘 애들 무서워~ 그나저나 형량을 빼고 나면... 킬링족이 환장할 만하겠네요.]
놀란 우식이 혼잣말로 이야기했지만 혼잣말 이라기엔 다소 큰 목소리였다.
[이번 작전의 진두지휘는 우식이 맞는다. 그리고 소연은 엄호조로 대원의 안전을 지킨다]
예상치 못한 자신의 출정이 결정되자 소연은 두려워했다.
이번에도 저격하지 못한다면 우식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두렵기는 우식 역시 매한가지였다.
언제나 저격타이밍에 총구를 거둬들였던 그녀였기에 자신의 안전을 소연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 없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18화 계속
어둠 속에 숨어있던 동일이 감청기 (監聽機)에서 흘러나오는 경영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촉법소년! 이 온다고!]
하지만 동일은 요원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심드렁했다.
[이번엔 쉬어가야겠구먼 그래 하루쯤 쉬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혼잣말로 속삭이던 동일이 수신기전원을 끄고는 그것을 다시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 속으로 조용히 밀어 넣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가 떠난 후 언제부턴지 알 수 없지만 동일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하나가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보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대박인데, 대박이야 캬캬캬]
사내 역시 동일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둠을 뚫고 동일이 이동한 곳은 조금 전까지 동석이 쉬고 있던 지프차량 근처였다.
그가 차량 주변을 돌면서 동석을 찾고 있을 때 동석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소변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근거리였지만 어둠 때문에 그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동석이 소변을 보고 난 후 자리로 돌아오는 순간 하늘에서 '고고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인공태양이 빛을 밝혔다.
[악!!!]
동석이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피해 서둘러 등을 돌리며 소리쳤고 그 소리에 동일은 그가 찾던 동석의 위치를 알아냈다.
[다음부턴 미리 준비해야 할 거야]
동일이 바지주머니에 손을 반쯤 넣고 걸어어며 말했다.
[젠장 눈알 빠지겠네]
양쪽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던 동석이 손을 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생활하려면 적응해야 해. 하하하!]
[웃지 마세요. 놀리러 온 겁니까?]
간신히 눈을 땐 동석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부탁이 있네]
[부탁이요? 나한테? 내가 뭘...]
[일단 따라오게]
주변을 살피던 동일이 동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앞장서자 동석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앞장서 걷던 동일이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자리에 앉았다.
[앉아]
[뭔데요? 내가 당신을 도울일이 있긴 한 거요?]
[내 말 잘 들어.... 앞으로 15시간 후면 지구에서 범죄자들을 실은 비행정이 올 거야]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지요?]
[말하자면 길어지니 그냥 들어]
말이 잘리자 화가 난 동일의 미간에 잔 주름이 생겼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그곳에 촉법소년이 타고 있어 그것도 3명이나 말이야]
동석은 몇 가지 의문이 생겼지만 한차례 욕을 얻어먹은 터라 조용히 듣기만 했다.
[난 이번엔 가지 않을 생각이야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분명히 그곳에 갈 거야 언제나 그랬거든]
[더욱이 어린아이들이고 형량에 제외한다 하더라도 남아있는 산소가 많잖아 누구라도 욕심이 생길 거야 안 그래?]
[그렇겠지요 그런데 당신은 왜? 가지 않겠다는 겁니까?]
[아직은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하지만...]
[조금전건 부탁이고 이건 경고다. 묻지 마라 내가 이야기할 때까지]
[.......]
[네가 해줄 일은 그곳에 가는 녀석들을 죽이는 것이다.]
[뭐요!!!]
화들짝 놀란 동석의 눈이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커졌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죽는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녀석들을 죽이란 말입니까?]
[내 눈을 피해 움직일 테니 나는 몰라도 너라면 알 수 있을 거다. 어때? 할 수 있겠나?]
[거참 어쩔 수 없지 않소... 그런데 몇 명이나 됩니까? 죽여야 할 상대가...]
[그건 나도 모른다. 몇 명이 됐건 모두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죽을 수도 있다.]
[부탁이다. 아이들을 살려라]
한편 출정소식에 놀란 소연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결국 자신의 손으로 동료던 아빠던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행관님!]
소연이 경영을 불러 세웠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시잖아요! 이번엔 제가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경영은 소연의 만류에도 일을 강행시켰다.
[이번에 네가 빠지면 지금껏 너를 지지했던 동료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게 되는 거다.]
[하지만...]
[어차피 한 번은 부딪혀야 해 이참에 우리 모두가 궁금해하는 진실을 알아보자꾸나]
[행관님... 아저씨!]
[그만해! 우리 모두를 위해서야]
소연의 시선을 피해 뒤돌아있던 경영은 끝내 소연을 마주 보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 다음에 이어집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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