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도둑

3화 (시간의 숲)

by 서기선

3화 (시간의 숲)


"와~ 여긴 어디야?"

"여긴 시간의 숲이야."

"와~ 너무 예뻐. 이런 곳이 있다니!"

나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숲을 걸으며 연신 감탄했다.

그때 나뭇잎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주 천천히 떨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떨어지는 속도가 어찌나 느린지 결국 바닥에 떨어지는 것까지 보지 못 한 체 그곳을 지나쳐야 했다.

숲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고, 시간이 느려진 듯한 기이한 분위기를 풍겼다.

"시간의 숲이라고?" 나는 여전히 떨어지고 있는 낙엽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맞아. 시간의 숲이야." 째깍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시간이나 숲은 어디에나 있어. 하지만 이 숲은 시간이 조화롭게 흐르는 특별한 곳이야.

인간들은 시간을 너무 헛되이 쓰거나 쪼개어 사용해,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조화로울 때 생겨나는 변화를 알지 못해. 이곳에 들어온 건 아마 네가 처음일 거야."

나는 째깍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굳이 물어보지도 않았다.

다만 무덤덤한 표정으로 '치, 뭐라는 거야? 시간을 쪼개어 사용하다니, 시간이 돌도 아니고'라며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며 주변의 나무와 식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때 앞쪽 허공에 빗방울이 마치 주렁주렁 열린 것 같은 모습이 보였다.

조금 전 나뭇잎처럼 이번엔 빗방울이 하늘에 떠 있어 마치 크리스털이 하늘에 달린 듯 반짝였다.

"저건 뭐지? 예쁘다." 반짝거리는 것이 어찌나 예쁜지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저건 비야 며칠 전에 내린 건데 아직 땅에 닿지 못한 빗방울이 남은 거야 하늘을 봐 비는 이미 그친 지 오래됐어." 째깍이 말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정말 위쪽 하늘엔 빗방울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하늘에 떠 있는 빗방울 중 하나를 툭 하고 건들자 흐물거리며 부서졌다.

그때 아까 지나쳐 온 나뭇잎이 생각나 물방울 하나를 가져다 나뭇잎 위에 올려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마치 물방울이 나뭇잎을 타는듯한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뭐 해! 어서 가자!" 째깍이가 소리치자 나는 화들짝 놀라 되돌아갔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나무와 꽃들이 보였다.

어떤 나무는 가물어 가는 잎을 겨우 움켜쥐고 있었고, 어떤 나무는 시간이 너무 빨라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꽃이 피었다가 천천히 시들어 가는 것도 보였다.

어떤 나무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고, 또 다른 나무는 몇 초 만에 여름에서 가을로 변하는 것처럼 잎이 초록색에서 노랗게 변했다.

꽃과 나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째깍이에게 물었다.

"왜 이 나무는 빠른데 저 나무는 느리게 꽃을 피우는 거야?"

"그것들은 시간이 달라서 그래."

"왜 이렇게 시간이 각각 다른 거야?"

호기심이 가득한 나는 째깍이 쪽으로 몸을 바짝 기대며 물었다.

입가에 미소를 띠며 꼬리를 흔들던 째깍이가 대답했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 사람도 마찬가지야. 네가 지금까지 느꼈던 '피곤함'은 네 시간이 너와 맞지 않아서 그런 거야."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째깍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해한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작은 꽃을 살펴보았다.

꽃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자라고 있었다.

그때, 뒤늦게 이곳에 온 목적이 떠올라 말했다.

"그럼, 나의 시간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시간의 조화를 찾아야 해, " 째깍이는 눈을 반쯤 감으며 말했다.

"너와 시간이 밸런스를 맞추면 너의 진짜 시간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이건 짐작일 뿐, 자세한 것은 아빠에게 물어봐야 해."

시간의 숲을 지나면서 나는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시간을 찾기 위한 여정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시간의 숲을 빠져나오자 길게 뻗은 길이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아주 긴 길이었다.

우리 동네의 길은 오른쪽으로 꺾이기도 하고 왼쪽으로 돌아가기도 하는데, 이곳의 길은, 마냥 길게 뻗어만 있었다.

"와~ 끝도 없네. 저 길을 지나가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나는 혼잣말로 속삭였지만, 째깍이가 내 혼잣말을 듣고 말했다.

"아니야, 그리 멀지 않아.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봐. 저기 앞에 보이는 집이 우리 집이야."

째깍이가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 집이 어디 있다고? 장난하나... 너 지금 나 놀리는 거니?"

나는 화를 내며 째깍이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째깍이가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일렁이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화내지 마, 무섭잖아. 나는 한 번도 농담 같은 거 한 적 없어. 내가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봐야 한다고 했잖아!"

"소리 지른 건 미안해. '마음으로 본다'는 게 뭔지 몰라. 고양이는 마음의 눈이 있는지 몰라도, 인간은 다르니까."

오른쪽 다리를 들어 째깍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지만, 다리가 짧아서 머리로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아니야, 나도 미안해. 자세히 알려줬어야 하는 건데..."

우리는 서로의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화해했다.

"이곳은 우리 마을이야. 네 눈에는 길로 보이겠지만... 천천히 눈을 감고 이곳이 마을이라고 상상해 봐.

왼쪽엔 커다란 집들이 있고 오른쪽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어. 아이들 뒤로 보이는 골목길 입구에 우리 집도 있어. 상상해 봐!"

째깍이의 말에 눈을 감고 조금 전 째깍이가 말하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감은 눈 뒤로 밝은 빛이 보이더니 푸른색 점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푸른색 점이 점점 옅어지면서 째깍이가 말하던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놀라 감은 눈을 떠 보았지만, 조금 전 그 마을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오른손을 들어 눈을 비비며 말하자 째깍이가 "이제 보여?" 하며 웃었다.

"어, 보여. 와~ 여기가 너희 동네야? 저기가 네 집이라고?"

"그래, 맞아. 따라와."

째깍이가 앞장서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들어와! 아직 아빠가 돌아오지 않았어."

"엄마는? 엄마도 안 계셔?"

나는 조심스럽게 째깍이를 따라 들어가며 물었지만, 녀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뭐야! 왜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나... 엄마가 없어. 기억나지 않아. 있었다고 말로만 들었어..."

째깍이가 나직이 이야기했고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내가 미안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째깍이가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에 그리움도 없어.”

녀석의 말이 더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어디 가야 만날 수 있어? 잃어버린 시간을 빨리 찾고 싶어.”

내가 화제를 돌리며 아빠를 찾을 때 '삐걱'하며 문이 열리고 째깍이의 아빠가 들어왔다.

“아빠~”

째깍이가 달려 나가 녀석의 아빠를 맞이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째깍이 아버지는 갸르릉 거리기만 하며 반기지 않았다.

“째깍아! 내 뒤로 숨어! 뭐야, 저 녀석 인간이 왜 고양이 모습을 하는 거지? 갸르릉!”


다음에 이어집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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