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내 친구 신경미
나는 엄마 아빠를 볼 수 없다.
내가 시력 손상인 이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땐 앞을 볼 수 있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시력이 점점 나빠지더니 지금처럼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하셨다.
물론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조금만 똑똑했더라면 엄마 아빠의 모습을 기억했을 텐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진 않는다.
나는 시력을 잃은 대신 촉각이나 후각 청력 등 다양한 기관들이 발달해 남들보다 잘 듣고 잘 느낀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시력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사람들은 나를 볼 때 측은지심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의 행동을 느낄 때마다 같은 측은 시심이 생긴다.
그들은 하나를 얻은 대신 3가지를 잃었고 나는 하나를 잃은 대신 3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내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나는 이선경이고 이 이야기는 내 친구 경미와의 추억을 그리며 습작한 글이다.
'톡톡톡', '톡톡톡'.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난 어김없이 단말기를 두드린다.
지난여름 처음 배우기 시작한 점자가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 어느새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입력하는 작업까지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이런 모습이 생소했던 주변 친구들에게는 궁금증을 자아낼 만했다.
내가 점자 정보 단말기를 두드릴 때면, 그것을 처음 보는 친구들이 하나둘 몰려들었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질문이 이어진다.
"선경아, 이게 뭐야?"
그럴 때면 언제나 나를 대신해 경미가 대답해 주었다.
물론 내가 할 수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경미가 마치 보호자라도 되는 듯 나 대신 대답을 하였다.
어쩌면 친구들의 관심을 즐기는 듯했다.
"이거 점자 정보 단말기라는 건데, 엄청 비싸. 540만 원이래."
"뭐! 뭐가 그리 비싸? 그게 뭐 하는 건데?"
놀란 친구들의 질문에서 표정이 읽혀 피식하고 웃으면 어김없이 듣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하는 건데, 뭐 하는 건데 같은 질문이 쏟아진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경미가 앞장서 쏟아내는 질문들을 막아내곤 하였다.
나는 학년 내내 교실의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나를 위해 선생님께서 만들어 주신 배려였기 때문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남다르게 청력이 좋아 굳이 앞자리를 고수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뒷자리가 편한 건, 내 뒤엔 아무도 없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고 벌떡 일어나도 되는 이점 외에도,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입구로 이어져 있어 신발장이나 화장실이 가까워 도움 없이도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오늘 학교 급식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했고, 식판을 받을 때면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교실이 바뀔 때마다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럴 때면 난 속으로 생각했다. "왜 점자 블록이나 점자로 된 교실의 지도는 없는 것일까? 만약 그것만 갖춰진다면, 친구들의 도움 없이도 가능할 텐데."
시큰둥한 표정으로 따라가던 내가 신경 쓰였는지, 앞서 내 손을 이끌던 경미가 물었다.
"왜, 어디 불편해?"
"아냐, 신경 쓰지 마. 나 때문에 너에게 미안해서 그래."
애써 웃어 보이며 말했지만, 여전히 불만이었다.
"아냐, 나는 괜찮아. 나 때문이라면 신경 쓰지 마."
경미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경미는 짝꿍이다. 처음엔 선생님이 경미 성격이 워낙 남성스러워 걱정했었는데, 내가 느끼기엔 너무 착하고 배려심 많은 아이 같았다.
선생님의 배려로 3년 내내 같은 반 짝꿍으로 있을 수 있었다.
"오늘은 오징어 국하고 튀김, 그리고 기본 반찬이네."
식당으로 향하던 내가 먼저 알아차리고 말을 건넸다.
"오~ 역시 선경쓰~ 대단해, 대단해." 경미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누군가 내 머리를 만진다는 것은 나에겐 모욕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경미는 예외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머리를 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마치 무시당하는 듯한 느낌? 어쩌면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다. 하지만 경미의 손길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벌써 3년째 같은 반 짝꿍으로 지내다 보니, 경미의 솔직한 표현이 어느새 익숙해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 아기 밥 먹자."
경미가 식탁에 밥을 가져다주며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면, 우리의 식사가 시작된다.
"왜 만날 아기라고 불러?"
평소에는 묻지 않던 질문이었는데,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어? 별 뜻 없어. 그냥 한 말인데, 내가 밥을 챙겨주니까 엄마 같잖아. 그래서 그냥 한 말이야. 왜? 무슨 뜻이 있어야 해?"
경미가 입안 가득 밥을 욱여넣은 채로 말했고, 발음이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냐, 나도 그냥 물어본 거야. 하하! 하하하!"
"실없긴 계집애, 어서 먹어. 밥 먹고 나하고 갈 때가 있어."
"어디? 어디 가는 거야?" 내가 물었다.
"가보면 알아. 소개해 줄 사람이 있거든."
"누구야?" 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지만, 경미는 '비밀이야' 하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경미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온 나는 낯선 목소리에 긴장하며 물었다.
"누구세요?" 겁에 질려 잔뜩 움츠러든 내 어깨를 경미가 뒤에서 잡아당겨 강제로 가슴을 펴게 만들며 말했다.
“우리 선경이 잘 부탁합니다. 이 자식 분명히 잘 해낼 겁니다.”
“그럼요 믿어요, 그렇지 않아도 이미 소문이 나 있어서 한번 뵙고 싶었어요,”
주인공인 나를 빼고 뭔가 은밀한 거래가 있는 것 같은 대화가 이어질 때 내가 잡고 있던 경미의 팔을 잡아끌며 물었다.
“야! 뭐야! 무슨 일인지 알아야 할 것 아냐, 뭘? 잘 부탁한다는 말인데?”
그러자 경미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너 졸업 전에 책 쓰고 싶다며, 그래서 복지사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 네가 어떤 책을 쓰던 진행 과정이나 피드백을 주실 수 있는 분이야.”
예상치 못한 경미의 말에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굳어있었다.
마치 비밀이 들킨 것인 양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
“왜? 네가 왜? 복지사 선생님을 소개해 줘?”
내가 경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졸업선물이야 이제 졸업하면 내가 더 이상 너와 함께할 수 없잖아! 그럼, 우리 아기 누가 지켜주겠어! 난 선경이 네가 분명 훌륭한 작가가 될 거라 믿어. 그리고 내가 1호 팬이라는 거 잊지 마!!”
예상치 못한 경미의 따뜻한 배려에 왈칵 눈물이 흘러내렸다.
“계집애 뭐라는 거야~”
나와 경미가 끌어안고 한참을 울고 있을 때 복지사 선생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두 분이 그러니까 나까지 슬퍼지잖아요.!”
그렇게 나의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다음에 이어집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