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첫 번째 만남
마지막 질통을 비우고 곤돌라를 타고 공사장 1층으로 내려왔을 때 나를 제외한 다른 인부들이 일당을 받기 위해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입 속이 말라 침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을 느끼면서도 그날 받을 일당을 받기 위해 서둘러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내 이름이 호명되기만을 기다렸다.
"사상구 씨!" 십장의 불음에 마른침을 삼키며, '예!'하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손을 먼저 들었다.
"사상구 씨! 안 계세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손을 들었지만, 십장은 나를 보지 못했는지 다시 한번 호명했다.
"상구 씨!" "여기요!" 내가 곁에 있음을 알리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토해내듯 소리치자 흠칫 놀란 십장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고생하셨습니다. 상구 씨! 내일도 나올 수 있나요?" 그가 들고 있던 생수를 건네며 물었다.
생수를 받아 든 나는 그것을 단숨에 들이킨 후 말했다.
"후~ 예! 불러주시면 나오겠습니다." "그럼 상구 씨는 내일 아침 바로 현장으로 오세요. 집이 근처라면서요!" "예 버스 타면 두 정거장 거리입니다."
바로 현장으로 나오라는 말은 인력사무소를 거치지 않고 계약이 체결되었음을 말한다.
이 경우 수수료를 아낄 수 있어 일당이 두둑해지기 때문에 일당 발이 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퇴근길에 헌책방을 들려 몇 권을 뒤적였지만, 한 권도 사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헌책방을 뒤적이는 건 오래된 습관이지 꼭 찾아야 할 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책방을 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도깨비시장이 있다.
아침나절부터 저녁 6시까지 반짝 열었다 닫는 도깨비시장은 일주일에 2번 열리지만, 정확히 몇 시에 열리는지는 알지 못한다.
일이 없어 동내 편의점에 가려다 열려있는 시장을 몇 번 보긴 했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이 많아 선 듯 확인해 볼 마음도 인파를 뚫고 어떤 것을 파는지 확인할 만큼 궁금하지도 않았다.
또 일이 있을 때는 퇴근 시간과 도깨비시장의 문 닫는 시간이 겹쳐 도무지 그곳이 어떤 것을 파는 곳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오늘은 6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도깨비시장이 문을 닫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간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홀린 듯 그곳으로 발걸음 하였다.
"어서 오세요! 구경하세요."
족히 일흔은 돼 보이는 주인장 할아버지가 몸에 밴 인사를 하시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셨지만 부담스러워 뒷걸음질하며 말했다.
"아! 예! 그냥 구경 좀 하려고요 제가 볼 테니 일 보세요"
다가서던 주인장이 주춤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고서야 나의 쇼핑이 시작되었다.
오래된 고서부터 향로, 주물로 만들어진 호랑이, 나무로 깎아 만든 코끼리 조각, 누가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옛 그림과 도자기까지 온갖 것들이 펼쳐져 있었다.
"와~ 이건 오래된 물건 같은데…. 진품명품 같은 곳에 감정 의뢰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내 물음에 주인장의 눈가 주름이 씰룩거리며 애써 자신을 선한 사람인 양 웃어 보이며 말했다.
"설마 이런 데서 파는 물건이 진품일 리 있겠어! 하하하!"
"그럼 가품이라는 말씀인가요?"
"아냐! 아냐! 그렇진 않아. 진품은 맞는데 값어치 있는 물건은 아닐 거야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벌써 구입했겠지 안 그래!"
주인장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주물 더미에서 유난히 눈에 거슬리는 오래된 칼 한 자루가 시선을 끌었다.
"저건 뭐예요? 칼인가?"
"아~ 이거 칼이야! 반품 들어온 건데 망할 놈 좋다고 사 갈 때는 언제고 오늘 낮에 반품 들어왔어!"
"왜? 반품되었나요?"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던졌을 때 주인장의 설명이 호기심을 일으켰다.
"몰라!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나…. 망할 놈 그냥 싫어졌다거나 필요 없어졌다고 할 것이지 아이 울음소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여간 그건 안 팔아요"
"왜요? 왜 안 팔아요?"
"내가 얘기했잖아 아이 울음소리가 난다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팔아 자네 같으면 사겠나?"
주인장이 주물 더미 속에 있던 칼을 끄집어 올려 자신이 앉아있던 뒤쪽 커다란 상자 안으로 칼을 획 하고 집어던지며 말했다.
"그거 얼만데요? 저에게 파세요"
"뭐? 팔라고?" 주인장이 놀란 듯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짧게 물었다.
"팔라고요, 안 팔 겁니까?"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 울음소리가…. 들었지?"
"예 들었어요."
"그러면 반품하지 마! 이젠 반품 안 받아 알았어? 5만 원만 줘" 그렇게 충동구매를 한칼 한 자루를 들고 집으로 들어갈 때 주변 사람들이 내 모습에 주춤거리며 거리를 두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땀에 절은 작업복 차림에 사극에서나 봄 직한 칼 한 자루를 들고 다녔으니 흡사 미친놈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막상 집에 도착했을 땐 내가 미친 짓을 했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칼을 뭐 하러 사가지고.... 5만 원이면 족히 일주일 저녁 밥값인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뛰어다니자 들고 있던 칼자루가 보기 싫어져 소파 쪽으로 획 집어던지곤 땀에 젖은 웃옷을 벗어 칼자루 쪽으로 집어던졌다.
아무렇게나 펼쳐진 옷자락에 밖으로 슬쩍 드러난 눈동자 모양의 장식이 칼끝 손잡이에 달려 반짝였다.
그날 저녁부터 나는 알 수 없는 꿈을 꾸었지만 규칙적이진 않았다.
이건 내가 칼을 집에 들이고 처음으로 꾼 꿈이다.
"네 이놈 한 번만 더 장군을 모욕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죄송합니다. 나리 소인은 그저 아사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불쌍해서…."
"닥치거라 이 놈" 나리가 나를 꾸짖을 때 내 왼쪽에 있던 이가가 툴툴거리며, 나리를 자극했다.
"아니 우덜이 뭘 그리 잘못했다고 그리 성을 내십니까요? 틀린 말도 아니구먼"
"뭐라! 방금 뭐라 하였느냐?"
나리가 나를 옆으로 밀쳐내고 이가 옆으로 바짝 다가서며 당장이라도 이가의 대가리를 벨 기세로 소리치며 이가를 향해 소리쳤지만 이가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잖아요.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어차피 죽은 말고기 좀 나눠주면 좀 좋아요? 장군님 생각이 짧았구먼요!"
"닥치거라 이놈~ 에잇" 나리는 악에 받쳐 바락바락 대들던 이가의 목을 단번에 베어버렸고 이가는 짧은 신음과 함께 목이 달아났다. "악!" "네놈도 저리 되고 싶거든 어디 계속 지껄여 보거라"
나리가 칼을 내 눈앞에 들이대며 윽박지르듯 고함을 질렀고 그 모습에 주눅이 든 나는 더는 말 하지 않았다. "아닙니다요."
이가의 목이 바닥을 구를 때 얼핏 이가의 눈이 나리를 향해 있는 것을 보았다.
이가의 목은 몸뚱이에서 그리 멀리 달아나지 못하고 서버 바퀴 구르다 나리의 발밑에서 멈췄다.
"누구든 장군의 뜻을 거스르거나 욕하는 자가 있거든 내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나리가 장군을 향한 충심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오랑캐나 나리나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장군이 칼을 칼집으로 거둬들이려 할 때 칼 앞쪽으로 흐르는 이가의 혈흔이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그 모습이 마치 미친개의 입에서 떨어지는 침 같았다.
"하앗! 뭔 놈의 꿈이 이따위야!" 곁에 있던 휴대전화기의 전원을 눌러 시간을 확인하니 이제 막 5시를 지나고 있었다. 다행히 오늘부터 현장으로 가야 해서 5시면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