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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끄는 여자
자전거 끄는 여자(#1)
by
서기선
Jan 28. 2024
내가 그 아이를 만난 건 망우리에서 교문리를 뛰고 있을 때였다.
작년에 다친 다리에 근육을 만들기 위해 난 망우리에서 교문 사거리까지 매일새벽 뛰어다녔다.
물론 처음부터 오르막길을 뛸 수는 없었다.
처음 2달은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했었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 오르막을 뛰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은 그곳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뛰지 않아도 될 만큼 다리에 힘이 붇었지만 1년을 같은 루틴으로 움직이다 보니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내가 그 아이를 만나던 날은 비가 주적주적 내리던 날이었다.
집에서 나올 때만 하더라도 내리지 않던 비가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선에 도착할 때쯤 내리기 시작했다.
"뭐야! 여기는 경기도란 말이지 서울촌놈이라고 무시하네 하하하!"
시답지 않은 농담을 혼잣말로 떠들 때 내 앞쪽을 걸어가는 그녀가 보였다.
이곳을 뛰면서 만난 사람이 어디 한 두 사람이었겠는가 그리 특별할 것 없잖아! 하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법하지만 내 눈에는 특별했다.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타고 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사람은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었다.
'고장 났나? 펑크인가?'
뒤따르던 나는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고 그녀를 빠르게 지나치기로 했다. 굳이 사연이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 출근시간에 늦을 것이 뻔했다. 평소라면 샤워고 뭐고 대충 세수만 하고도 출근했을 테지만 비를 맞은 이상 샤워는 반듯이 해야 했다.
양쪽어깨를 간신히 덥을 만큼의 긴 머리가 여성임을 알게 하는 순간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치안쯤으로 생각하면 어쩌지?, 차라리 뛰지 말고 이 구간은 걸을까? 어차피 조금만 더 가면 횡단 보다가 있으니 그 지점까지만 걸을까?, 안 되는데 그러면 출근시간 늦는데...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함께 뛰어다녔다.
그러다 내린 결론이 날 알아차릴 수 있도록 소리를 내자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거친 숨소리만 들렸을 그 길에 "하나, 둘, 하나, 둘" 하는 소리를 얹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노력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저씨들이나 할법한 박수도 함께 곁들이며 뛰었다.
그런 내 행동이 너무나도 창비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제야 나를 의식한 그녀가 길 가장자리로 비켜서며 걸었고 나는 그 틈을 빠르게 지나쳤다.
교문 사거리 횡단보다를 가볍게 건들고 오던 길을 또다시 뛰어 올라갔다.
여전히 그녀는 빗속을 자전거를 끌며 걸어오고 있었다.
뒤에서 따라올 때는 몰랐는데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녀가 안경 너머로 또다시 달려오는 나를 의식하고 이번엔 걷지 않고 길 옆에 서 있었다.
좁은 인도였기 때문에 나를 위한 배려쯤으로 생각한 나는 짧은 목례와 함께 그곳을 벗어났다.
그녀를 지나칠 때 잠시 눈이 마주쳤는데 당시의 눈을 잊지 못할 만큼 인상 깊었다.
동그란 안경 너머로 흐르는 빗물이 마치 눈물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눈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었기 때문에 속도가 더 생긴다.
평소라면 무릎의 연골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껑충거리며 뛰었을 길이었지만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은 자중해야만 했다.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출근길에 오른 나는 택시를 탔다.
때마침 택시가 집 앞에서 손님을 내려주고 있었고 무엇보다 샤워하느라 평소보다 늦은 출근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기본요금 만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그래야만 했다.
얼마 전 영업부 김 과장이 출근시간에 늦었다며 이대리에게 심한 폭언을 한 것을 계기로 사내 직원들에게 늦으면 저렇게 된다는 무언의 경각심 같은 것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반갑습니다." 가볍게 인사하며 출근한 나를 향해 이대리가 손짓하며 불렀다.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이 친구 정보력이 형편없구먼! 김 과장 어제 전무님 하고 큰 소리로 싸웠데..."
이대리가 으스대며 말했다.
"그런데 그게 왜?" 마치 자신의 정보력이 대단하다는 냥 으스대는 이대리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며 되물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는 것에 당황한 이대리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김 과장이 심하게 들이받았다는데 놀랍지 않아? 어쩌면 잘릴 수도 있는데?"
"이 친구야! 정보력 없는 건 내가 아니고 자내야! 김 과장이 왜? 잘려 사장님하고 조전무 그리고 김 과장 모두 학교 친구사인데 소문엔 사장님이 조전무하고 김 과장을 직접 스카우트한 거라던데..."
"뭐! 진짜야?" 놀란 이대리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아이고 이 친구야! 어서 일이나 해 난 또 뭐라고! 하하하!" 컴퓨터 전원을 누르고 자리에 앉기 위해 의자를 끌 때 전무실에서 나온 영업부 김 과장님이 "굿 모닝~" 하며 큰 소리로 왜 쳤다.
전무실님 방이 영업부와 홍보사업부 중간쯤에 있었기에 오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이대리가 나를 다시 한번 쳐다보며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점심을 근처 분식집에서 떡라면으로 간단히 먹은 내가 공짜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회사 근처 벤치로 이동할 때였다.
자전거 탄 아이가 내 옆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너무 놀라 들고 있던 커피의 일부를 흘린 나는 녀석을 향해 "야~" 하며 소리쳤지만 녀석은 멈추지 않고 도망치듯 달아났다.
그때 달아나는 아이의 모습에서 아침에 보았던 그녀가 잠시 스쳤지만 그뿐이었다.
"서대리 오늘 우리 팀 회식이다." 홍보사업부 김 과장이 웃으며 말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나는 알겠습니다.라고 해야 했지만 나도 모르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 했다.
그 모습에 김 과장이 헛웃음 지으며 말없이 끄덕이고 돌아갔다.
"야! 너 어떻게 알았어?" 곁에 있던 이대리가 물었다.
"말실수 한 거지 내가 알긴 뭘 알아!" 이대리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사실 이대리는 내가 영업부를 거쳐 홍보사업부로 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영업부에서는 김 과장과 조전무의 다툼이 있으면 회식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유명한 일이었다.
때문에 점심을 떡라면으로 간단히 해결한 것인데 홍보사업부에서는 그것을 아는 직원이 나뿐인 듯했다.
1화를 마치며...
안녕하세요. 서기선입니다.
다음 주부터 연재할 칼의 눈물을 쓰던 중에 머리도 식힐 겸 연예 소설도 도전해 봤습니다.
넘어야 할 산이 험난해 이 소설은 연재하지 못하고 시간 날
때마다 올릴
생각입니다.
조금은 지루한 전계이지만 개인적으로 첫 도전이라 그런지 애착도 갑니다.
혹평이든 악평이든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2월엔 설 명절이 있어 더욱 힘들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또 달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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