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업이 되어버린 봉사활동
# 직업이 되어버린 봉사활동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했던가 관계와 관계 속에서 서로의 이익을 추구해 가며 공존하는 모습이 마치 개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번식만을 목표로 하는 여왕개미가 마냥 행복하진 않을진대 죽도록 일만 하는 일개미 처지에서 보면 마냥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왕개미 처지에서 보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일개미가 부러울 것이다.
역지사지란 《맹자(孟子)》의 〈이루 편(離婁編)〉 하(下) 29장에 나오는 ‘역지 즉 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말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인데 그 말이 존재하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요양보호사가 필요한 가정에 요양보호사를 소개해주고 양쪽 모두를 관리해야 하는 것이 요양보호 센터의 일이다.
공급받는 수급자님 처지에서 보면 일은 선생님께서 다 하지만 센터에서는 가만히 앉아 공고물만 먹는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일선에서 근무하는 선생님 처지에서 보면 당신이 근무하는 곳에서 일정금액의 이용비용을 대면 센터에서 자신의 월급을 제외한 차액을 센터에서 가져간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센터 처지에서는 어떨까?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 닳은 센터가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줘야 더 이상 그런 오해를 사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얼마 전 세로 입사한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1달 월급을 받아보신 후 자신이 생각했던 월급과 너무나도 다르다며 따지는 사례가 있었다.
[센터장님 000입니다.] [예 선생님 요즘 고생 많으시지요 어쩐 일 이 신가요?] [조금 전 급여 입금받았는데.] [예 맞아요 우리 센터는 매월 말일에 급여지급이 되니 지금쯤 들어갔을 겁니다. 한 달 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그런 것이 아니라 왜? 이것만 들어온 건가요?] [예? 뭐가 잘못됐나요?] [전화상으로 드릴 말씀은 아닌 것 같으니 한번 찾아가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퇴근 전까지만 오시면 됩니다.]
그날 저녁 서너 시간 전에 통화했던 000 선생님께서 찾아오셨고 센터장과 선생님의 상담이 이루어졌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선생님은 공단에서 센터 쪽으로 수급자 한 사람당 예를 들어 100만 원을 센터 쪽으로 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선생님 본인의 급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센터 처지에서는 100만 원을 받아 고스란히 선생님 몫으로 100만 원을 주고 나면 센터를 어떻게 운영하란 말인가? 더욱이 계약 당시 시급측정을 공지하였고 본인 역시 인지하였다고 서명까지 마쳐놓고 인제 와서 100만 원을 모두 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차근차근 이해시켰고 조용히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퇴사하셨다.
센터에서는 수익의 86.5%를 선생님 몫으로 드리고 있고 이것은 법으로 정한 것이지만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퇴사하는 방법으로 불만을 표현한 것이다.
앞서 역지사지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선생님 본인이 센터를 운영하는 운영자 처지에서 자비 들여 센터 운영하고 복지사님 월급과 차량 유지비와 전기세 물세 4대 보험료까지 자비 들여 운영하라면 흔쾌히 운영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회의 때마다 음식 대접하고 참석수당까지 지급해 가면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마치 착취하는 사람 취급을 하는 선생님들이 간혹 생겨나니 직접 센터를 운영하는 사람 처지에서 항변할 수밖에 없었다.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산술적으로 대략 한 사람당 대략 10만 원이 남는다는 가정하에 10명이면 100만 원, 30명이면 300만 원 이 남는다고 그렇다면 센터 처지에서 반론해 보면 만약 당신이 300만 원을 벌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공제액은 계산해 보았는가?
물론 센터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겠지만 우리 센터 기준으로 월세+각종 세금과 기본 운영비를 계산해 보면 대략 150만 원이 매달 고정지출이 된다.
그렇다면 순수 150 만원이 남는 것인데 여기에도 한번 따져봐야 할 부분이 생긴다.
수학적으로 보면 150 만원이 순수 이익은 맞다 하지만 당신들은 주 5일 근무에 하루 8시간만 근무하지 않는가? 센터는 쉬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는 않다.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착신 전화 상태로 24시간 고객의 전화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단 말이다.
내가 쉬는 날이 고객이 쉬는 날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담은 쉬는 날 이루어진다.
바꿔 말하면 주 7일 근무를 한다는 말인데 그렇게 일하고 한 달 150만 원이 많다고 생각하는가?
또한 이러한 오해는 비단 선생님들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수급자 어르신들 역시 대단한 오해를 하고 계시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복기 할아버님처럼 얼마 줄 건데 이다.
언젠가 명절선물로 곶감을 드렸던 적이 있었다.
어르신 중 몇 분이 하나 더 줘하며 강제로 빼앗아 간 일이 생겼다.
한 분 한 분 이름까지 써가며 내용물에는 짧은 감사의 쪽지까지 써 뒀는데 말이다.
[안 돼요 이러면 다른 분들은 드릴 수 없어요] [안되긴 뭐가 안돼!] [어머님 진짜 안 돼요 다음에 맛있는 거 사다 드릴게요 오늘은 어머님께서 양보하세요.] 그러자 자기 뜻대로 안 되자 화를 버럭 내시며 추가로 가지고 갔던 곶감 상자를 패대기치시며 [더러워서 안 가져간다.]
[나 때문에 먹고살면서 그까짓 곶감 한 상자 가지고...] 이럴 땐 정말이지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이게 맞는 건인가? 하는 공황에 빠져든다.
물론 당신께서 우리 센터와 함께하기에 어느 정도 수익을 주는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저런 행동은 정말 아니지 싶은데 말이다.
언젠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값질 하는 진상손님이 TV 뉴스 시간에 보도된 바 있었다.
당시 뉴스를 보면서 남들보다 더욱 흥분하여 진상손님을 나무랐던 적이 있었다.
평소보다 과격한 입장표명에 함께 식사하던 동료가 의아해했었는데 뉴스를 보는 내내 당시 곶감을 집어던지며 하셨던 더러워서 안 가져간다던 할머님의 모습이 그려져 그랬지만 날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로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이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이 쌓여 또 다른 형태의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매체를 통해 보았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조금 더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겠다.
센터장의 설립 취지는 더욱 많은 복지사 각지대의 어르신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여러 사례의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본인이 생각해 왔던 취지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았다.
하루는 퇴근 후 집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센터장의 달라진 모습에 관하여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당신 요즘 달라진 거 알아?] [내가 뭘?] [처음 나한테 센터 차린다고 할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나?] [당연하지 그러면 지금은 아니란 소리네!] [그래 보여 조금은 때가 묻은 것 같다고나 할까? 뭐 암튼 그러네] [당연히 변해야지 처음엔 하루빨리 자립할 수 있을 정도만 돼라 했지만, 지금은 아니야 조금 더 양질의 서비스를 하려면 수익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느 정도 재정이 뒷받침돼야 고기라도 한 번 더 사드리지 아니야?] [맞아 당신 생각이 맞기는 해 다만 처음 순수했던 마음과는 달라진 모습이 보여서 하는 말이야.]
[요즘 어르신들 봐 내 마음이 아무리 순수하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당사자가 색안경을 쓰고 보잖아 당신도 그때 있었잖아 얼마 줄 건데 하실 때] [아하 그때 그래 그런 조금 심하긴 했어.]
[요즘은 소개해 줬으니 소개비 달라는 어르신도 계셔!] [뭐! 진짜?] [요즘은 다들 그래 그런데 나만 순수하라고? 나도 변해야지 마냥 퍼줄 수는 없잖아 그래서 방법을 바꾼 거지 기왕 이렇게 된 거 많이 벌어서 나도 기부라는 것도 좀 하고 그리 살려고]
술기운에 한 이야기이겠지만 조금은 쓸쓸했다.
변해가는 세상에 발맞춰 나가는 센터장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마치 아날로그식 봉사에서 디지털식 봉사로 바뀌는듯한 생각이 들었다.
너무 합니다, 너무 합니다 당신은 너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