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첫 자유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셨는데 다행히 무탈하게 잘 다녀왔습니다.
사실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난관이었어요.
출발 전 허리를 다쳐 양말조차 신지 못할 만큼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거든요. 게다가 출국 삼 일 전부터 일본 미야자키현에서 6.9 지진을 시작으로 가나가와현 5.3 입국 전날엔 홋카이도에서 6.8의 강진이 발생했던지라 어찌 보면 모험에 가까웠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자유여행이 처음이라 현지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는지 다양한 경우의 수까지 걱정하면서 한 아름 걱정을 안고 시작했거든요.
다른 건 모르겠고 이번 여행에서 느낄 수 있었던 건 그간의 막연한 공포? 를 이겨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자평합니다.
사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겁쟁이가 되더라고요. 고집도 세지고 ㅋㅋㅋ 뿐만 아니라 불의와 타협하게 되고 중간만 하면 된다는 무사안일주의 매너리즘에 빠져 발전하지 못하고 그 자리만 뱅뱅 도는 ㅎㅎ
그래서일까 모든 여행을 패키지로 다녔답니다.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교통수단부터 숙박에 이르기까지 알아서 해주니 말입니다, 게다가 음식과 관광코스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으니 그야말로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얻으면 되니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잖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편한 여행을 두고 굳이 자유여행을 선택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수동적인 여행의 작은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조금은 자유롭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외국인을 만나면 작아지는 저 자신을 이겨보고 싶어서였어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여행이었어요.
물론 유명 관광지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름 철저히 무시하고 오로지 공부해 간 몇 마디 언어와 유사시에 사용될 어플 ㅋㅋㅋ 그리고 적당히 농익은 뻔뻔함만을 사용했답니다.
처음이 어렵지, 몇 번 해보니 제법 익숙해지더라고요.^^
처음 길을 물었을 때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 소개할게요.
"あの、すみません" 하고 말을 건네자, 그가 돌아봤다. 순간 내가 왜! 불렀을까 하며 원망도 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돌아보는 순간 주어가 달아나 머릿속이 휑해졌다.
다행히 그리 멀리 가지 못하고 되돌아온 주어를 붙들고 그간 공부했던 조각난 언어들을 짜 맞추기 시작했고 드디어 합당한 몇 마디 언어가 생각나 물었다.
"地下 に行くにはどこに行けばいいですか?" 이제 대답만 기다리면 되는데…. 내가 예상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かなり?く距離ですが、?いて行かれますか? それとも バス に?りますか?" 아~ 뭐라는 거지…. 또 가슴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땐 서둘러 어플을 켜야 한다. 그런데 이게 왼 걸 조금 전까지는 잘 되던 와이파이가 꺼져있는 게 아닌가….순간 차라리 구글맵 보고 걸어갈 걸 굳이 말을 걸어서 이게 무슨 개망신인가 하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졌다.
혼자였다면 적당히 웃어버렸겠지만 날 믿고 따라온 아내가 한 발짝 뒤에서 내가 확답을 받아오길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책임감과 쪽팔림이 함께 밀려왔다.
내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아~ 니시진"이라고 말하자 내 말을 알아들은 그가 "あ、そうなんですね。西進に行くんですか! だから?を探していたんですね。?いて行きますか? それとも バス にしますか?" 하고 물었다.
물론 그것도 내가 준비해 간 경우의 대답에서 벗어난 말이었다.
내가 머뭇거리고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Bus or walking? 하며 이번엔 영어로 물었다.
순간 영어가 모국어처럼 들리는 정말이지 신기한 경험을 했다. ㅎㅎㅎ
"Only walking." 이번엔 조금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방향을 안내받은 나는 태연한 척 집사람에게 걸어가 "저기 끝에서 좌측으로 조금만 가면 된다네." 하고 말하며 걸어 나갔다.
조용히 뒤따라오던 집사람이 등 뒤에서 물었다.
"제2 외국어로 일본어 공부했다더니 수업 시간에 졸지는 않았나 보네! 알아듣겠어?"
"아니! 알아듣긴 대충 눈치로 알아듣는 척하는 거지" 순간 그녀의 물음에 허세를 담을까? 하는 짧은 생각이 스쳤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런 경험을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하고 나니 둘째 날부터는 초조한 마음보다는 농익은 뻔뻔함이 빛을 발했다.
1) 오른쪽, 2) 왼쪽, 3) 직진이라고 미리 적어둔 종이와 함께 길을 물으니 크게 웃으며, no 3, 100m, No.1, 20 メートル くらい no 3 OK? 하며 길을 안내해 주었다.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있던 집사람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에효~ 그렇게 하면 나도 하겠다."
"어허~ 이 사람 왜! 이래! 통하면 된 거지 안 그래?" 삐죽이 내민 입술이 우스워 보였는지 아니면 내 뻔뻔함이 우스워 보인 건지 집사람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