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The Quill 10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선 Nov 08. 2024

The Quill (최종화)

강물과 바다

로이가 죽거나 다치는 장면이 묘사되진 않았다. 

다만 글 말미에 시체유기를 마치고 돌아오다 로이라는 꼬마를 만났다.라는 짧은 문장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간의 행적을 보면 녀석은 단 한 번도 표적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음 표적이 로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로이는 안 돼! 그동안 내가 어떤 마음으로 버텼는데….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야" 몸을 바르르 떨며 시종일관 중얼거리는 내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기사님이 룸미러로 힐끔힐끔 쳐다보셨다. 

기사님의 시선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다친 손으로 집에 두고 온 자가용을 직접 몰 수도 그럴 여유도 없었기에 기사님의 시선 따위를 마음에 담지는 않았다. 

"손님! 무슨 일 있나요?" 기사님이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걸어오셨다. 

족히 5시간 이상은 함께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 기사님 입장에선 나와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묻는 질문도 그런 인간관계 유지를 위한 물음일 뿐 나를 위로하거나 도움을 주려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설령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한들 그가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그럴 바엔 차라리 4시간이고 5시간이고 혼자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갔는 편이 지금으로선 최선일 테지만 그렇다고 관심을 보여주신 기사님에게 굳이 싫은 소리를 해 가며 불편한 시간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친절을 보였다 하더라도 나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기사님 스스로 침묵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기사님! 죄송한데 저 통화 좀 할게요." 기사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로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로이는?" 

"내가 그걸 왜? 이야기해야 하지?" 여전히 무뚝뚝하고 권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랄 말고 빨리 말해! 로이 어디 있냐고" 초조해진 마음과 미움이 함께 밀려와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쳤구나! 네가 진짜 로이를 위한다면 로이를 위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지랄하지 마! 누가 뭐라고 해도 난 로이 엄마야 잔말 말고 어서 말해 로이 어디 있냐고" 다시 한번 소리 질러 물었지만, 그는 대답 대신 한숨만 토해냈다. 

"후우~ 누구야? 엄마야?" 그가 토해내는 한숨 사이로 로이의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엄마~"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반가움과 안도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래! 로이야 잘 있는 거지? 어디 아프진 않고? 밥은 잘 먹니?" 

"응, 엄마~ 할머니 하고 아빠하고 놀러 왔다~" 

"놀러? 어디?" 

"놀이동산도 가고 바다도 있어!" 

"바다? 바다 어디? 아빠 좀 바꿔봐!" 

"로이야 할머니 하고 방에 들어가 있어" 로이의 전화를 뺏은 전 남편이 로이를 물리고 통화를 이었다. 

"이거 집착이야 알아? 이제 우리 그런 관계 아니잖아! 앞으론 조심해 줘 그게 너나 로이를 위해서도 좋은 거야." 

"나를 위해? 하하, 네가 언제부터 날 위해줬다고 위하느니 마느니 그런 잡소리를 하는 거야 너 그거 알아 난 너와 사는 동안 너 내 집 노애였어 한 번이라도 사람대접해 준 적 있어? 그런데 이제 와서 나를 위하는 거라고? 야! 한지후 지금 장난해?" 한지후를 만나기 전 교통사고로 한순간에 부모님을 잃었다. 그런 나를 곁에서 위로해 주던 그였는데…. 그때의 따스 함이 이제는 남아있지 않았다. 

어쩌면 떠나버린 연인에게 마음을 나눠준다는 게 정상적이진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난 미련이 남았었나 보다.

그가 차갑게 대할 때마다 배신감 같은 울분이 치솟는 걸 보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그를 밀어낸 건 내 쪽이 먼저였으니 그를 원망한다는 게 바보 같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날 안아줄 거라 믿었던 나는 그의 어머니 말처럼 미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만해! 그런 얘기가 이제 와 무슨 소용인데 잘했건 못했건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야 너 말대로 앞으론 보는 일 없었으면 해! 아~ 그리고 늦었지만 출간 축하해! 이건 진심이야. 그리고 다신 전화하는 일 없었으면 해! 끊는다." 

"잠깐만! 로이로이가 위험해!" 전화를 끊는다는 말에 서두도 없이 본론을 말했다. 

"뭐라고?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말하자면 길어 아무튼 로이가 위험해! 그러니 제 발 아무 말 말고 집에서 보름만 집 밖으로 나오지 말고 집안에서만 있어 줘 부탁이야!" 

"야! 이도연 적당히 좀 해라!" 그의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막상 같은 결론을 듣고 보니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엄마이고 아이를 지키는 건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랬을 일이었다. 

나는 다시 로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다."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마치 뱀에게 물린 것처럼 아팠다. 

"어머니! 그 사람은요?" 분명 로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은 이는 로이의 할머니였다. 

"누가 네 어머니란 말이니?" 

"어머니 그런 게 아니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로이도 너처럼 키울 생각이니? 그런 게 아니라면." 그녀의 말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친정이 없는 사람이다. 

바꿔 말하면 뒷배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어미·아비도 없이 자랐다느니 가정교육이 이래서 중요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했었다. 

의도야 어떻든 듣는 내 입장에선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이었지만 그와 그녀는 나를 보듬기보다 내가 수긍하길 바랐다. 

충분히 그들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바람처럼 수긍하며 살아내는 것보다 자신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었다.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의 설움을 모른다. 

없는 사람은 하나도 아쉽지만, 가진 사람은 그것을 대의 혹은 배포와 같은 단어로 포장한다

없는 자의 히스테리는 자존감이 낮아서이고 가진 자의 히스테리는 자존심이 강해서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처럼 정말 내가 자존감이 낮아 그런 생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족인데 어쩜 그렇게 남 대하듯 선을 긋는 건지 나는 그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한 번은 로이가 계란말이를 먹다가 식탁에 떨어뜨린 적이 있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궁상맞다며 혀를 차던 그의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웃기는 건 남편이란 자의 태도였다

"엄마는…. 얘 원래 그러잖아. 신경 쓰지 마!" 그 말에 화가 나 한지후 얼굴을 계란 접시에 처박았고 그 일을 시작으로 소위 말하는 고부갈등이라는 걸 만들어 냈으며, 누구도 물러서거나 화해하지 않으면서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다. 

내 마음을 읽지 못한 친구들이 대수롭지 않게 그날의 일을 받아들이며 이혼 사유가 마치 나의 자존심 때문이라 말하기도 했었고 그날부터 친구들과의 모든 인연도 끊어냈지만, 소금이는 달랐다. 

나를 대신해 마치 자신이 당사자인 양 그들과 싸워줬으며, 음지로 숨어든 나를 양지로 이끌어주기도 했었다.

그런 그녀는 유일한 내편이었다.

그리고 이혼 당시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지 않았던 나는 로이를 빼앗겼다.

하지만 언젠가 부끄럽지 않은 엄마의 모습으로 로이를 찾겠다는 희망 하나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Quill은 네게 남은 마지막 희망인 로이 까지도 앗아가려 하고 있었기에 나는 어떻게든 그것을 막아야 했다.

희망이라고 표현했지만 어쩌면 로이는 나의 전부였을 것이다.

로이라는 이름을 지었을 때 로이 할머니의 말씀처럼 나처럼은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인생의 길이 기쁨으로 가득 차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아 ( 路 길로, 怡 기쁠 이 )라고, 지은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나의 작은 바람조차 들어줄 마음이 없는가 보다.

네게 남은 마지막 희망인 로이마저 데려가려 하니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다.

결국 이 지긋지긋한 저주와도 같은 삶에서 벗어나려면 내가 꺼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섰다.

비록 내가 느낄 순 없겠지만 로이가 걸어갈 기쁨의 길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희생이 로이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면 그 또한 행복일 테니 말이다.

"기사님! 저 여기서 세워 주세요." 그런 생각이 머리에서 흘러 어깨를 타고 심장에 다다랐을 때 택시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어둑한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낯선 길을 목적지도 없이 걸었다.

간혹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에 반짝이는 눈을 벗 삼아 걸었다.

그러다 적적함이 밀려왔고 눈물이 났다.

겁이 나서가 아니라 막상 생을 스스로 거두겠다고 다짐하고 나니 밀려드는 아쉬음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흔들렸다.

그리고 흔들릴 때마다 로이를 생각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길 오른쪽으로 바다만큼이나 커다란 강이 보였다.

아니 어쩌면 부산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바다였을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강이나 바다나 별반 다르지 않다.

사는 곳이 달라 그리 불릴 뿐 결국 강물도 바다에 살면 바다라 불리기 때문이다.

바다로 흘러간 강물도 바다에게 따돌림당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어쩌면 그들의 삶에 녹아들지 못한 내가 강물처럼 느껴졌었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감정 탓인지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릴 적 싫어하는 당근으로 밥상을 차려주던 어머니의 기억부터 단잠을 깨우는 아버지의 심술까지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강인지 바단지 모르는 곳으로 걸으며 오래된 기억들을 끄집어내 그날의 기억을 느끼며 웃기도 했고 울기도 했다.

그러다 끝까지 나를 응원해 주었던 한소금이 생각나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 그녀는 내가 병원을 탈출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 녀석이 로이를 언급했어" 나는 조용히 흐느끼며 말했다.

"뭐! 뭐라고 썼는데?" 몹시 흥분한 그녀의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아직은 어떻다고 말하진 않았어 그냥 이름만 있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복잡하네 이거... 그래서 어떡할 건데?"

"어쩌긴 막아야지." 

"어떻게?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어찌 보면 당연한 물음이었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물음이었지만 난 어떤 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가 나의 다음 계획을 눈치챘는지 목소리를 바르르 떨며 물었다. 

"너~ 혹시! 아니지?" 

"맞아!"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뭐! 야! 이도연! 어딘데? 너 어디야?" 몹시 흥분한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눈물이 흘렀다. 

"미안해!" 

"야, 이년아! 어디냐고?"

"…."

"너 내 말 잘 들어 설령 로이 이름을 적었다 치자! 아니 적었다고 했지…. 아무튼 그렇다고 모두 죽는 건 아니잖아! 날 봐 아직 멀쩡하잖아! 안 그래?" 자신을 빗대어 설득하는 한소금이 마냥 고마웠다. 

"네 말이 맞긴 해! 하지만 그 녀석이 이름을 언급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네가 유일해! 굳이 확률로 따지자면 5%도 되지 않는다는 말이야 그런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내 아이의 목숨을 걸 순 없어" 

"예가 뭐라는 거야! 그럼 너는, 네 인생은? 네 인생은 뭐냐고?" 그녀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와 심장을 쓰다듬었다. 

"너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부모란 그런 존재야! 나를 태워 자식을 밝히는…. 발이 타들어 가 죽어가면서도 내 불빛에 밝혀질 아이를 생각하면 죽음마저도 감사하게 만들거든." 

"야! 이도연 먼저 나 좀 만나자, 내가 그리로 갈게 지금 어디야? 말해! 빨리!" 

"소금아, 고마웠어!" 나는 더 이상의 통화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Quill과 휴대전화를 강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곳으로 한 걸음씩 걸었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고 그중에는 엄마와 아빠의 지난 모습도 포함되어 있었다. 

옛 생각이 들 때마다 눈물이 흘러 시야가 흐려졌다

차갑게 식어버린 강물이 발목을 타고 종아리와 허벅지 쪽으로 빠르게 올라왔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발걸음이 무겁고 무서워 눈물이 났다. 

그렇게 나를 떠난 뜨거운 눈물이 강물에 스며들었다. 

어느덧 한기가 가슴을 타고 올라와 목덜미를 물자 숨쉬기가 버거워졌다.




Quill의 깃털이 새까맣게 변한 체 하류로 흘러갔다.




"이건 뭐지?"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해변에 쓸려온 Quill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자기야! 버려~ 더럽게 그런 걸 줍냐!" 곁에 있던 여인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이거 봐 신기하지 않아? 깃털 색이 바뀌잖아" 청년이 Quill로 접어들자, 시커멓게 변해버린 Quill의 깃털이 푸르게 변하며 반짝거렸다. 

"뭐 그렇긴 하네…. 그래도 버려! 그냥 신기한 쓰레기일 뿐이야." 

"아이 있어봐! 왠지 느낌 있잖아!" 청년은 여인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Quill을 주머니에 넣었다. 

"할머니가 남이 쓰던 물건 함부로 가지고 오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앞서가는 청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인이 조용히 읊조렸다. 

"아~ 하늘 왜 이래~ 자기야 눈 올 것 같은 데 빨리 가자" 청년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여인에게 말했다. 

해변 밖으로 그들이 사라질 때 함박눈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