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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Quill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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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Nov 01. 2024

The Quill 9화

9화:  로이

내가 눈을 떴을 때, 낯선 불빛이 하늘에 떠 있었다. 

'뭐지? 나 죽은 건가?' 생각지도 못한 공간에서 눈을 떴기 때문에 의심할 만했지만 그렇다고 명색이 작가라는 사람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사후 세계를 의심했다는 생각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렸다. 

가볍게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머리가 깨지듯 아팠다. 

머리뿐 아니라 속도 쓰렸다. 

신기한 건 오히려 잘린 손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여긴 어디지?" 고개를 틀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침대를 둘러싼 커튼, 커튼 사이로 보이는 흰색 벽, 의약품을 실은 은색 트레이까지 이곳은 분명 병원이었다. 굳이 그런 것들이 없었다 하더라도 병원 특유의 에탄올 향만으로도 충분히 병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장소를 의심했던 건 마지막 기억 속에 난 보일러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어머, 이도현 님 정신 드세요?" 발치에서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예! 그런데 저것이 왜? 여기에 있는 거죠?" 혼절한 직후의 상황이 궁금해 물었지만, 그녀에게선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듣진 못했다. 

"응급실로 들어오셨어요. 수술실에서 나온 지는 4시간쯤 됐고요." 

"수술이요? 제가 수술을 했나요?" 

"예! 손가락 봉합수술을 하셨어요. 결과는 담당 선생님 오시면 직접 물어보세요. 혹시 연락할 수 있는 보호자가 계시는가요?" 

"예!!! 봉합 수술이요? 제가 봉합 수술을 했다는 말인가요?" 순간 끔찍한 생각이 스치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녀석이 나를 조종해 병원을 찾은 건가? 하는 의심이 들자, 소름도 돋았다. 

기절하기 전의 기억은 선명했지만, 이후의 기억이 사라진 것이 글을 쓰다 정신을 잃었을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무의식으로 빠져들 때의 감정이 조금은 달랐다. 

글을 쓰다 정신을 잃었을 땐 무기력했다면 손가락을 자르고 기절했을 때의 정신은 고통스러웠다는 것이 달랐다. 

하지만 깨어났을 때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제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죠?"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마른침을 삼키느라 인상을 쓰며 물었다. 

"저~ 죄송한데 물 좀 주세요." 이 상태로 조금 더 있다간 바짝 말라버린 식도가 건조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때 병실 밖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소금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켜요! 제 친구라고요." 

"친구분 이러지 마세요. 이도연 님은 면회 금지 상태예요." 

"왜요? 왜? 안 된다는 거죠?" 

"이도연 님은 정신적인 안정이 필요해요. 자해를 시도하셨거든요." 그들의 대화가 문 밑으로 스며들어와 네게 소식을 전했다. 

"무슨 일이시지요?"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선생님 이도연 환자 친구분이라는데…."

"혹시 한소금씨?" 

"예 제가 한소금 이긴 한데…. 누구?" 

"아까 통화했던 사람입니다." 

"아~ 경찰!"

"퇴근하던 참이라 사복을 입고 있어 그렇지 저는 경찰이 아니고 의사입니다. 잠시 이야기 좀 할까요!" 이후 사내의 목소리가 한 소금을 데리고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병실 문이 열리며 소금이 가 들어왔다. "야! 괜찮아?" 

"응 왔니?" 

"미친년이 힘들면 이야기하라고 했잖아! 왜! 너 혼자 힘들어하는데…."

"미안해!"한소금의 정겹고 거친 말투가 그리워서인지 내 마음을 알아봐 줘서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투박스러운 말에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손은? 어휴~ 미친년!" 한소금이 붕대 감긴 손을 살포시 들어 올리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너는 괜찮아?" 지난날 면회를 거부했던 소금이의 마음이 다치진 않았을까 궁금해 물었다. 

"야 이년아! 지금 내 안부 물어볼 때냐! 어휴~ 독한 년 어떻게 손가락 자를 생각을 했니? 흑흑 얼마나 무서웠을까!" 소금이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거 어딨어? 내가 버려줄게" 눈물을 훔치던 소금이 말했다. 

"아냐! 이건 내가 끝을 봐야 해! 혹시라도 너에게 옮겨가면 어쩌려고,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죄책감 때문에 난 하루도 살 수 없을 거야 내가 마무리할 거야 그러니 넌 더 이상 나서지 마!" 

"네가 어떻게? 봉합한 손 다시 자르기라도 하려고?" 

"그렇게라도 해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얘가 뭐라는 거야! 꿈에서라도 그런 생각하지 마!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야 쓸데없는 생각 말고여서 낮기나 해!"한소금이 내 어깨를 가볍게' 툭'하고 밀어내며 말했다. 

"아! 맞다. 선생님이 자극하지 말라고 했는데…." 한소금이 나지막하게 혼잣말로 말했지만, 주변 소음이 전혀 없는 병실이라 충분히 알아들을 만했다.

"자극하지 않았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병원에 온 거니?" 뭐 들은 것 없어?" 눈물을 훔치느라 돌아앉은 한 소금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몰라! 얼핏 들은 말로는 누가 신고했다던데

"누가?"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나도 전화받고 바로 온 거거든" 

"누가? 누가 전화를 했는데?" 

"전화는 내가 했지. 오래간만에 전화했더니 웬 남자가 받더라고 누구냐고 물어볼 틈도 없이 전화 주인과 어떤 관계냐고 묻더라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네가 손가락을 자르고 기절했다고 하더라고 수화기 너머로 이 형사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경찰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의사 선생님이더라고 그것도 아주 잘~ 생긴 하하!" 

그날의 일을 정확히 들을 수 있었던 건 소금이가 돌아가고 난 후 1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소금이는 병실에서 나를 계속 간호하겠노라고 했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며 그녀의 상주를 막았기 때문에 소금이는 나의 안부를 확인하는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되돌아갔다. 

그녀가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직접 병원까지 이송했던 경찰관이 다녀갔고 그분을 통해 그날의 행적을 들을 수 있었다. 

"시천마트 아주머니가 신고하셨어요, 처음 보는 이상한 아가씨가 술을 잔뜩 사서 갔는데 손을 벌벌 벌 떨고 눈에 초점도 없고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고요 마침 슈퍼 근처에서 순찰하던 참이라 빨리 갈 수 있었어요. 아주머님이 알려주신 곳으로 순찰 나갔다 작가님을 발견했고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런데 왜? 그러신 겁니까? 단지 말입니다." 가늘고 긴 눈꼬리를 가진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젊은 경찰이 물었는데 어딘가 낯이 익었다. 

"어! 당신은…."

"앗! 기억하시나요? 저 예전에 작가님에게 사인받은 적 있는데…." 사내가 멋쩍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몇 달 전 소설 속 범인의 인상을 한 사내가 Quill과 유사하게 생긴 펜으로 사인을 받겠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장 이유래 라고 합니다. 남자이름 치고는 특이하죠! 하하하!" 경찰이라는 직업이 주는 안정감이 들 법도 한데 과거의 기억과 가늘고 긴 눈이 매서워 심장이 빨라지기 시작했으며, 호흡이 또 거칠어져 나도 모르게 헐떡거리는 증상까지 나타났다. 

"어! 어! 왜! 이러세요, 저기요. 작가님! 정신 차리세요. 선생님! 누가 좀 와보세요!. 간호사~" 당황한 이유래 경장이 허공에 소리를 질러댔다.




절대안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 경장은 물론이고 소금이 까지 면회가 금지되었고 나는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격리되어 생활하였다. 

입원 4일째 되던 수요일 아침이었다. 

평소라면 목요일에 발표할 글을 적거나 이미 완성한 글의 퇴고 작업을 하는 시간이었을 테지만 자유롭지 못한 손 때문에 어떤 작업도 하지 못한 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였지만 막상 그것이 내게 온 순간 난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여전히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른손을 들어 감겨있는 붕대를 보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붕대를 보고 있는데 자꾸만 웃음이 스멀스멀 입 밖으로 흘러내렸다. 

어찌 되었든 Quill이 더 이상 연재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마음고생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내가 이겼다는 승자의 마음 혹은 안도의 마음 때문에 자꾸만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참으로 오래간만에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으하하! 헤헤! 냐 하하하!" 그렇게 한참을 웃다 아침 일찍 내 상태를 확인하시던 담당 의사 선생님의 메시지가 생각 또 한 번 큰 소리로 웃었다. 

수술 부위가 다 아물어 퇴원하더라도 최소 한 달 이상은 물리치료 해야 한다며, 깁스하고 있는 동안 손가락을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굳었을 거라는 말과 함께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는 당부의 말 때문이었다.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최소 한 달 이상 경우에 따라 어쩌면 영원히 녀석이 살인을 멈춰야 했다. 

"물리치료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예? 물리치료는 꼭 하셔야지요. 그러지 않으면 손가락을 영원히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나는 웃었지만, 선생님은 사뭇 진지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침대에 누워 붕대 감긴 손을 바라보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여 봤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수술 잘 됐다며"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다 왼손으로 오른손 중간 손가락을 긁어보았다. 손끝에서 촉감이 느껴지는 걸 보니 선생님 말씀이 허언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뒹굴뒹굴하고 있을 때였다. 

커튼 뒤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 쪽으로 이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커튼 뒤에서 멈춰 선 발소리가 닫혀있는 커튼을 활짝 열 어제 키며 "이도현 님, 상태 좀 점검할게요." 하며 말을 걸어왔다. 

처음 내가 봉합수술을 했다고 알려줬던 그 간호사였다. 

그녀가 감겨있는 붕대를 조심스레 풀자, u자 형태의 금속 색깔의 보형물이 드러났다. 

나는 보형물 뒤로 유난히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의 상태가 궁금했는데 그녀는 보형물은 건들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상처 부위에 간단한 소독만 해주고 다시 붕대를 감아 주었다. 

그녀가 붕대의 마지막 매듭을 정리하며 "궁금하다고 붕대 열어보시면 안 돼요. 절대 풀지 마세요." 하며 내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임으로 의사전달을 하였다. 

사실 굳이 붕대를 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렇게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펜을 쥘 일도 없고 무언가 쓰고 싶은 충동이 들기는 했지만 참을만했다. 

"손에 감각은 느껴지나요?" 간호사가 손끝을 가볍게 눌러보며 물었다. 

"네, 느껴지긴 해요." 간호사와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복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글을 쓸 정도는 아니에요. 그러니 무리하면 안 돼요. 이도연 님 작가님이라면서요! 다른 간호사 선생님들이 그러시더라고요"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예! 감사합니다." 멋쩍은 미소로 그녀의 물음을 물리고 돌아누워 서랍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때 살짝 열린 서랍장 밖으로 낯익은 푸른 깃털이 흔들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헉'하는 탄식과 함께 등 뒤로 식은땀이 몽골 몽골 생겨났다. 

"설마! 저건…. 말도 안 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왜 그러세요?" 놀란 내 목소리에 나보다 더 놀란 얼굴로 간호사가 물었다. 

"저기 저거요 저게 여기 왜? 있는 거죠?" 

"저거라니요? 여기 팬 말인가요?" 그녀가 Quill을 서랍에서 꺼내 보이며 물었다. 

"당장 치워요!" 내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이건 처음 이곳에 올 때부터 이도연 님이 가지고 오신 거예요…." 간호사가 뒷말을 흐리며 답했다. 

"제가요?" 

"예! 듣기로는 얼마나 세게 쥐고 계셨는지 수술실에서 애 좀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소중한 물건인가 싶어 회복실로 옮길 때 챙겨 와 서랍에 넣어둔 거예요.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간호사의 물음에 답하지 못한 채 한동안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심정을 알 리 없는 간호사는 내가 마치 정신착란이라도 일으킨 것으로 생각했는지 담당 의사를 호출했고 한걸음에 달려온 담당 의사가 나에게 안정제 처방을 내렸다. 

링거를 통해 투입된 안정제가 나를 나른하게 만들었고 나른함을 이겨내지 못한 나는 결국 잠이 들어 버렸다. 그리고 내가 깨어났을 땐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이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오랜 수면시간을 가졌음에도 머리가 묵직했고 온몸이 뻐근했으며, 골반이 뒤틀린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술 부위가 욱신거리며 아팠다.

처음엔 전혀 고통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아무렇지도 않았었는데 비로소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아침에 받았던 진통제가 생각나 서랍장을 열었고 그곳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녀석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앗!" 몸서리치게 놀라긴 했지만, 녀석의 모습이 이미 익숙해져서인지 아니면 놀란 가슴보다 손끝으로 전해오는 고통의 무게가 더 끄게 느껴져서인지 녀석을 밀쳐내고 약봉지로 손이 먼저 이동했다

서둘러 진통제가 포함된 약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지만 한번 느끼기 시작한 고통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앞에서 뒤로 뒤에서 다시 앞으로 걷다가 침대 위로 뛰어오르듯 올랐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와 창가 쪽으로 걸어도 봤지만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이거 진통제 맞아?" 고통이 쉽사리 가라앉지 안 차 약봉지 하나를 더 털어 넣었지만 그럼에도 효과가 나타나진 않았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화가 스멀스멀 머리 뒤쪽으로 태양을 안고 머리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기어이 머리 꼭대기로 기어 오른 화가 정수리에 깃발을 꽂자, 눈이 돌았는지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 

"아~ 아~ 이게 모두 너 때문이야~ 죽여버릴 거야. 아~~~"화가 난 내가 서랍 속에서 Quill을 꺼내어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며 소리쳤다. 

어찌 된 일인지 내가 그렇게 요란한 소리를 질렀는데도 간호사나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진 않았다. 

그렇게 악을 쓰고 나니 조금은 화가 풀린 듯 시원하고 개운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소리 지르다 오전에 맞았던 신경안정제를 또 맞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론 물건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진 않았다. 

재밌는 건 아무도 나의 행동을 간섭하지 않자 혼자 미친년처럼 자다 일어나 소리 지른 내가 뻘쭘해져 오히려 그런 행동을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바닥에 널브러진 녀석을 치우기 위해 아직은 쓸만한 왼손으로 녀석의 깃털 끝을 살짝 쥐고 서랍장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러다 문득 쓸데없는 의문이 들었다. 

'왼손으로 녀석을 쥐면 어떻게 될까?' 하는 그야말로 쓸데없는 의문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런 의문을 가졌을까? 나조차도 그런 의문을 가졌던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호기심에 왼손으로 녀석을 움켜줘 봤다. 

순간,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 속 폭주 기관차가 내달리듯 빠르게 달렸다. 

호흡도 고르지 못하고 가빠졌으며 눈동자의 초점도 흐려졌다. 그러다 침대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부터 왼손잡이였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말이다. 

이번에도 의식이 사라진 뒤의 일이라 어떻게 그런 행동을 했는지 기억은 없다. 다만 결과물을 가지고 짐작했을 뿐이다. 

의식이 돌아온 후 Quill이 침대보에 적어 넣은 글을 읽던 나는 마치 미친년처럼 울부짖으며, 병실을 뛰쳐나와 전 남편의 집으로 향했다. 

글 말미에 아들 로이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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