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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Quill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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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Oct 25. 2024

The Quill ( 8화 )

8화: 단지(斷指)

"악!" 너무 놀라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그리고 동시에 숨이 막히는 듯 답답했다. 감나무 아래 묻어두었던 녀석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책상 위에 버젓이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움직임 때문인지 녀석의 파란 깃털이 미세하게 떨고 있었는데 얼핏 보면 숨 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잠시 스쳤던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몸이 굳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말도 안 돼 어떻게…."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 두려워 서둘러 도망치고 싶었다. 

그곳을 나가기 위해 방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손에 묻은 핏자국과 흉터투성이인 내 손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뭐지…. 설마! 내가?" 그것 말고는 갈라져 손끝에 묻은 피나 되돌아온 녀석의 실체를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쉽게 인정하지도 못하는 건 어떠한 기억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도 안 돼" 녀석이 나를 통제하는 건가? 이젠 나조차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다시 한번 녀석을 묻었다. 

다만, 전날의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확신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번엔 CCTV 동선에 들어오는 곳으로 선택했다.




제발 아니길 바랐다는데….

화면 속 나는 마치 미친년처럼 맨손으로 땅을 팠다.

그리고 녀석을 손에 들고 유유히 집 안으로 들어오던 내가 CCTV를 슬쩍 져다 보며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마침내 집 안으로 들어온 나는 그것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그 자리에 쓰러져 잠에 들었다.




"너! 반드시 내가 죽일 거야! 설령 그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날 가질 수 없을걸! 내가 반듯이 그렇게 할 거거든" 여전히 책상 위에서 날 비웃듯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때였다. 녀석을 제거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생각난 것이 말이다. 

"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지…." 머릿속에 화목보일러가 떠올랐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녀석에게 다가가 녀석의 머리채를 잡고 밖으로 나와 화목 보일러가 있는 보일러실로 향했다. 

발끝으로 화목보일러의 걸쇠를 '툭'하고 걷어차고 보일러 문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훅'하고 밀려들었다. 

"잘 가라!" 녀석을 잠시 바라보던 내가 옅은 미소를 머금고 녀석을 밀어 넣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굳이 이런 표현을 하는 건 녀석을 밀어 넣는 순간 내가 정신을 잃었었기 때문이다. 

"악!"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정신을 잃었고 정신이 들었을 땐 Quill이 아닌 나의 오른팔이 화목보일러 안쪽에 있었다. 

다행히 물집이 생긴 것 말고는 크게 상처가 나진 않았다

문제는 손에 생긴 상처보다 영원히 녀석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겠다는 불안감과 이미 바닥을 드러낸 무력감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더 이상 Quill을 쥘 수 없도록, 아예 팔을 잘라내면 어떨까? 하는 극단적인 상상을 하게 되었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독기 같은 것이 생겨났다. 

어쩌면 장작을 쪼개기 위해 사용하던 손도끼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떠오른 순간, 소름이 돋았다. 

팔을 잘라낸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막상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까운 지인은 물론이고 이제는 나조차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서둘러야 했다. 그나마 내가 조금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때 끝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불구덩이에 손을 밀어 넣을 정도로 녀석이 빠르게 나를 잠식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팔을 자른다는 건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만약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떠다녔다. 

홧김이긴 했지만, 막상 실행하려니 겁도 나고 눈물도 났다. 

역시 나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내가 나약한 인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끊어내지 않으면 앞으로의 일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그것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팔을 자른다는 건 생각보다 끔찍하고 위험한 일이야 할 수 있겠어?' , '무슨 소리야! 지금이라도 멈춰야 해 지금이야 이성적인 판단이라도 하지 나중에 그마저도 못 하게 되면? 다음 희생자가 로이가 아니란 보장도 없잖아!' 상반된 상상이 하늘을 날다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러다 마음속에서 또 다른 합의점을 찾아냈다. 

팔이 안 된다면 손가락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현실적인 타협안이었다. 

손가락을 자르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펜을 쥘 수 없는 손이라면, 이 끔찍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을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팔을 자르는 것보다 조금은 안전할 수도 있을 것도 같다는 근거 없는 상상을 했다. 

생각이 그곳에서 멈추자 나는 그 길로, 곧장 마트로 갔다. 

마트라고 해 봐야 조그만 구멍가게에 지나지 않는다. 

워낙 시골이어서 차를 타고 나가지 않는 이상 시천 마트가 그나마 이곳에선 유일한 마트였고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던 마음이 조급해져 그곳을 찾았다. 

결심은 했지만, 여전히 두려워 술이 필요했다.

술이 없다면 그런 생동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 나약해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그런 선택을 했을 거라며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가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주저하진 않았다. 

"어서 오세요! 못 보던 얼굴인데…. 여행 오셨나 봐요?" 주인아주머니가 밝게 인사를 건넸지만 싸구려 미소조차 나눌 기분도 그럴 사정도 아니었으며 목례하는 것조차 힘겨워 어떤 리액션도 없이 술이 진열된 곳으로 걸었다. 

어쩌면 그런 내 모습이 조금은 싹수없어 보였을 테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손에 잡히는 데로 소주병을 주워 담고 카운터에 내려놓으려는데 계산대 옆 바닥에 종이상자에 담겨있는 소주 박스가 보였다. 

"그냥 이걸로 주세요." 평소 맥주 한 캔 혹은 소주 반 병이 주량이었던 나로선 소주 한 상자는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것을 다 마시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잘린 단면을 소독이라도 하려면 어느 정도 여유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계산하려고 카드를 꺼내는 손이 몹시 떨렸다. 

불안한 눈동자와 떨리는 손을 바라보던 주인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고 아가씨가 무슨 술을…. 많이도 사시네요. 설마 이걸 다 드시진 않겠지요. 하하하! 어디 놀러 오셨나 봐요?" 아주머니가 웃어 보이며 말을 건넸지만 난 여전히 댓 구 하지 않았다. 

"이 동네는 계곡도 없고, 놀만한 곳도 별로 없는데…. 하긴, 이 추운 날씨에 계곡이 있다고 한들 그림의 떡이긴 하겠다. 하하하!" 진열대를 청소하던 아저씨가 아주머니 쪽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뭐라는 거야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마저 쓸어요" 아저씨의 농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주머니가 눈을 흘기며 소리쳤다. 

연이은 질문에 억지로라도 미소 짓지 않으면 질문이 계속될 것만 같아 짧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무언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마른침만 삼키고 말았다. 

마트를 나와 차 문을 열기 위해 들고 있던 소주 상자를 내려놓으려는데 주인아저씨가 쫓아 나와 뒤쪽 차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혹시 안주 같은 건 필요 없나요? 파지로 만든 감말랭이가 있는데 그거라도 드릴까요?" 

"아니요 됐어요. 그냥 술만 있으면 돼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서둘러 인사하고 차를 몰았다. 

아주머니가 손을 번쩍 들자, 아저씨가 고개를 숙이며 가게 안으로 황급히 사라지는 모습이 백미러에 비쳤다. 그리고 내가 사라질 때까지 아주머니가 내 쪽을 바라봤지만 난 애써 모른 체했다.

사실 차로 이동할 만큼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이미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던 나는 100m만 넘어가도 자동차로 이동하는 극강의 게으름뱅이였다. 

이혼 전 투닥거리며 싸울 때 나의 이런 모습이 그에게 약점이 되리란 걸 그땐 몰랐었다. 

막상 막바지가 되면 주머니 속 그 사람의 먼지마저도 싫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건 나뿐 아니라 상대도 마찬가지였기에 자그마한 약점도 크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차가운 알코올이 내 목을 타고 내려갈 때, 머릿속의 두려움도 다 함께 사라지기를 바라며 마치 푸아그라를 만들 때 우리 안에 넣어둔 거위에게 강제로 먹이를 먹이는 것처럼 마구 쑤셔 넣었다. 

차갑게 식은 소주였지만 목구멍을 타고 흐를 땐 몹시 뜨겁게 느껴졌다. 

어느새 소주 한 병을 다 마셨지만, 오히려 정신은 선명했다. 

그리고 또다시 술병을 따고 거위 목구멍에 먹이를 쑤셔 넣듯 다시 한번 그것을 밀어 넣었다. 

"컥" 온전히 그것을 받아마시지 못한 목구멍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것을 밀어 올렸다. 

'아~ 아까 감말랭이라도 받아올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렇게 마시다 쉬다를 이후로도 서너 번 더 반복하고 나니 머릿속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지금 손가락을 잘라야 해!' 이미 만취한 이성이 서둘러 결단을 내리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의 재촉에 먼저 반응한 건 눈물이었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아니 어쩌면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스스로 진실을 밀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한참을 울었다. 그것도 소리 내며 울었다. 

내가 운다고 한들 들어줄 사람도 나무랄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펑펑 소리 내며 울었다. 

그렇게 실컷 울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졌으며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며 사방이 빙빙 도는 듯 어지러웠고 구토라도 할 듯 속이 울렁거렸다. 

두 발로 걷지 못하고 사족보행으로 보일러실까지 기어간 내가 손도끼의 머리를 잡았다. 

손잡이를 잡겠다고 뻗었던 손이었는데 머리가 잡혔을 뿐 의도한 건 아니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금속의 기운이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전이되어 한기가 느껴졌지만, 술기운 때문인지 오히려 정신이 드는 듯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 그 때문에 주저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받침목에 오른손을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그것을 내리쳤다. 

그것을 실행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막상 실행했을 땐 순식간이었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었다. 

세상의 모든 아픔이 손끝에 몰려있는 듯 난생처음으로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술에 취한 상태였지만 고통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고통이 줄어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누구나 겪는 고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정답인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스스로 그리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눈앞이 점점 흐려졌다. 

잘려 나간 오른손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고 나는 그것을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다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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