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마을

생각이 머무는 곳

by 서기선

2월 28일, 막내아들의 수료식을 위해 강원도 인제를 찾았다.

입소할 때 잠시 들렀던 이곳 만해마을 숙소가 마음에 남아 있었기에, 이번 일정에서는 망설임 없이 그곳을 예약했었다.

이미 한 번 머물렀던 장소라는 사실 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편안했다.

몇 달 전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저 청결하고 조용한 숙소라는 인상만 남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방문은 달랐다. 하룻밤 머무는 공간으로만 기억하기에는, 그곳이 남긴 여운이 생각보다 깊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곳은 몇 년 전 TV 프로그램 1박 2일에도 소개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만해마을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장이었기에 글을 쓰는 처지에선 이미 마음을 빼앗겼었다.

그곳은 만해 한용운의 사유와 시간이 겹겹이 쌓인 공간이다.

숙소를 나서면 맞은편에 북카페가 있다.

책과 차가 나란히 놓인 자리, 몸보다 마음이 먼저 쉬어가는 곳이다.

만해마을 북카페.jpg 만해마을 북카페

숙소 오른편으로 발길을 옮기면 호텔 입구가 보인다.

새벽녘에 도착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동판 조형물이 벽면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만해의 문장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면서, 그것이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시대의 숨결에 더 가까운 문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해마을 입구.jpg 만해마을 입구
만해마을 동판.jpg 만해마을 장식용 동판 중에서...

나는 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관광지에서 흔히 느끼는 설렘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이곳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이 먼저 지나간 자리 같았다. 말보다 침묵이 먼저 머물렀고, 침묵보다 시간이 더 깊게 스며든 공간처럼 말이다.

아쉽지만 이번에도 기념관을 관람하지 못했다. 지난번에도 그러했는데, 이번에도 여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그 시간을 놓쳤다.

투숙객에게 주어지는 무료 관람의 기회는 결국 다음을 기약하는 약속으로 남았다.

돌아서던 발걸음이 매서운 한파만큼이나 차가웠지만, 결핍이 주는 애틋함이 있기에 후회하지는 않았다.

겨울의 냉기가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다리 사이로 스며드는 한기는 남쪽의 공기와는 분명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숙소 왼편에는 커다란 종이 보였고, 그곳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는 한용운님의 글이 전시되어 있었다.

문학은 언제나 그렇듯, 말보다 말하지 않은 것들이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나는 전시되어 있던 문장들 앞에서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그것들 뒤로 흐르는 또 다른 의미의 침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조용히 가슴속에 채워 넣었다.

쫓기듯 살아온 나에게, 만해마을은 잠시 시간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장소였다.

철부지 같은 마음이 잠시 깃들었던 순간이었으며,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공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만해마을은 몸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생각이 머무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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