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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리랑'으로 읽고 쓰고 말하는 김제 시민들

책을 읽고 토론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지적 체험이다.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때, 변하지 않는 내 생각에만 머물고 있을 때 어느 순간 거품 같은 공허감도 든다. 생각할 수 있는 근력이 없기에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 그 무엇인가를 갈구할 때, 책 한 권은 강력한 도구가 된다. 나와 생각이 다른 타인과의 책 나눔은 생각을 확장해주고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게 해준다.     


 소설 아리랑의 조정래 작가는 인생이 증발해 버리는 착각을 느낄 정도로 '먹고 자고 쓰는' 글 감옥 4년 8개월간의 시간을 통해서, 원고지 2만 장가량의 《소설 아리랑》 12권을 완성했다. 이런 <소설 아리랑>이 김제시에서 읽기와 쓰기 그리고 말하기를 통해서 시민들의 생각과 정신을 변화시키고 있다.     


분량만으로도 5,300페이지가 넘은 대하소설은 김제시립도서관에서 2022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시민들에게 읽혔다. 작은 불씨가 큰 산을 태우듯 올해 상반기 금구도서관에서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소설 아리랑> 읽기가, 하반기에는 김제시립도서관 본관에서 12권 전권이 완독 되었다.      


그 중심에는 시민들과 열정적인 도서관 직원들 그리고 전주, 부안 등 인근 지역에서도 찾아와서 매주 저녁 시간 함께 책을 읽고 근현대사의 역사 공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10월부터는 <소설 아리랑> 12권 174장을 시민들이 참여해서 원고지에 필사하는 릴레이까지 진행 중이다. 정성주 김제시장을 비롯한 시의회 의장, 그리고 시민들 174명이 동참하는 이 프로젝트는 12월 말이면 완료되는데, 1만8,000매가량의 원고지 분량을 아리랑 문학관에 기증한다고 한다.     


김제는, 넓은 들과 끝도 한정도 없이 펼쳐진 호남평야의 중심이며 곡창이다. 대동여지도를 엮어내기 위해 전국을 일곱 차례 이상 샅샅이 답사하던 김정호 선생은 호남평야에 발을 디딜 때마다 이 넓은 벌에 무릎 꿇고 이마 대어 고마움의 절을 올렸다고 한다. 이 땅의 곡식으로 이 땅의 목숨 5할이 먹고 살았다는, 풍요로움을 간직한 생명의 땅이 호남평야였기 때문이다.     


그 풍요로움만큼이나 이 땅과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에 혹독한 수탈과 처절하리만치 힘든 수난의 대상이었다. 소설 아리랑을 읽는 내내 시민들은 식민지 시대의 굴복감과 패배감, 수치심을 경험했다. 또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친일파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분노했다. 하지만 끝까지 저항하며 독립을 맞이한 민초들의 숨결과 역사적 사실을 접하며, 김제라는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고, 강한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중국 근현대 문학의 아버지 "민족의 영혼"으로도 평가받는 작가 루쉰은 일본 유학 생활 중,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민족의 진정한 변화는 문학 및 예술을 통한 국민정신을 개조시키는 문예 운동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물질적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김제 시민들이 경험한 ‘정신적인 삶’ 그리고 ‘지역에 대한 자긍심’등이다.      


김제에서 근현대사의 흘러갔던 시간이 <소설 아리랑>을 통해서 다시 복기 되고, 앞으로의 미래의 정신에 기여하고 있다. 책 한 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 함께 읽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활동이 '정신적 자양분'이 되고 있다.     


큰 산맥 같은 책을 읽고, 필사하고, 서로의 정신적 삶에 기여한 김제시민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소개도서

《소설 아리랑》 (조정래 지음 /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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