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가 주저않아 오열한 날들

벌판에서 마주한 내 감정과 생각들

by 독서로 경영하라

그날도 평소처럼 뛰기 시작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날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어서,

하지만 날씨가 쌀쌀해서

내 마음이 가장 약해지기 쉬운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처음에 주로 달리기를 했던 장소는 벌판이었다.

아무도 없고 혼자달리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벌판을 가르며 달리다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난다.


생각과 함께 감정도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이상하게 가슴이 묵직했다.

숨은 가쁜데, 마음은 더 가빠지는 느낌.

겉으로는 여전히 괜찮은 척 살아가지만

속으로는 스스로가 점점 작아지는 느낌

뭔가를 해도 만족스럽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또 불안하다.

나도 그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아버지와 외삼촌을 연달아 떠나보내며

삶이 정처 없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장례를 치르고,

절차를 다 마쳤음에도

내 안에 남아 있던 감정들은

한 번도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다.

‘상실감’이라는 단어가

그때 처음 내 안에서 무게를 갖기 시작했다.


달리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뛰기만 했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왜 이 멀쩡한 벌판에서 울컥하는지

도무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눈물을 닦으려고 잠시 멈춘 순간,

억눌러 두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 올라왔다.


아버지께 더 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중년의 문 앞에서 더 작아진 내 존재감,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

달리면서도 예전처럼 잘 따라주지 않는 몸

그 모든 감정이 섞여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듯하다.

나는 결국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찬 흙바닥 위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뜨겁게 울었다.


누가 본다면 창피할 수도 있지만

(벌판이라 그런 일은 없다)

그 순간에는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울음이었지만

그 울음은 분명

내가 오래도록 미뤄온 감정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울음이 지나가고 나자

마음 한쪽이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막혀 있던 곳이 아주 좁게 열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달렸다.

다음 날도, 그다음 주도

비슷한 순간이 찾아왔다.

달리다 멈추고,

눈물이 고이고,

다시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 일을 반복했다.


우울감이 사라진 건 아니다.

상실감이 없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감정들이 더 이상 나를 압도하지는 않았다.

감정에 밀려 무너지는 대신

감정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힘이

조금씩 생겨났다.

달리기라는 단순한 움직임이

내 안의 뒤엉킨 것들을

천천히 풀어내고 있었다.


중년의 삶은

언제 벽이 나타날지 모른다.

갑자기 왜 이렇게 힘든지,

왜 사소한 일이 마음을 흔드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날도 많다.

하지만 그 벌판에서 울던 날

나는 내 감정이 한 번은 터져야 앞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강함이 아니라,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진짜 강함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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