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처음엔 그저 도망치고 싶었다

가만히 있으면 더 무너질 것 같아서

by 독서로 경영하라

"잠깐 나갔다 올게."

어느 날부터 내가 자주 하게 된 말이다. 아내는 금방 알아차렸다.

"또 달리기 하려고?"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평범한 대화였지만, 그 말 속에는 다른 뜻이 숨어 있었다.

'잠깐 나가서 숨 좀 쉬고 올게.'

'잠깐만 이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어.'



집 안에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더 깊게 가라앉던 시기였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어머니를 늘 위로하고 힘을주시면 아버지 역할을 하시던 외삼촌의 사고 소식까지 들었다. 상실이 연달아 밀려오자 일상 속 어떤 소리도 마음에 닿지 않았다.

일을 하고 사람과 말을 섞어도 어딘가 한쪽이 비어 있는 기분이 계속되었다.


건강에 대한 염려도 커졌다.

문득 '이러다 나도 아버지처럼 갑자기 아파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찾아왔다.

'열심히 살면 뭐하나, 인생 뭐 있나.'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 웬지 불안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였던것 같다.

이상하게 몸을 움직이고 싶어졌다.

아니 움직이지 않으면 죽을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머릿속 장면들이 계속 반복 재생되며 숨이 막히는 듯한 순간이 찾아왔다.

마침 사회는 러닝 열풍이 불고 있었다.

SNS에도, 거리에도, 공원에도 어디든 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누구에게는 건강을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내게는 그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됐다.


잠깐이라도 집을 벗어나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아무 생각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머릿속을 비워낼 수 있는 시간. 그게 내가 원했던 거의 전부였다.


아무 말 없이 운동화를 신었다.

특별한 계획도 없었다.

그냥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다행히 집 앞에서 조금만 나가면 벌판이 있어서 달리기에는 참 좋았다. 아무도 없는 벌판을 그저 달리기만 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걸음이 빨라졌고, 어느 순간 달리고 있었다.

얼마나 뛸지도 정하지 않았고 어디까지 갈지도 몰랐다. 그저 몸이 앞서 나갔다.

달리기 시작하자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장면들이 잠시 뒤로 밀려났다.

우선 몸이 힘들었다. 1킬로를 채 뛰지 못했다.

오래 붙잡혀 있던 감정들이 잠시나마 멈춰 있는 느낌이었다. 그 시간 동안만큼은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도, 외삼촌의 이름이 적힌 사고 명단도, 장례식장의 무거운 공기도 조금 멀어져 있었다.


달릴 때 남는 것은 오직 숨소리와 심장 박동뿐이었다. 그 단순함이 내 마음을 간신히 붙잡아줬다.

달리고 돌아올 때면 감정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문 앞에서 잠시 서서 식어가는 땀과 함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마음을 모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뛰었다. 그리고 또 뛰었다.

아내는 이제 내가 "잠깐 나갔다 올게"라고 말하면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다녀와."

짧은 한마디를 남길 뿐이었다.

그 말 속에는 내 마음이 어디쯤에 있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달리기는 처음부터 목표도, 기록도, 계획도 없었다.

그저 견디기 위해 시작한 움직임이었다. 도망치듯 뛰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도망이 조금씩 나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달리던 중에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버티던 감정이 갑자기 터져버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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