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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준 Aug 16. 2015

청년의 코기토(Cogito)

글 4

너의 삶의 등대는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가? 네가 바라보며 걸어가는 곳이 삶의 목표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살아가는 이유를 묻는 것도 참 웃긴 일일 테지만. 그래도 삶을 지탱하는데에 그럴듯한 이유 하나쯤은 갖고 사는 것이 풍파 가득한 이 곳에서 나를 지탱하는 하나의 유용한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사람들이 영혼 없는 삶의 이유를 댈 때면 그 것이 너무 얄팍하고 무의미한 논리여서 나를 당혹케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물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던데 의지할 만한 지팡이 하나 정도도 마련해 놓지 않는 것은 자신에 대한 무책임이다. 죄목은 자신에 대한 방조죄쯤 될 것이다. 너는 어디를 보며 걷고 있는가.


아직 겪어야 할 삶의 여정이 많이 남아 싫더라도 이승의 개똥밭에 굴러야 할 우리네 청춘들은 더욱이 필요하다. 세상사에 행복한 소식 듣기가 로또 당첨확률만큼 가혹하다. 뉴스의 메인 토픽인 경제 불황, 북한의 도발, 청년실업은 마치 거대하게 덮쳐오는 수레바퀴 같다. 기운이 빠지더라도 일어나 나아가야 한다. 주저앉으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릴 테니까. 중요한 것은 나아간다는 것이다. 절더라도 나아가야 한다. 일부러 저는 것은 보기 거북하지만 나아가기 위한 의지의 표명은 당당하다. 그렇기에 너와 나도 당당하다. 그러기 위해서 나만의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청년의 코기토(Cogito)가 절실하다.


데카르트는 말했다.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즉, 데카르트는 사유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확인했고 그것 자체가 존재의 본질이 됐다. 존경하는 한 평론가는 시인의 코기토를 '나는 언어를 의심한다. 고로 나는 시인이다'라는 명제에서 찾는다고 말한다. 너는 어디서 네 존재를 찾는가.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 것은 삶의 이유쯤 될 것이다. 네가 짚는 지팡이의 이름일 것이다.


생각해보시라. 그것의 이름이 좌우명이든 개똥철학이든 그 무엇이든. 핵심은 '나의 코기토'이다. 오롯이 내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비틀거리는 나를 세워줄 수 있다면 그것이 남들보다 덜 우아하고 덜 철학적 이어도 된다. 다만, 전심으로 껴안을 수 있다면 된다. 이 진흙탕 속에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너의 코기토는 무엇인가? 


그걸로 대답이 된다면 좋다.

자. 이제 일어서서 앞으로 갈 차례다.

먼저 갈 테니 금방들 오시길.


출처_『버려진 옛 대전터널』_ http://mrgoodguy.tistory.com/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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