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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준 May 29. 2020

내려앉은 마음과 몸을 위해

난필. 17



구멍 난 영혼은 더 가벼울까.


 완강한 현실에 부딪혀 마모된 영혼이 있다. 점점 닳고 없어진 영혼에서 무언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확실한 느낌이 든다. 몸부림칠수록 더 가라앉는 늪에서, 몸도 마음도 무기력하게 침전한다. 구멍 난 영혼은 더 가벼울까. 모조리 비어버린 영혼이 가볍다면 차라리 뭐라도 더 토해 내버리고 싶다. 그럼, 텅 빈 영혼은 날 수 있을까. 그럼, 그 비어버린 껍데기가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이 가고 다음 날이 오더라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걱정거리만 파도처럼 리듬감 있게 다가와 마음을 날카롭게 깎아낸다. 방황하는 마음은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상처 내고 있다. 모든 마음이 모두를 찌르고 있다. 주방의 식칼처럼 척척 자리 맞춰 정리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에겐 사람이 필요한 법이라, 서로의 뾰족한 부분을 둔탁하게 두드린다. 상처를 주고받으며 껴안는다. 그렇게 서로 아프며 위로한다.


 이곳은 생채기 가득한 곳이라, 저 위의 깨끗한 것들은 모르는 투박함이 있다. 둥근 것들이 둥글게 살아갈 때, 그것들은 절대 알지 못하는 첨예한 현장이 있다. 치열하게 부딪히는 마음속에 찰나의 불꽃이 있다. 그렇게 둔탁하게 위로하는 가라앉는 껍데기들이 있다. 우리들은 그 속에 있다.





 맘과 몸이 닳아 없어진 모양이 '마모'일까. 저 모양이 미처 다 닳아 없어지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껍데기라면, 소진된 영혼의 모양은 네모(ㅁ)인가 보다. 그래서 영혼이 먼저 다 타버린 맘과 몸은 바닥으로 주저앉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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