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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치료 에세이 <제1화>

사람 말고 사회를 치료하고자 하는, 나는 ‘작업치료사’입니다

by 석류
※ 일러두기
2019년까지 병원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하다 퇴사한 저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차별 없이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되길 바라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는 시민사회단체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전업 활동가로 일한 기간은 6개월 남짓. 결코 길지 않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장애인의 일상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을 둘러싼 사람과 마을, 즉 지역사회의 변화가 제도적 변화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지요. 그래서, 그냥, '지역사회에서 장애인과 함께 살아 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장애인활동지원사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인과 함께 재밌게 지낼 방법을 찾다 보니 식사 모임, 그림 모임, 춤 모임, 술자리, 이야기자리, 상영회, 간담회 같은 이런저런 마을 활동에 함께 참여하게 됐어요. 장애인과 함께 둘이서 할만한 활동이 보통 지역사회에 그리 많진 않거든요. 그렇게 하루하루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운 좋게도 동네에 있는 의료협동조합에 소속되어 방문 작업치료사로 일할 기회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한 게, 장애인과 함께 재밌게 살 궁리를 하다 보면 결국 제 삶에도 참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 환경에서 작업치료를 해보고 싶다.' 병원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할 때 항상 하던 생각입니다. 지역사회에서 방문 작업치료사로 실제 일하며 경험한 것을 세 편의 글로 나누어 싣습니다.




나는 누군가 꿈이 뭐냐 물으면 항상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대답하던 사람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하루하루 그날그날의 행복에 충실하게,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러다 3학년쯤 되어 실감했다.


‘아무 목표도 없이 계속 이렇게만 살아서는 안 되겠다!’


학교, 학원, 피시방, 집, 학교, 학원, 피시방, 집… 어릴 적부터 사회와 담을 쌓고 살던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그나마 공부밖에 없었는데, 대학 시절 난 그것조차 재미없다는 이유로 안 하고 있었으니…. 귀찮은 일과 몸 쓰는 일을 지독히 싫어하고, 이렇다 할 기술도 없고, 누군가를 직접 상대하는 일을 하기엔 사회성도 부족했던 나.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그런 나도 할 수 있는 소중한 일자리가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다. 작업치료학과를 졸업해서 작업치료사가 못 되면 마치 인생이 끝날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 정체 모를 불안감이 날 휘감고 있었다. 난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으로 결심했다.


‘일단 대학은 졸업하자. 작업치료사 면허부터 따고 보자.’


그런데 이게 웬일? 그렇게 시작한 작업치료 공부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공부하면 할수록 작업치료가 생각보다 훨씬 깊고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게 느껴졌다.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말하던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쯤 어느새 좋은 작업치료사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다양한 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작업에 참여하기


작업치료는 인간이 작업을 수행하고 작업에 참여하는 과정 자체가 치료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된 학문이다. 이때 작업이란 삶의 목적이 되는 활동,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 삶에 꼭 필요한 활동 등을 말한다. 치료받는 당사자에게 지금 어떤 활동이 가장 중요한가에 따라서 손 씻기, 세수하기 같은 기본적인 일상생활 활동부터 배드민턴이나 낚시 같은 취미생활, 종교활동, 직업 활동, 돌봄 활동 등 무엇이든 작업이 될 수 있다.


보편적인 의료서비스는 장애인의 몸을 어떻게 ‘정상’으로 만들지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경우라면? 아무리 치료해도 고쳐지지 않을 것이 확실한 손상이나 질병에 대해서도 그래야 하는가? 작업치료는 그런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며 장애인의 몸이 아니라 그가 참여하고자 하는 작업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자고 제안한다.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을 반드시 걷게 만들어야만 치료라고 할 수 있는가? 변화한 몸에 알맞은 휠체어를 고르는 방법을 알려주고 안전하게 휠체어를 타기 위해 주의해야 할 점을 알려주는 것은 치료가 아닌가? 자폐스펙트럼장애로 인해 나타나는 개인의 행동 특성을 모두 없애야만 치료라고 할 수 있는가? 보편적인 방식으로 감정표현과 의사소통이 어려운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에게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활용해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치료가 아닌가? 인지장애가 있는 사람의 기억력을 향상해야만 치료라고 할 수 있는가? 알람 소리가 들리면 약통에서 직접 약을 꺼내 먹을 수 있도록 습관을 형성해 주는 것은 치료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몸을 ‘교정’하거나 ‘강화’하지 않고 장벽을 없애는 방법들이 세상엔 얼마든지 존재한다. 100일 동안 땀 흘리며 삽질하는 대신 굴착기를 사용하거나 글씨를 손으로 쓰는 대신 타자기와 인쇄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작업을 쉽게 만들 방법을 고민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 이는 사실 인류가 평생 해온 일이고 그런 방법론을 장애인의 삶에 적용하자는 하나의 철학이 바로 작업치료라고 볼 수 있다. 다양한 몸을 획일화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나 ‘다양한 몸’을 가진 인간이,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다양한 작업’에 참여할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작업치료인 셈이다. 그 과정이 치료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면 치료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는 작업치료가 기존의 의료체계에 제기하는 질문의 핵심이다.



바뀌어야 할 것은 장애인의 몸이 아니라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다


난 장애가 단순히 신체적 손상에서 비롯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몸과 환경의 상호작용에서 비롯한다고 말하는 작업치료가 좋았다. 한껏 기대에 찬 마음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작업치료사 면허를 딴 나는 두 곳의 시립병원, 한 곳의 대학병원에서 약 4년 반 동안 작업치료사로 일했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직접 작업치료사로 일해보니, 현실 속 작업치료사가 하는 일은 예상과 달리 시시하기 짝이 없었다.


병원에서 일하며 내가 느낀 감정은 대부분 실망감과 무력감이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제품'을 재빨리 '처리'해야 하는 컨베이어벨트 앞의 노동자처럼, 우리는 30분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를 30분 안에 ‘처치’한 뒤 다음 환자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30분이라는 시간은 치료의 방향을 고민하기는커녕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제대로 파악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 일을 하고 있자니 내 자신이 하나의 톱니바퀴 부품처럼 느껴졌다. 자본주의라는 기계가 매끄럽게 돌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열심히 회전하는.


병원이라는 환경도 문제였다. 병원은 '환자'들이 퇴원 후 실제로 살아가야 할 지역사회 환경과 너무 달랐으니까. 병원엔 그들이 평소에 사용하던 침실도, 화장실도, 주방도 없고 그들이 평소에 다니던 길도, 카페도, 마트도 없었다. 가장 답답했던 건 병원의 최대 입원 기간이 길어야 3개월 정도였다는 점이다. 내가 치료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게 되고, 관계가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싶으면 그들은 아쉬운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 이제 다음 주면 퇴원해야 한대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이런 환경에서는 도저히 의미 있는 목표를 가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작업치료를 진행할 수 없었다. 불평도 해보고 노동조합도 가입해 봤지만, 이는 병원 내 노동조합에서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의 문제였다. 내가 원하는 작업치료가 실제 임상 현장에서 이루어지려면 의료 재활 분야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했는데 그러려면 병원이 바뀌어야 했고, 그건 보건복지부나 국민건강보험공단, 나아가 법이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에 8시간씩 의미 없게 느껴지는 일을 하며 사는 삶은 지독하게 재미없었다. 더 의미 있게 살고 싶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작업치료사로 일하는 걸 그만두고, 장애인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처음 찾은 곳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는 시민단체였다. 거기서 난 동료들과 함께 이렇게 외쳤다.


“장애는 손상이 아니라 사회에서 비롯한다. 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게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바뀌어야 할 것은 장애인의 몸이 아니라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다.”


버스의 차체를 낮추고 계단을 없애면 휠체어 이용자도 버스를 타고 지역사회를 이동할 수 있고, 방송에서 자막과 수어 통역을 제공하면 청각장애인도 뉴스를 볼 수 있으며, 중증장애인이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면 중증장애인도 일을 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가 만들어 낸 사회적 변화는 실질적으로 장애인의 작업 참여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니 넓은 의미에서 봤을 때 우리가 하는 활동은 일종의 작업치료였던 셈이다.


우리는 모두 작업치료사였다. 장애인의 몸이 아니라 사회를 치료함으로써 장벽을 허물고, 장애인의 작업 참여를 가능하게 만드는 ‘해방의 작업치료사.’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489호(2024년 8월호)에 실린 글을 수정해 올립니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https://www.eureka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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