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시장의 급등락을 배경으로 수많은 투자 성공 신화가 쏟아진다. 조금만 시간을 되돌려보자.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금값이 치솟자 ‘역사적 우상향’을 증명했다며 수익을 자랑하는 이들이 넘쳐났고, 그 전에는 코인 시장을 통해 '파이어(FIRE)족'이 되었다는 무용담이 줄을 이었다. 한국 사회를 지난 10년간 지배해온 부동산 성공론은 말할 것도 없다.
일부의 성공 스토리를 들으며 '그때 살걸'이라며 과거의 선택을 자책하는 ‘껄무새’가 늘어나더니, 어느덧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대중은 스스로를 ‘벼락거지’라 명명하며 자학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과연 그때 투자하지 않았던 과거의 결정이 당신을 진짜 거지로 만든 것일까?
"타인의 수익은 당신의 손실이 아니다"
삼성전자 주식을 5만 원에 사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8만 원으로 오른 주가를 보고 '3만 원을 잃었다'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자. 실제로 당신의 자산에 손실이 발생했는가?
기회비용은 실질적 손실이 아니다. 사람들은 과거에 특정 자산을 매수하지 않아 발생한 ‘미실현 이익’을 현재의 ‘실질 손실’로 둔갑시켜 스스로를 괴롭힌다. 어제 오른 주식, 지난주 당첨된 로또를 사지 않은 모든 순간을 ‘거지가 된 순간’으로 규정한다면, 인류 중 그 누구도 벼락거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대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 심리의 모순은 더욱 명확해진다. 주식 시장이 폭락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아 수억 원을 지킨 사람이 스스로를 ‘벼락부자’라며 자축하는 경우를 본 적 있는가? 우리는 오를 때만 ‘거지’가 되고, 내릴 때는 ‘부자’가 되지 않는 선택적 피해의식에 빠져 있다. 돈을 번 이들은 SNS에 무용담을 올리기 바쁘지만, 잃은 이들은 침묵한다. 결국 우리는 실체 없는 타인의 '운 좋은 성공'과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비교하며 패배감을 자가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왜 스스로를 불행함으로 밀어 넣는 시대가 되었는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누군가와 연결되고 감정을 공유하려는 본능이 있다. 소셜미디어는 이 본능을 자극하는 FOMO의 강력한 기폭제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가보지 못한 호화로운 휴양지, 평생 구경하기 힘든 하이엔드 아파트, 상위 0.01%의 라이프 스타일을 끊임없이 노출 시킨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이 우리 삶의 기준점을 왜곡한다는 점이다.
연봉 5천만 원인 사람은 1억 원 연봉자의 일상을 보며 자학하고, 연봉 1억 원인 사람은 건물주의 삶을 시기한다. 내가 겨우 한 단계를 따라잡아도 알고리즘은 즉시 그 위의 세상을 보여준다. 디지털이 설계한 이 격차는 결코 좁혀질 수 없으며, 우리는 평생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를 쫓으며 스스로를 불행한 삶으로 밀어 넣게 된다.
이러한 비교의 덫은 투자 영역에서도 치명적이다.
1,000만 원을 투자해 30%의 수익(300만 원)을 낸 투자자가 10억 원을 투자해 1억 원을 번 자산가의 소식을 접하는 순간, 자신의 훌륭한 수익률과 전략은 순식간에 '실패'로 둔갑한다. 스스로의 성취를 깎아내리는 자학은 결국 조급함을 낳고, 무리한 투자나 오판의 길로 들어서게 만드는 비극의 시작이 된다.
"타인의 행복과 나의 행복을 비교하지 말자"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약 270여 년 전 이미 이렇게 이야기 했다.
"그저 행복해지고 싶다면 그 목표는 쉽게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남들보다 더 행복해지길 원한다. 이는 언제나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들이 실제보다 더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조차 남들과의 비교 우위로 측정하려 한다.
하지만 남보다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다른사람의 화려한 파티를 구경하느라
내 식탁 위의 소중한 양식이 식어가게 두지 말자.
참고 및 출처: 엉드루님의 블로그 글, X.에서 돌고있는 재정적 평범함이란 감옥(The Prison of Financial Mediocr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