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교수는 한국사회의 역사적 과정 가운데 부마와 5.18의 경합성의 부당함을 밝히고 있으며, 역사의 전환기 가운데 동일한 궤도에 놓인 연속적 사건임을 인식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부산과 광주, 두 항쟁의 경합성은 한국정치의 맥락 가운데 지역갈등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인식하고 이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고 있지만 반공주의라는 이념적 한계성과 긴 독재의 시절가운데 철저히 무너졌던 민중운동의 경험이 세대를 지난 아직까지도 그 제약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3.1운동으로부터 시작되어 21세기로 이어지는 촛불 항쟁까지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대대적인 봉기를 한국 민주주의가 달성한 성과로 평가하고 있다. 발제자는 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수구세력으로부터 정권을 지키기 위한 권력 공고화의 필요성과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 코로나19의 방역의 성과에서 보여준 공동체 의식과 책임성을 기반 하는 K-Democracy로의 발 돋음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놀라운 붕괴 그리고 거룩한 좌절이라고 하는 부마항쟁과 5.18민주항쟁에 대한 발제자의 설명과 이후 우리에게 남은 과제를 앞에 두고 나는 생각한다. 뜨거운 시대 또는 명예의 시대 또는 거룩의 시대를 가장 치열하게 관통해온 그 때의 청년들은 이제 50대, 60대가 되어 명실상부 한국사회의 기득권이 되었다. 여기서 나의 질문은 붕괴와 좌절은 누구의 경험으로 남아있는가, 그리고 우리라고 칭해지는 과제는 과연 누구의 과제인가 하는 것이다.
역사의 변곡점이었던 두 항쟁은 정당성이 없는 군부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국가폭력에 맞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조금 더 평등한 사회, 소외 받는 이가 없는 사회, 더불어 함께 어울리는 대동사회를 꿈꿨으며, 그리고 그 힘은 한국사회 전체를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큰 동력이었음은 명백하며 그 무엇보다 더 ‘시민‘이고자 하였던 강한 열망이 그 거리에 있었다.
그렇게 2017년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켰고 정부여당에 180석이라고 하는 막대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놀라운 붕괴와 거룩한 좌절의 신념을 대변하는 정치에 대한 기대가 이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은 더 나은 사회 그리고 더 나은 삶으로의 변화를 기대하였으며, 이를 만들 수 있는 전권을 부여하였다.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 정치의 모습은 어떠한가?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 나는 책임을 묻고자 한다.
류호정 의원은 가짜 출입증으로 국회의사당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는 삼성 간부에 대해 폭로하였다. 그리고 류호정의원은 삼성의 기술착취에 대한 증언을 위해 삼성의 부사장을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같은 상임위의 양당 간사의원들은 코로나19, 재계의 불필요한 악영향 등의 핑계를 대며 출석을 요구한 의원에게 상의도 하지 않고, 하루 전에 증인을 바꾸어버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시민들은 대한민국이 삼성공화국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하루에 7명 한 해 2400명이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회, 매일 같이 단신 뉴스로 나오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소설가 김훈은 말한다. ‘사람들이 날마다 우수수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져서 땅바닥에 부딪쳐 으깨지는데, 이 사태를 덮어두고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 앞으로 나갈수록 뒤에서는 대형 땅 꺼짐이 발생한다.
올 해 더 이상 반복되는 죽음의 행렬을 막고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운동본부가 설립되었다. 세월호와 같은 사회적 참사를 비롯하여 연일 발생하고 있는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사고에 대한 강력한 제도적 조치를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이에 묵묵부답이다. 이낙연 당대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어떻게 답할 것인가.
2018년 10월 광주에서 처음으로 광주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그리고 작년 10월 제 2회 광주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되었다. 하지만 이를 개최하기 까지 정말 얼마나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 나는 처음으로 퀴어문화 축제를 참여했다. 그리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멸시와 혐오의 눈과 언어들, 존재함 그 자체를 부정하고자 하는 이들의 폭력들 속에서 도저히 견딜 수 가 없었다. 그 가운데 가장 상처받은 일은 신성한 5.18광장, 금남로에서 더러운 축제를 열게 할 수 없다는 5.18구속 부상자회의 현수막이었다. 성정체성, 장애인, 이주민 등 구별과 분별, 차별이 아닌 동등한 인간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수 해 동안 노력해온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에 대해 어떻게 답할 것인가.
우리가 기억해야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죽음으로부터 5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일요일은 쉬게 하라! 라는 50년 전의 외침은 너무나도 서글프게도 아직까지 유효하다. 여전히 최저임금 미준수율은 40%에 육박하고 주휴수당은커녕 근로계약서도 제대로 작성하지 않는 곳이 많다. 그리고 300만이 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부당해고를 당해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호소할 수 없으며, 휴일이 보장되지 않으며 노동시간의 제한이 없다. 또한 쪼개기 고용으로 인하여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15시간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들은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는 임금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답할 것 인가.
광주의 본촌 산단, 평동 산단, 하남산단의 황량한 거리를 걷다보면, 한국어 보다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필리핀, 중국어를 더욱 많이 듣게 되는 때가 있다. 현재 광산구에 살고 있는 외국인 주민은 1만 4천여 명, 광산구 전체 인구의 3.6%이고 대다수가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이 임금 체불, 퇴직금 미지급, 산재 은폐, 불법파견 등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차디차기만 하다.
과연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시민’인가? 다시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오월의 횃불이 다시 필요한 그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과거의 국가폭력은 일상 속으로, 시민들의 삶 속으로 느슨하게 그리고 치명적으로 스며들어 얼굴을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뜨거웠던 광주의 5월, 부마의 10월의 횃불이 인권과 평화 그리고 평등을 향했듯이 지금 우리의 횃불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해야한다.
나는 결단코 놀라운 붕괴와 거룩한 좌절을 이야기하는 정치세력의 과제가 단지 수구세력의 집권을 막는 것으로 자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넓고 다양해져야 한다. 그 동안 우리 주변에 시민이라고 생각했으나 동등한 시민이 아니었던, 성소수자,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이주민, 여성 등이 정치의 공간에서 어떻게 대표되게 할 것인가를 목표해야하며 시민들의 다양한 얼굴을 닮은 정치의 공간에서 다양한 논의들과 다양한 주장들이 건강하게 토론되는 살아있는 민주주의로의 발돋움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 할 것이다.
5.18과 부마항쟁이 우리에게 남긴 역사적 유산은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환경들, 일터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정치의 공간 등 수많은 공간들 속에서 불의에 맞서고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내는 것보다 함께, 연대를 통해 그 목소리를 함께 할 때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시대를 통과해나가는 지금 우리는 1980년과 2020년을 어떻게 연결시켜 이어갈 것인가, 민주화운동이 상징하였던 평등과 존엄의 세상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시작하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