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그날의 카페

머묾

by 설안



이제 내일이면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내 글을 발표하게 된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자리에 서지 않았을 텐데. 문득 옷장으로 시선이 갔다. 무대에 설 때마다 나는 늘 옷부터 고민했다. 네이비색 여름 정장을 꺼내 스팀다리미를 천천히 움직였다. 김이 올라오며 구겨졌던 천이 부드럽게 펴졌다.


그때 메시지가 왔다.

“언니, 나 내일 갈 수 있을 것 같아. 일정 변경했어. 내일 보자!”

“응, 고마워. 희주야. 내일 봐!”

두 명이나 초대한 게 과한가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보여주고 싶었다. 무너졌던 날들 옆을 지켜준 사람들이었다. 요즘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는지… 글이라면 조금은 건넬 수 있을 것 같았다.


괜히 인터뷰가 더 신경 쓰였다. 대표님이 미리 질문을 알려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예상할 수 없는 건 늘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모카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최수아입니다. 저는 원래 바이올린 연주자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꿈도 꾸고 있습니다.”

모카가 고개를 기울였다.

“모카야… 엄마가 긴장돼서 그래.”

“야앙.”


거울 속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무대는 익숙하다. 이번엔 악기 대신 글이 있을 뿐이다.

화장을 마치고 머리를 손질하던 중 핸드폰이 진동했다. 단체창이었다.

“저, 오늘 일찍 도착할 것 같은데, 혹시 일찍 오시는 분 계세요?

일찍 오시면 커피 한잔해요.”


하늘이었다.


괜히 손이 분주해졌다. 고데기를 다시 집어 머리 컬을 한 번 더 만졌다. 옆머리도 괜히 정리했다. 자스민 향수를 손목에 찍어 가볍게 문질렀다. 원래도 일찍 갈 생각이었지만 시간을 조금 앞당긴 셈이었다.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평소보다 공을 들였다는 게 티가 나는 얼굴. 낯설다고 해야 할지. 한번 웃어봤다가 스스로 어색해져 다시 표정을 지웠다.


단체창에 답장할지 망설이다가 그에게 조심스럽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저 15분 후면 도착할 것 같아요. 어디세요?”

“네, 저 청년센터 1층 카페에 있어요. 조심히 오세요.”

지하철 한 정거장을 남기고 휴대폰 화면을 거울처럼 들여다봤다. 립스틱을 한 번 더 덧발랐다. 괜히 입술을 다물었다 벌려보며 색이 번지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카페 문 앞에서 잠깐 멈춰 섰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을 밀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하늘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미 커피를 앞에 두고 있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그의 옆얼굴을 따라 얇게 걸려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답게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들어오는 걸 보고 시선을 옮겼다.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몸을 조금 바로 세웠다. 나는 어색하게 시선을 피해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괜히 바로 앉지 못하고 말했다.

“저… 커피 좀 시키고 올게요.”

“네. 다녀오세요.”


메뉴판을 보는데 사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처럼 따뜻한 라테를 주문했다. 컵에서 가느다란 김이 올라왔다. 자리에 돌아와 앉자 하늘의 시선이 잠깐 컵으로 향했다가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그가 웃었다.

“여름인데도 따뜻한 거 드세요?”

“네.”

나는 컵을 감싸 쥐었다. 따뜻한 열기가 손바닥으로 천천히 퍼졌다.

“저는 웬만하면 따뜻한 걸 마셔요. 오늘은 좀 긴장돼서요. 잠도 깰 겸.”

“아… 발표 때문이에요?”

“그런가 봐요.”

둘이 동시에 웃었다. 잠깐 시선이 마주쳤다가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수아님, 바이올린 하신다고 하셨죠?”

“네.”

“악기 하는 분들 보면… 멋있어요.”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제 친구가 첼로 전공인데요.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하는 걸 본 적 있거든요.

저는 클래식은 잘 모르는데… 좋더라고요.”

악기를 하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내게 음악은 감상이 아니라 늘 분석과 평가의 대상이었으니까.


나는 괜히 커피잔을 만졌다.

“하늘님은 원래 책 좋아하셨어요?”

“네. 읽는 건 좋아해요.”

그는 웃으며 덧붙였다.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럼… 왜 신청하셨어요?”


하늘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다가 말했다.

“처음엔 생각이랑 좀 달라서 그만둘까도 했어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저는 아니다 싶으면 바로 정리하는 편이거든요.”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나를 잠시 바라봤다.

“…근데 이상하게 계속 오게 되더라고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잠깐 말을 멈췄다. 마치 더 말할까 고민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시선이 잠깐 내 얼굴에 머물렀다가 천천히 커피잔으로 내려갔다.


왜 계속 왔을까.

그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후로는 책 이야기, 영화 이야기, 가벼운 농담들이 이어졌다.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대화가 끊기지 않았다. 하늘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30분쯤 남았네요. 우리 올라갈까요?”

아직 조금 더 앉아 있고 싶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시간이 빨리 가네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하늘이 웃으며 말했다.

“저, 인터뷰하는 줄 알았어요.”

나는 웃었다.

“좋은 뜻이죠?”

그는 잠깐 나를 보다가 말했다.

“네. 저도 재밌었어요.”

그가 그렇게 말하고 잠깐 웃었다.

그 웃음이 왜인지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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