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다. 사실 5분이라 하는 것도 횡단보도 때문이고, 신호등 빨간불에 걸리지 않으면 집부터 학교 정문까지 3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등교 시간이 8시 30분인 학교에 가기 위해 8시 20분에 집에서 나왔다. 그나마도 가기 싫어 뭉그적거렸다. 아침 특별 활동으로 신청했던 컴퓨터 수업에는 툭하면 지각했다. 초등학생에게 7시 50분 등교는 가혹하긴 했다.
중학교는 15분 거리였다. 사실은 20분 거리였는데, 공원을 가로지르고 팔다리를 휘적여 빠르게 걸으면 15분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최대한 빠른 길을 찾기 위해 매일 아침 모험을 떠났다. 시장을 뚫고 건물의 좁은 틈새를 비집으며 샛길을 찾았다. 내가 찾은 샛길은 샛길이 아니었다. 낮은 담벼락 너머로 건너편이 내다보였을 뿐,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목이 아니었다. 나는 지저분하게 쌓인 쓰레기봉투와 스티로폼 따위를 피해 겅중겅중 걸으며 후회했다. 스마트폰도, 카카오맵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고등학교는 걸어서 갈 수 없었다. 버스를 타고 45분이 걸렸고, 내려서도 10분 정도 걸어야 했다. 그즈음 나는 초기 신도시에 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버스 배차 간격이 넓은 데다가, 날씨가 나쁘거나 차가 밀리기라도 하면 1시간 가까이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일이 빈번한 곳이었다. 버스를 놓칠 상황에 대비해 나는 등교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집에서 나서곤 했다. 제시간에 버스를 타면 남들보다 40분 가량 학교에 일찍 도착하고 그 다음 버스를 타면 지각하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내 등굣길에 타임워프가 발생한 게 분명하다.)
하루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고 나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평소보다도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나는 느릿하게 걸었다. 평소보다 더 여유롭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졌다. 5분쯤 걸었을까, 내 앞에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보였다. 이 시간에 나 말고도 학교에 가는 학생이 있다니,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 애를 따라 걸었다. 모르는 애일지라도 결국 종착지는 같을 테니까. 그런데 좀 이상했다. 그 애는 내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길로 걷고 있었다. 그때 나의 모험 본능이 발동됐다. 학교가 멀어진 이후 등하교에만 급급했던 내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이런 길로도 갈 수 있었나? 의아해하며 따라 걸었다.
그 애는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을 따라 걸었다. 경사가 만만치 않았는데,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가 산에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길이 점점 더 요상해졌다. 지하 동굴처럼 생긴 입구가 있었는데, 얼떨결에 그곳에도 따라 들어갔다. 나와서 보니 산허리를 뚫어 만든 터널이었다. 너무 많이 걷지 않았나?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하나둘 등교하는 학생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교복이, 그 애들과 내 교복이 달랐다.
나는 학교에서 버스로 한 시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학교 주변을 잘 몰랐다. 내가 같은 학교 학생이라 착각했던 그 애는 교복이 아주 닮은 근처의 다른 학교 학생이었다. 나도 모르게 동네를 탐방하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학교에 도착한 건 정문이 닫히기 10분 전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가까스로 교실에 도착하자 “웬일로 딱 맞춰 왔어?” 친구가 물었다. “모험을 떠났었어……” 내가 말했다.
대학교는 더 멀었다. 통학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기숙사에 살았고, 자취를 해 보기도 했다. 더 이상의 모험은 없었다. 코앞이 강의실인 데다가, 피치 못할 사유로 통학을 할 때엔 다른 길을 시도해볼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편도로 세 시간 되는 거리였으므로 매일 잠이 부족했다. 많은 문제가 한꺼번에 터졌다. 이후로 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취미 같은 건 완전하게 잊고 지냈다. 이전과는 다른, 너무 많은 종류의 생각을 하며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종종 발이 이끌리는 대로 걸었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이쪽으로 들어가 저쪽에 닿을 수 있다는 발견이 놀랍고도 즐거웠다. 그러나 그 일이 즐거웠다 말하면서도 지금의 나는 그런 모험을 하지 않는다. 내가 그때 무작정 걸을 수 있었던 건 길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지금은 지도앱을 켜면 여기부터 저기까지 최단 거리로 도착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운전할 때엔 최소 비용이나 최단 시간을 기준으로도 길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빠른 게 최고다. 빠른 길을 두고 늦은 길로 가면 억울해지기까지 한다. 그때에 비해 지금 시간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것도 아닌데 왜일까? 아침에 학교에 가는 일보다 휴일에 마트 가는 길이 급할 이유가 없다.
요즘은 딱히 멀리 다니는 일 없이 동네만 느긋하게 산책을 한다. 여전히 나는 신도시에 살고 있다. 행운이라면 행운인데, 신도시의 풍경은 매일 새롭다. 같은 길을 걸어도 보이는 광경이 다르다. 지난달에 있던 빵집이 사라지고 옷가게가 생겨 있거나, 분명 공터였는데 오랜만에 가 보니 40층짜리 건물이 우뚝 서 있는 식이다. 나는 그것으로 모험을 대체한다. 같은 곳을 빙빙 돌며 여긴 이렇게 변했네, 저긴 저렇게 돼 버렸나, 한다. 참 편리한 방식이다. 가성비가 좋다. 그래서 가끔은 좀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