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팝업 스토어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차출돼서 간 거였는데, 주요 지점 아니랄까 봐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그곳에서 나는 빵 속에 크림을 넣었다. 반자동 기계를 이용해서 넣으면 됐는데, 요령이 없으면 크림이 균일하고 깔끔하게 들어가지 않았다. 같은 매장에서 1년쯤 근무했을 즈음이니 나는 거기서 가장 오래 근무한 사람 중 하나였다. 자연스럽게 기계를 잡게 되었다. 기계를 작동하면 드르륵 탁 하는 소리가 난다. 드르륵 탁, 드르륵 탁 반복하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사실 익숙해지기만 하면 그렇게 어려운 작업도 아니다. 속도가 빠르면 리드미컬한 게 얼핏 있어 보이기는 한다. 한 커플이 “생활의 달인인가 봐.”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아주 잘 들렸다. 입꼬리가 올라갔을까, 잘 숨겼을까.
오픈 준비 시간과 마감 후 정리 시간을 합해 하루에 12시간 가까이 일했다. 지금 생각하면 못할 짓인데, 그땐 별 생각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하는 내내 손님들로 북적북적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빵에 크림을 넣으면 오븐에서 새 빵이 나왔다. 빵을 쥐여 손님을 보내면 새 손님이 찾아왔다.
요상하게 위로가 되는 건 빵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거였다. 손님들도 빵을 받아 가기 위해 수십 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백화점에는 매장마다 줄을 설 수 있는 공간이 암묵적으로 주어져 있었는데, 모든 팝업 스토어를 통틀어 내가 근무한 매장의 줄이 제일 길었다. 우리 매장의 대기 손님이 다른 매장의 공간을 침범하는 상황이 생겨서 백화점 측에서 지그재그로 대기줄까지 쳐 주었다. 그런 상황이 흔치는 않은 모양이었다. 팀장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나와 (정확히 어떤 직급·직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속닥거리며 우리 매장을 구경했다.
“빵 나오면 종류별로 두 세트 따로 빼주세요.”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돌아 보니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여자가 내 등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팝업 스토어의 특성 상 매장이라 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 진열대 안쪽은 오롯이 직원들의 작업 공간으로, 오븐이나 뜨거운 판, 각종 조리 도구 들로 복잡한 곳이었다. 주문을 여기까지 들어와서 한 건가? 순간 당황해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게 백화점 이름이 적힌 명찰을 보여 주며 여기 어디서 일하는 대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고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는데, 그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거면 모든 설명이 끝나지 않았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래서요?”
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그렇게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납득이 빠른 것도 아니어서,
“줄이 길어서 한참 기다려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물어버렸다. 그러자 여자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말씀 드리는 거 아니에요.”
말했다. 여태껏 말한 걸 뭘로 들었냐며 질책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어처구니가 없는 건 내 쪽이었다. 언급했듯 대기 줄이 길었고, 오븐에서 빵이 구워지는 시간을 생각하면 제일 마지막에 줄을 선 사람은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은근슬쩍 뒤로 들어와 명찰을 내보이는 행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는, 의도와 의미를 이해하면서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아니, 뭐가 이렇게 당연한 건데?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녀는 누구보다 먼저 빵 두 세트를 받아갔다. 타이밍에 맞게 대표님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대표님은 “어이구, 안녕하십니까.” 하며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그럼요, 드려야지요. 한 김 식혀야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십쇼. 아니면 빵 나오면 계신 곳으로 가져다 드릴까요?” 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절망감을 느꼈다. 내 안에 있던 견고한 성이 무너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부탁 좀 드릴게요.”
그녀는 산뜻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 또각또각 걸어갔다. 내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나는 과할 정도로 숙이는 대표님이 실망스러웠지만 그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백화점 측이 절대적인 ‘갑’이며 입점을 원하는 매장 측이 절대적인 ‘을’이라는 사실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짐작할 만한 내용이었다. 게다가 나는 일개 직원인 반면 대표님은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입장이 아니던가! 그래도 부당한 건 부당한 거였다. 그녀가 없는 곳에서라도 시간 들여 기다리는 저 사람들은 뭐가 되냐며 토로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표님의 반응은 내 예상과 달랐다.
“○○이가 사회생활을 잘 못하는구나.”
말문이 턱 막혔다. 다른 어떤 말로도 그 말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부당한 일을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사회생활을 못하는 건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내심만큼은 나와 같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날 이후 나는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또 부당함을 견디는 것이 사회생활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고, 주변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소통하는 정도로는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하기에 부족한 걸까? 생각해 보니 나는 일을 잘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내가 생각해도 융통성 있고 애교 있기보다는 묵묵하고 원칙주의자인 편이다. 하지만 그 융통성이라는 게 부당함을 묵인하는 태도를 의미하는 거라면 사회생활을 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활을 잘하는 대표님에게 두 달 넘도록 퇴직금을 받지 못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