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선택적 믿음

by 자하

나는 잊을 만하면 사주를 본다. 사실 완전히 믿는 건 아니고, 재미로 보는 쪽에 가깝다. 주로 연말이나 새해 초에 본다.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기대하는 시점에는 희망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어진다. 그러므로 나쁜 말을 퍼붓는다는 후기가 많은 역술인에게는 사주를 보지 않는다. 앞으로 잘 살아 보고 싶어서 사주를 보는 거지 욕 먹으러 사주를 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 D는 전해 듣는 내가 화가 날 정도로 험한 말을 듣고 왔다. 객관적으로 말한답시고 함부로 말하는 역술인은 직업인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 사주는 좀 특이한 편이다. 누구에게 사주를 봐도 그렇게 말한다. 어떤 역술인은 내 사주가 물바다, 그것도 얼음물이라고 말한다. 물도 좋고 얼음도 좋은데 게임 캐릭터가 아닌 사주를 설명하는 말이라 하니 살짝 불안해진다. 사주를 볼 줄 모르는 나조차 흔히 들은 말이 있다. 모든 오행이 골고루 있을수록 격이 놓고 편하게 살 사주라는 것. 내 사주는 여덟 글자 중 여섯 글자가 물이다. 어떤 원리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면 일곱 개로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내 물은 차가운 물이다. 물이 기본적으로 음(陰)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내 물은 음 중에서도 음이라고 한다.




작년 겨울, 일이 계속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에 대한 기대감도 없이 평생 이대로 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그래서 사주를 봤다. 당연하게도 내 사주 팔자는 변하지 않았다. 물이 많은 사주, 추운 얼음물 사주.


“선생님, 그럼 이거…… 나쁜 건가요?”


전에 들었던 것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들어 놓고도 나는 울적했다. “네, 그래서 좀 나쁘네요.”라는 말을 듣게 될까 봐 심장이 쿵쿵 뛰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본다 해서 나쁜 말을 들었을 때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언뜻언뜻 사주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홀로 사주를 보고 온 날 밤 D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 하필이면 개인적으로 겪은 안 좋은 일이 사주와 엮였고, 앞으로 악화되면 악화됐지 나아질 일은 없다고 들었다.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아픈 마음이 후벼 파였다.


“좋다 나쁘다 할 건 아니고, 주변 환경이나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주입니다. 아무래도 많이 쏠린 사주이다 보니 좋은 해엔 아주 좋고 나쁜 해엔 아주 나쁠 수가 있습니다.”


보통이 어렵다는 말은 여기서도 해당됐다. 뛰어나기 어려운 만큼 보통이 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통의 삶이란 큰 횡재수는 없더라도 그럭저럭 문제 없이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소소한 행복과 약간의 슬픔을 느끼며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사는 것이다. 오행이 골고루 있는 사주가 좋다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가지고 있는 오행의 종류가 다양하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무난하게 나를 지켜낼 수 있다.


역술인은 맞닥뜨린 해가 나와 얼마나 잘 맞느냐에 따라 내 운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과거 몇 년은 나에게 최악의 해였는데, 사주로도 그렇게 나와서 신기했다. 최악이라는 게 어느 정도로 최악인지 나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찝찝하고 우울해졌다. 운이 좋지 않은 해를 만나면 이 정도까지 최악이 되는구나, 2023년도는 어떨까.


"그래도 대운 흐름 보니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좋아지는 사주입니다. 지금까지 잘 안 풀렸더라도 앞으로 조금씩 좋아질 겁니다."


빵긋 웃음이 났다.




나는 품고 있던 고민들을 모조리 풀어 놓았다. 가장 고심하고 걱정했던 분야가 직장이어서 직장 관련으로 질문을 많이 했고, 그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바넘 효과라 해도 나는 모른다. 너무나도 공감이 돼서 맞아요, 맞아요만 외치는 맞아요 봇이 됐다.


"이 사주는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렇습니다.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주입니다."


역술인이 말했다. 사실 내 모든 고민의 핵심을 꿰뚫는 말이었다.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며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때론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게 너무 힘들었다. 온종일 우울하고, 기력 없고, 영혼이 죽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또 다른 의미로 고통스러웠다. 남들은 힘들어도 다 잘 견디면서 살던데 왜 나는 이렇게 못 버티고 튕겨 나가버리지?


그러니까 바넘 효과고 뭐고 간에 홀랑 넘어가 버리고 싶어지는 거다. 나를 너무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아서.


“지금까지 잘 안 풀렸을 수도 있습니다. 차차 나아질 겁니다. 올해보다 내년이 낫습니다. 하지만 아주 큰 변화가 있지는 않겠습니다. 이번에 오는 변화는 긍정적입니다.”


애매모호한 말이다. 그래서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주도 아니고 원하는 일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주라니. 그냥 고집쟁이 아니냐고…… 여전히 시원치는 않지만 나쁘지 않다. 어찌 됐건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는 뜻이지 않은가. 희망적인 말이니 의심 없이 믿어 보려 한다. 이런 말은 믿어도 손해 볼 거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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