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입학해서 내가 받은 첫 과제는 ‘내 이야기 쓰기’였다. 형식도, 분량도 없이 자유롭게 쓰면 된다고 했다. 조사할 필요도 없겠다,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되겠다, 참으로 편리한 과제였지만 나로선 이만큼 막막한 과제가 없었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게 ‘내 이야기 하기’였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글은 강제로 쓴다고 해서 써지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마감 기한도 정하지 않았다. 다른 학우들이 한 주 혹은 두 주 만에 제출한 그 과제를, 나는 한 달이 가도록 제출하지 못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털어 놓는 것이 어렵다. 특히 내밀한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교수님이 제시한 과제의 조건은 단 한 가지였다. 필터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적을 것. 그게 문제였다. 나는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마음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이 너무나 두렵고 부끄러웠다. 나는 자꾸만 나를 포장하고 싶었다. 내가 느낀 슬픔이나 우울이 정당하다 주장하고 싶었고, 나의 치졸하고 못난 부분을 축소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봐도 어정쩡한 글이 나왔다. 일기에 가까운 글을 쓰도록 요청 받았는데, 완성하고 나니 소설이었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다. 얼마나 부끄러움이 많으냐면, 내가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한다. (내가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라고 고백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슬픈 영화를 보다 울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취기가 올라 흥이 올랐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긴장해 말이 빨라졌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내 속마음을 들켰을 때가 가장 부끄럽다! 그래서 나는 남들과 슬픈 영화를 볼 때 딴생각을 하고, 절대 취하지 않기 위해 술을 칼같이 끊으며, 발표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한다. 그러는 데에 실패했을 때엔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부끄럽지 않은 척을 한다. 매번 긴장 상태다. 어마어마하게 에너지가 소모되고 피곤하다.
교수님은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도록 과제를 제출하지 않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혼자 찔려서 눈치를 보긴 했다. 한참을 쓰고 지우길 반복하던 새벽 두 시, 나는 무작정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퇴고 따위 하지 않겠노라, 수많은 학생 중 하나인 나를 교수님은 기억하지 못하리라, 내일 아침 수업 때만큼은 반드시 제출하고 말리라! 그런 마음가짐으로 쓰기 시작하니 글이 막힘없이 술술 나왔다. 어느덧 기숙사 자습실에 남은 건 나뿐이었다. 차마 정말로 퇴고를 하지 않을 수 없어 간단히 퇴고를 마친 뒤 1층에 있는 인쇄실에서 인쇄를 했다. 아침 7시였고, A4용지 9매 분량이었다. 두 달이 다 되도록 A4 1장 채우기가 힘들었는데 하루 만에 9장이라니. 허탈한 마음으로 방에 돌아갔다. 룸메이트인 S가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니, 벌써 일어난 거야, 이제 자러 온 거야…….
이제 자려고…….
비척비척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나를 S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불을 턱끝까지 당겨 덮고 눈을 감았다.
난 지금부터 잘 거지만 넌 이제 연습하러 가는 거잖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마…….
S가 장난스레 비명을 지르며 방을 나섰다. 무용 전공인 S는 매일 아침, 강의 전에 모여 연습을 해야 했다.
아무렇게나 쓴 글을 제출하는 것은 또 한 번의 고비였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눈을 질끈 감고 제출했다. 교수님은 아홉 장의 글에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 주었다. 문학적으로 좋아 보이는 문장엔 밑줄을 쳤고, 구조가 이상한 문장엔 체크 표시를 했다. 시선을 끈 건 맨 마지막 장이었다. 다섯 줄 가량의 코멘트에 이어, 덧붙인 듯한 필체로 충격적인 말이 적혀 있었다.
이제 좀 솔직한 글을 쓰네.
순식간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솔직하게 드러낸 것도 창피한데 솔직하지 않았다는 사실마저 들켜버리고 말았다. 내 100퍼센트를 드러낸 줄 알았는데 200퍼센트까지 들켜버린 상황이라니!
한동안 교수님을 보기 민망했다. 제출된 과제에 온갖 내용들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내 글이 읽혔다고 생각하면 수치스럽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솔직하게 글을 쓰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닫고 나니 글을 쓰는 일이 조금 더 편해졌다. 분석이나 자료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순전히 내 감정 위주로 작성한 글을 남에게 보이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내가 글을 쓸 때 막힌다면 그건 지금도 대체로 자기 검열 때문이다. 이건 이래서 안 될 것 같고 저건 저래서 안 될 것 같아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특히 소설을 쓸 때 그렇다. 그 상태에서 억지로 밀고 나가봤자 이것저것 짜 맞춰 조립한 싸구려 조립 로봇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럴 땐 솔직해져야 한다. 논리가 아닌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손 가는 대로 떠들어 봤더니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알면서도 여전히 솔직해지기는 어렵다. 글을 쓴다는 건 남에게 읽힐 것을 고려한다는 뜻이고, 솔직하게 쓴다는 건 그럼에도 나를 포장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막힐 땐 9장의 글을 떠올린다. 빼곡하게 적힌 코멘트가 좋아서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 그 글을. 그 글은 지금 읽어도 마음에 와 닿는다. 매끄럽게 정돈되진 않았지만 충분히 괜찮은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글을 떠올리면 다시금 솔직해질 용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