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이해 활동적인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은 뒤 매일 아침 호수 공원을 돌고 있다. 7시에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7시 반이 되기 전에 집을 나선다. 요즘은 날이 따뜻해서 걷기 좋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7시 날씨 다르고 8시 날씨 달라서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할지 고르기 어려웠다. 어제 오늘은 간단하게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선선한 것도 아니고 포근하다 느껴지는 날씨니 걷다 보면 덥기까지 하다. 여기저기 꽃봉오리가 맺혀 있다. 양지 바른 곳에 자란 매화나무는 희고 아기자기한 꽃을 활짝 피웠다. 꽃구경을 의도한 건 아니지만 기분이 좋다. 다음 주 즈음이면 만개하지 않을까? 기대감이 차오른다.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이 가장 어렵다. 4.3km 되는 호수 공원을 도는 일보다 집 밖으로 나오는 일이 더 힘들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 자체가 힘든 건 아니다. 학생으로서도 직장인으로서도 7시 기상이면 나쁘지 않다. 며칠만 익숙해지면 모닝콜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뜨인다. 내게 가장 큰 고비는 침대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아…… 가기 싫다. 오늘은 비 안 오나? 어떻게든 나가지 않을 핑계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지만 이렇다 할 방법이 없다. 면사포처럼 하얀 속커튼을 뚫고 노란 빛이 방 안을 비추고 있다.
명백하게 말하자면 사실 내가 걷는 거리는 4.3km가 아니다. 4.3km는 호수 공원의 둘레고, 휴대 전화 앱 기준으로 6km가 내가 실제로 걷는 거리다. 집부터 공원까지 왕복하는 거리가 1.7km, 편도로는 850m. 공원 밖에서 걷는 시간은 어쩐지 운동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기분이 든다. 실제로 조금 느리게, 산책처럼 걷기는 한다. 그 시간 거리에는 사람이 적다. 버스 정류장도 아니고 공원으로 향하는 길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일찌감치 작업을 시작한 인부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요 근래 공사에 들어간 건물들이 많다. 다들 이렇게 성실하게 움직이며 살고 있구나. 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조금 들뜨고 불안해진다.
생각은 이리저리 튄다. 시험 공부를 하러 책상 앞에 앉으면 방이 더러워 보여 견딜 수가 없어지는 것처럼, 운동을 하겠다 마음먹고 집 밖으로 나오면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른다. 어제 그 일까지는 마무리지으려고 했는데 게으름 피우느라 미뤄 버렸지, 이번 달 월급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잘 하고 있는 걸까, 주말까지 책 두 권 읽으려 했는데 아직 한 권도 다 못 읽었지, 그나저나 이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지 않나? 점점 마음이 조급해진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이 가득 있는데 운동한답시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버리는 것 같다. 이 시간에 차라리 일을 시작했어야 했나?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제는 속지 않는다. 이 시간에 다른 일을 한다고 해서 모든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본격적으로 공원 초입에 들어서면 양옆으로 펼쳐진 나무 위에 까치들이 나무 열매처럼 앉아 있다. 길고양이처럼 사람에게 친근하게 구는 개체가 흔한 것도 아니면서 왜 하필 사람들이 자주 지나는 초입부에 떼로 앉아 있는지 궁금해진다. 까치는 똑똑하다고 하니까 사람 구경을 하는 게 아닐까? 매일 이 시간에 나오는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몰라. 멋대로 생각하고 멋대로 친밀감을 느낀다. 까악 깍 우는 소리에 그래, 오늘도 왔어, 이따 보자, 인사를 한다. 너희와 나는 매일 아침 만나는 동지니까.
호수 공원은 이름 그대로 호수를 둘러싸도록 만들어진 공원이다. 옆구리가 찌그러진 타원형이다. 나는 주로 시계 방향으로 공원을 돈다. 반시계 방향으로 걸으면 약간의 경사 때문에 낮은 언덕과 맞닥뜨린다. 운동 효과로 보자면야 언덕이 있는 편이 좋겠지만 내가 원하는 건 습관이다. 매일 아침 온갖 걱정들을 떨쳐내고 꿋꿋이 걸을 수 있는 습관. 게다가 한 바퀴 돌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간단히 스트레칭까지 마치면 시간을 허투루 보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레탄으로 덮인 조깅로는 폭신폭신하다. 몇 바퀴를 돌아도 힘들망정 관절에 무리가 오지는 않는다. 100m마다 내가 지금까지 몇 킬로미터를 걸었는지 알 수 있도록 바닥에 숫자가 적혀 있는데,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내려보면서 3분의 1쯤 왔군, 오늘은 벌써 반인가, 짐작해 본다.
그렇게 잠깐잠깐 숫자를 확인할 때를 제외하면 나는 줄곧 생각에 빠져 있다. 걸을 때 음악을 듣지 않는 나로서는 거의 빨려 드는 데에 가깝다. 조깅로에서 하는 생각은 공원으로 오는 동안 했던 생각과 종류가 다르다. 공원으로 오는 동안 현실적인 고민과 걱정에 빠졌다면 조깅로를 걷는 동안에는 그야말로 몽상에 빠진다. 우주에서 행성을 내려다볼 수 있다면 어떨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금성 앞에 서거나 얼음과 먼지로 폭풍이 치는 토성 앞에 설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빨리 뛴다. 경외감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적절할 수가 없다. 사람은 왜 무엇인가 되기를 소망할까.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개개인은 하나의 점에 불과한데, 어째서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덧없다가 아닌 삶을 더 빛내 보자는 결론이 나오는 걸까.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바닥에 410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4.3km 지점까지 200m, 현실로 돌아가기까지 0.2km.
휴대 전화 앱에서 5km를 걸었다고 알림이 온다. 집에 도착해서 다시 확인하면 6km로 변경되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4.3km를 걸은 기억이 없다. 분명히 이 세계를 걸었는데 내게 남은 것은 이세계의 감각이다. 나는 4.3km를 걸어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벅차고 슬프고 두려운데 도착한 곳은 처음 걷기 시작했던 그 지점이다. 집에 가는 동안 다시 현실적인 고민들에 빠진다. 오늘은 무얼 해야 하더라, 또 게으름 피우면 안 되는데, 돈이 좀 부족해, 내가 고른 이 답이 제발 옳은 선택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