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 가득 짐을 들고 뒤뚱뒤뚱 걷는다. 찰밥에 다섯 가지 나물, 육전, 참외와 딸기와 수박까지, 손이 세 개라도 모자랄 것 같다. 내가 지금 명절을 쇠고 집에 가는 길이던가? 슬슬 헷갈린다. 하기야 원래 외갓집이란 그런 곳이다. 밥을 두 그릇은 먹어야 적당히 먹는다 소리 듣는 곳, 그나마 국물이라도 남기면 왜 이렇게 밥을 못 먹냐 듣는 곳, 그러고 나서도 후식으로 사과와 배를 2개씩은 깎는 곳. 왜, 밈도 있지 않은가. 할머니, 살려 주세요. 더는 못 먹어요.
택시를 탈까?
양손 가득 손에 들린 검은 봉투를 보며 잠시 고민한다. 외갓집에서 본가로 돌아오려면 배차 간격이 30분인 버스를 기다린 뒤 버스에서 내려서도 15분을 걸어야 한다. 버스를 타면 음식 냄새도 많이 날지 모른다. 나는 검은 비닐 봉투에 코를 박고 킁킁댄다. 와…… 맛있는 냄새…… 죽인다.
사람마다 돈을 쓰는 데에 후한 분야가 있고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다. 내가 후한 분야는 책과 차(tea), 교육비, 경조사비이고 그렇지 않은 분야는 택시비와 배달비이다. 나에게 택시비와 배달비는 바지런을 떨면 아낄 수 있는 비용이다. 지각하지 않으면 택시를 탈 이유가 없고, 산책할 겸 가볍게 걸으면 음식을 먹기 전에 입맛도 돋으니까. 택시비와 배달비를 지불하면 편리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글쎄, 괜스레 아까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택시를 타고 귀가하기로 했다. 그냥 걸을 땐 대체로 좋은 날씨에 오래 걸으면 살짝 더운 정도였지만, 양손에 짐을 가득 들고 버스를 타려니 막막한 기분부터 들었다. 게다가 노선이 어쩜 이렇게 빙빙 돌도록 만들어졌는지, 버스로 1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택시로는 15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니 택시란 참으로 유혹적인 존재였다.
앱으로 택시를 부른 뒤 멍하게 서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차 한 대가 내 앞에 다가와 섰다. 미리 확인해 두었던 그 차량 번호였다. 손잡이 모양이 특이해 들여다 보는데 불쑥, 손잡이가 바깥쪽으로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문을 열고 들어서니 2차로 내부가 낯설었다. 뭔가 더 미래적인 디자인이랄까? 아무튼 여태껏 봐 온 택시의 내부와는 많이 달랐다. 짐을 내려 놓고 앉아 두리번대다 질문부터 했다. 호기심은 때때로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열어 주는 열쇠가 되기도 하니까.
“기사님, 혹시 이거 전기차인가요?”
“예, 전기찹니다.”
“손잡이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근데 내부도 좀 독특하네요? 저 전기차 처음 타 봐요!”(전기차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의 이야기이다.)
쫑알쫑알 입이 터졌다. 뉴스에서만 보던 전기차를 처음으로 타 봤다. 게다가 이 주제는 전기차를 모는 기사님에게도 흥미로운 종류였다. 다행히도 기사님은 내 주책을 나쁘게 보지 않으셨는지, “예, 사실 얼마 전에 바꾼 새 차예요.” 하곤 나와 신명 나게 수다를 떨어주셨다.
“내부가 넓죠?”
“네! 조수석이랑 뒷좌석 간격도 넓네요?”
“손님들이 아주 좋아하시더라고요.”
“맞아요, 저 짐 많았는데 지금 엄청 편하게 앉았어요.”
“손잡이는 손님들이 문을 잘 못 여셔서 제가 열어 드리고 있습니다.”
“아, 그래서 갑자기 튀어나왔구나! 안 열어 주셨으면 저도 못 탔을지도 몰라요.”
정말이지 말이 끊이지 않았다. 마침 새로 바꾼 차가 화제여서 그런지 분위기도 좋았다. 한창 날씨, 색깔, 영화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데, 불현듯 기사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학생이에요? 아니면 직장인? 무슨 일하세요?”
“학생은 아닌데 학생처럼 지내고 있긴 해요. 글을 써서요.”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머쓱했다. 당시의 나는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글을 쓰고 있긴 했지만, 남들에게 보일 수 있을 만큼의 그럴듯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순순히 ‘제 인생도 글로 쓰면 책 한 권은 금방인데요.’나 ‘글? 저도 옛날에 글 잘 쓴다는 소리 많이 들었죠.’ 따위의 익숙한 대사를 기다렸다. 그런데 기사님의 반응이 의외였다.
“아, 글! 저도 오래 전에 글을 썼어요. 지금은 안 쓰지만요.”
“와, 정말요? 어떤 글 쓰셨어요?”
“시를 썼지요. 지금은 이렇게 택시 기사를 하고 있지만 문학 소년이었거든요.”
와아, 감탄사가 나왔다. 나와 같은 꿈을 가졌던 기사님이 모는 택시를 타고 있다니.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저는 소설과 에세이를 써요. 시는 읽는 건 좋아하는데 잘 쓰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나도 궁금해졌다.
“그런데 왜 그만두셨어요?”
기사님이 답했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랬지요. 부모님이 농사꾼이어서 어렸을 땐 농사일 도우면서 자랐고 커서는 공장이랑 공사장 돌아다니면서 일했어요. 글 쓸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다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릴 뻔해서 그때까지 모은 돈으로 택시를 몰기 시작한 거예요. 이 차가 세 번째 바꾼 찹니다.”
기사님은 어떤 작가를 좋아했는지, 좋아하는 구절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늘어 놓기 시작했다. 그냥 외우고 있다기보다는 소중하게 여러 번 곱씹고 품어 와 자기도 모르게 외워버린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기사님은 부드럽게 코너를 돌아 내가 사는 아파트 정문 앞으로 나아갔다. 한창 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구간에서 내릴 시간이 오고 말았다. 결제조차 자동으로 처리되는 마당에 더 이상 붙어 있을 방법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택시에서 내리는 나에게 기사님이 당부하듯 말했다.
“학생은 글 오래오래 써요. 나처럼 먹고 사는 일이 당장 급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게 아니면 오래오래 써요. 안 그러면 나이 먹고도 이렇게 생각 나요.”
기사님은 허허 웃고 있었지만 나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나 자신을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때 꿈을 꾸지만, 먹고 사는 일 앞에서는 그 꿈이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른다. 나도 그만두려고 시도했던 것이 몇 번이던가.
아무리 기쁘거나 슬픈 일이라 해도 타인의 것이라 느껴지는 순간 그 감정은 흔하고 진부한 것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반대로 보편적인 감정이라 해도 그 거리가 가깝다고 느껴지면 내 것처럼 절실하게 느껴진다 하고. 사실 내 주변에 문학을 그만둔 사람이라면 차고 넘쳤다. 그런데도 이렇게 좁은 택시 안에서 기사님의 사연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써 보라고 말하는 기사님의 목소리가 어쩐지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