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꽃놀이를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보았다. 당시 가장 친했던 친구와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 불꽃 축제에 다녀왔다. 불꽃놀이도 처음 봤지만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도 처음 봤다. 그 정도로 사람이 많으면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불꽃놀이는 예상대로 아름다웠고, 폭죽 터지는 소리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새까만 밤하늘을 빨갛고 노란 불꽃이 수놓자 내가 뭘 한 것도 없는데 감격스러웠다. 나는 손을 뻗어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는 대신 수많은 불꽃을 눈으로 담았다. 친구가 영상으로 담은 불꽃은 내가 눈으로 본 것만큼 생생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콘서트 장면도, 자연 경관도 카메라에 남기지 않는다. 아무리 휘발된다 한들 눈으로 기억하는 것만큼 그 순간을 강렬하게 기억할 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애슐리에 처음 방문한 건 고등학생 때가 처음이다. 우리집은 외식을 잘 하지 않는 데다 그나마 외식을 한다면 아빠가 좋아하는 메뉴인 감자탕을 먹으러 가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처음 친구들과 애슐리에 갔을 땐 신기함이나 즐거움보다도 당혹감이 먼저였다. 여태껏 가본 음식점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양새여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친구들을 눈치껏 따라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다지 유쾌하지도 않았다. 모두들 익숙하게 행동하는데 나 혼자 머뭇거리는 게 부끄러웠다. 나에게 패밀리 레스토랑이란 ‘비싼 식당’ 그 자체였다. 애슐리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내가, 외식이라곤 감자탕집에 가는 것이 고작이었던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들킬 것 같았다.
나는 집에 가자마자 동생에게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사실 방법이라 할 것도 없었지만, 그날 느낀 당혹감이 너무 커서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뒤 동생은 친구들과 애슐리에 다녀왔다. 나와는 달리 자신이 이런 곳에 처음 와서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했을지, 내가 가르쳐 준 대로 눈치를 보며 어설프게 따라했을지는 알 수 없다.
처음으로 연극을 본 건 대학생 때였다. 연극에 딱히 관심도 없고 집 근처에 극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간 연극을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기야 서울에 사는 것이 아니고서야 극장에 집 근처에 있는 경우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내가 본 작품은 《바냐 삼촌》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배우가 눈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도 신기했지만, 연기 실력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출중해서 더 놀라웠다. 나는 감탄했다. 눈앞에서 보는 연기는 이렇게나 멋지고 황홀감을 주는구나!
이렇게 훌륭한 연기를 이만큼 저렴한 금액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소극장이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당시 연극 티켓값은 영화 티켓값보다 조금 비싼 정도였다. 실은 소극장이어서 나는 더 좋았다. 작고 아담한 공간, 배우의 숨결마저 느껴지는 거리에서 연극을 볼 수 있었으니까.
첫 연애는 스물세 살 때였다. 이른 건 아니고 평범하거나 조금 늦은 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처음이어서였을까. 아주 많이 좋아했고 그만큼 많이 휘둘렸다. 말 한 마디에 껌뻑 죽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는 그 애에게 있는 힘껏 헌신했고, 끝엔 그 애의 잠수로 헤어졌다. 내가 지겨워졌다는 사실은 눈치 챘지만 그런 방식의 이별을 택할 줄은 몰랐기에 상처가 컸다. 2년을 만나고 2년이 넘도록 괴로워했다. 꼭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사람이 나뿐인 듯 처량하게 굴었다.
첫 경험이란 다 이런 식이다. 내가 지금 줄줄 늘어 놓고 있듯 영영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처음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생긴다.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떼 놓고 보면 평범한 일상의 에피소드가 아닌가.
같이 불꽃놀이를 보러 간 친구는 성인이 되며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애슐리에 가는 건 더 이상 두려운 일이 아니다. 연극은 참 좋았지만 나는 여전히 서울에 살지 않는다. 연극을 보러 몇 시간씩 지하철을 타는 게 부담스럽다. 그리고 이제는 오랜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그 친구가 생각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안다.
아무리 강렬한 경험이었다 해도 이렇게 시간 속에 묻혀 간다. 그 경험을 했던 사람도 마찬가지다. 슬퍼야 하나? 하는 의문이 잠깐 들었다가도 이젠 그다지 슬프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의 나는 참 즐거웠으니 그걸로 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