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길을 잃었다. 친구와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탔는데 잠깐 휴대폰을 보는 사이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쳐 버린 것이다. 하필이면 그 구간부터 정류장 간격이 넓었다. 다음 정류장까지 버스로 무려 10분이 걸렸다.
버스 정류장 간격이 그렇게 넓다는 건 외진 곳이라는 뜻이다. 자정이 다 돼 가는 시간에 그 외진 곳을 걸어서 되돌아오기는 어려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대편 버스 정류장이 보이지 않았다. 지도 앱을 켜고 난 뒤에야 반대편으로 향하는 정류장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긴 대체 왜 거리 개념이 다 이 모양이야?!
나는 지도 앱을 보며 열심히 걸었다. 고작 10분 때문에 택시를 타고 싶진 않았다. 지도를 보며 열심히 정류장을 찾아 걸었다. 그런데 아뿔싸, 문제가 또 있었다.
나는 내가 내린 정류장에서부터 지도를 보고 걸어왔다. 내가 찾아야 할 정류장의 반대편 인도에서 걸어왔다는 뜻이다. 그러니 잘못 온 만큼 되돌아가려면 도로의 반대편으로 건너가야 했다. 그런데 그 넓은 도로에 횡단보도가 보이지 않았다. 차선책인 육교도 없었다.
지도 앱을 다시 보니 횡단보도가 없는 것이 맞았다. 내가 얼떨결에 내린 곳은 거대한 트럭들이 오가는 공장 단지로, 인적이 드문 탓에 횡단보도나 버스 정류장의 간격이 넓었던 것이다. 모두가 떠난 공장 단지는 삭막해서, 자정이란 시각에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타야 할 버스의 배차 간격은 25분. 그나마도 빨리 끊기는 버스여서 아직 차가 다니는 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정류장까지 다 찾은 시점에 택시를 타기로 결심했다. 도로에는 당연히 택시는커녕 일반 차 한 대 다니지 않았지만 최근엔 앱으로 택시를 잡을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이 있었다. 나는 앱의 존재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택시에 올랐다. 그 어두운 대로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서 있는 내 모습은 택시 기사님으로서도 섬뜩했을지 모른다.
택시에 오른 나는 억울함과 허탈함을 동시에 느꼈다. 잠깐 한눈을 판 대가로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손해가 컸다. 내릴 곳을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처음 들은 정류장의 이름이 낚시터여서 일부러 더 지나쳤는데 그렇게 도착한 곳이 공장 단지일 줄이야! 밤에 무서운 곳을 피하려다 다른 무서운 곳에 도착한 셈이었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래도 집에 갈 방법을 찾았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었던 걸까? 늘 그랬듯 다른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길을 잃었다는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길은 제자리에 있고 헤매는 건 나인데 ‘길을 잃었다’고 할까?
‘잃다’라는 단어를 사전에 검색하면 많은 뜻이 나오지만 대표 의미는 ‘가졌던 물건이 자신도 모르게 없어져 그것을 갖지 아니하게 되다’이다. 그러니까 1.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어야 하고 2. 그걸 현재는 갖지 않은 상태여야 잃는다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길을 잃는다는 표현은 참 이상했다. 나는 길을 가진 적도 없고 그래서 잃을 수도 없는데 왜 길을 잃는다고 표현하는 걸까? 길은 그 자리에 있고 내가 내 자리를 잃어버렸을 뿐인데 왜.
그러다 문득 잃은 것이 내가 아니라 길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길을 잃어서 서러운데 잃은 것이 나라면 절망스러울 것 같았다. 길을 잃으면 내가 그랬듯 지도를 보거나 택시를 타고 길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내가 나를 잃으면 대체 무슨 방법으로 찾는단 말인가.
왜 길을 잃는 것을 길을 잃는다고 표현하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잠시 한눈 좀 팔았다고 나를 잃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