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산다. 이름은 보리. 올해 7월 두 살이 된 어린 강아지다. 보리는 이름처럼 옅은 보리색 털을 가졌고, 검은콩 같은 눈, 코, 입이 반짝반짝 박혀 있는 조그마한 강아지다. 주접을 살짝 섞자면 어딜 가서도 예쁘게 생겼다 듣는 미견(?)이다. 요 강아지는 겁이 많고 순한데, 얼마나 순하냐 하면 집에 데려온 이래로 소소한 사고 한번 친 적이 없다. 산책 중 배수로를 뛰어넘지 못해 온 가족이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을 한 적도 있다.
다만 하나 안타까운 점은 소형견 특유의 고질병인 슬개골 탈구를 심하게 앓았다는 점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슬개골이 좋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돼, 한 살도 되기 전에 양쪽 뒷다리를 모두 수술 받아야 했다. 심지어 왼쪽 다리는 두 번이나 수술했다. 한창 첫눈을 맞고 신나서 뛰어 놀아야 할 시점에 깁스를 하느라 코 산책에 만족해야 했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반려 동물이 수술을 해 아파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수술 중 잘못될 수도 있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는 일도 만만치 않게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 문제가 생길 확률이 낮다곤 해도 내 강아지에게 문제가 생기는 순간 확률은 100퍼센트가 된다. 수술 경험이 없는 나로선 엄청난 상상력을 유발하는 공포였다.
게다가 반려 동물을 키우는 데에는 마음만 드는 것이 아니다. 온갖 예방 접종이며 미용 등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종에 따라 다르지만 미용이 필수인 아이들이 있다.) 어쩌면 반려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돈과 시간, 애정을 들여서 동물을 키우는 데에 의아함을 가질지도 모른다. 나 하나 보전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사람도 아닌 다른 생명체에 그렇게 마음을 쓰지?
하지만 반려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동물이 사람에게 얼마나 기쁨을 주는지 알 것이다. 단순히 퇴근 후 꼬리를 흔들며 찾아오는 존재가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놀랍게도 인간과 동물은 교감이 가능하다. 가만히 눈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기분과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은 대체로 따뜻하다. 애정과 믿음이 단단하게 박힌 검은 두 눈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사람에겐 말이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던가. 우리는 말로 상처 받고 말로 위로 받는다. 그때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은 말을 하지 못한다. 다만 행동할 뿐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에게서 이렇게나 위로 받고 때로는 그들이 삶의 목표까지 되는 건 좀 신기하지 않나?
나는 그 이유를 보리를 보며 알게 되었다. 보리와 함께하며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기쁨을 얻었으니까. 현실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보리는 나에게 커다란 애정과 위안을 주었다. 물론 이미 언급했듯 아주 조용한 방식의 위로였다.
보리가 위안이 되는 건 오히려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말은 어떻게 해도 정확할 수 없고, 진심을 왜곡한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체온, 꼬리는 어느 것도 왜곡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전달하는 것은 오로지 진심이다. 그래서 나는 보리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기쁜데 슬프다’는 표현은 언뜻 모순되지만 우리는 때때로 그런 감정을 느낀다. ‘나 지금 화가 나!’라고 말해도 실제로는 화가 아니라 섭섭함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는 심지어 스스로의 진심마저도 오해한다. 자신의 감정조차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데 타인의 말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보리는 기쁠 때 눈을 편안하게 뜨고 입을 크게 벌려 웃는다. 혓바닥이 길게 나와 둥그렇게 안쪽으로 말리기도 한다. 섭섭할 땐 끼이잉 소리를 내고, 조를 땐 짧게 두어 번 짖는다. 짖는 건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고, 그전엔 먼저 앞발로 가볍게 툭툭 쳐서 불러 보곤 한다. 꼬리는 대체로 오른쪽 위를 가리키고 있는데, 그건 친밀감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실 보리의 꼬리가 왼쪽으로 향한 것을 본 적은 없다.
동물의 감정은 인간보다 단순하다고 한다. 그래서 설령 보리가 말을 할 수 있다 할지라도 인간이 하는 것처럼 복잡한 기분을 표현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게 보리의 한계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때때로 단순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해 고통 받지 않는가. 보리의 감정은 단순하되 명료하다. 그 명확한 애정이 나를 기쁘게 만드는 것일 터이다. 나는 그래서 보리를 사랑한다. 아름답게 꾸민 몇 마디 말보다 몇 배는 더 깊은 애정과 위로를 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