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시, 스스스스스스. 스팀 돌아가는 소리가 잦다. 선선한 계절이 돌아왔다는 뜻이다. 나는 스팀 돌리는 소리를 좋아한다. 불규칙한 백색소음이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제대로 된 첫 아르바이트를 카페에서 시작했기 때문일까?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면 카페 일부터 제일 먼저 떠오른다. 카페 일은 내게 꽤 익숙하다. 샷을 내리고 물이나 우유를 따르고 얼음을 채우는 일이 내 주 업무다. 가끔은 레시피가 복잡한 음료를 만들기도 하는데, 그조차도 익숙해지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는 지금 주 3일 카페에서 근무한다.
물론 이건 카페 안에서의 업무고, 내 전체 업무가 카페 일인 것은 아니다. 나의 주 업무는 글쓰기다. 나는 정말 온갖 종류의 글을 쓴다. 문학소설, 에세이, 웹소설까지. 물론 공모전 등을 준비하느라 쓰는 글이 더 많기는 하다.
온종일 집에서 혼자 글을 쓰다 보면 사람이 그립다. 또 프리랜서라는 직업의 한계로 고정 수입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해 본 일이 그거라고, 또 카페에 지원을 했다.
카페에서 일을 하면 좋은 점 중 하나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는 점이다. 음료를 사러 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어떤 일을 할지, 또 어떤 성격일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심지어 카페 밖에서 애처롭게 기다리는 강아지를 보며 심정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관찰 대상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같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전공이 예체능 계열이었다.
먼저 점장은 연기 전공이다. 2학년 때 자퇴를 하긴 했지만, 연기로 대학교에 진학한 만큼 준비를 꽤나 열심히 했던 모양이다. 연기가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를 한 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우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카페에 연이 닿아 지금 점장까지 하고 있다.
매니저는 실용 음악 전공이다. 정확히는 보컬 전공으로, 졸업까지 했다. 하지만 이후 게임 사이트에서 웹툰을 연재하고, 타투이스트로 일하고, 세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카페에서 근무하게 됐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일을 경험했지만 그중 카페 근무를 가장 오래 했다고 한다.
나는 이전에도 말했듯 문예 창작을 중심으로 여러 전공을 공부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 가장 공부를 하고 싶어했던 타입 같다.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은 늘 있었지만 글쓰기에서 결과를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돈이 필요해 카페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이거 좀 신기한데요. 예체능 전공의 최후는 카페인가 봐요?”
매니저가 자학 개그를 했다. 이전에 유행했던 ‘문과생의 최후는 치킨집’이라는 밈과 비슷한 결이었다. 정말 '웃픈' 상황이었다. 어째서 예체능 전공은 이렇게나 살리기 힘든 걸까? 하지만 그렇게 자학 개그를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슬프거나 씁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와, 여기 종합 예술 카페네요!”
우리는 밴드를 결성해야겠다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보컬과 기타가 가능한 매니저와 건반이 가능한 내가 있으니 점장님은 베이스나 드럼 중에 골라 보라고 부추겼다.
솔직히 나는 내 상황에 내심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본인의 업을 확실하게 정해서 밀고 나가는데 나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 글로도 아직 눈에 띌 만한 큰 성과를 얻지 못했으니, 안 되는 걸 계속 붙잡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불안했다. 심지어 나는 시작조차 늦지 않았던가.
하지만 나는 특이 케이스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원래 각양각색으로 산다는 걸 잊고 있었다. 지금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그랬다. 각자 다양한 전공 공부를 했지만 결국 전공은 중요치 않고,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점장은 연기 전공을 과거에 묻어 뒀지만 카페 매장을 세 개나 가지고 있다. 매장 관리에만 몰두하던 시절을 잠시 멈추고 내년에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한다고 한다.
매니저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카페 매니저 일을 하며 웹툰을 종종 그리고, 최근엔 sf소설에 관심이 생겨 글을 써 볼까 생각 중이라고 한다. 가장 많은 종류의 일을 경험한 만큼 가장 다양한 방식으로 인생을 즐기는 느낌이다.
나는 조금 다르지만 전공과 다른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점에선 비슷하다. 게다가 공통적으로 카페 일을 즐기고 있다.
사실 전공 하나에 맞춰 열심히 몰두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하에선 내가 가장 그 길을 정석으로 따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불안해 보이니 참 이상한 일이다. 일반적인 이론 하에선 내가 가장 정답에 가깝게 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왜 나만 더 불안해하지?
생각해 보면 세상에 자기 전공을 살려서 일하는 사람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적다. 우리의 이상향은 전문가지만 전문가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냥 이렇게 사는 사람 있고 저렇게 사는 사람 있는 건데,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의외로 몰랐던 것 같다. 말로는 그럴 수 있다 말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믿지 않았으니 더욱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때때로 두려움은 무지에서 온다는 것을.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나는 내 눈으로 보았다. 직접 본 소감이라면 “음…… 처음 목표가 뭐였든 간에 행복해 보이는데?”
물론 다양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모든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조금 덜 흔들리게 된다. 그러니 나도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꼭 이 일에서 성공해야겠다는 압박감보다는 현재에 충실해야겠다는 조금 더 깨끗한 다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