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무던하다
1. 형용사 정도가 어지간하다.
2. 형용사 성질이 너그럽고 수더분하다.
종종 무던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말인즉슨 나는 무던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예민하고, 예리하고, 이따금은 뾰족하다. 적어도 동그란 모양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동그란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무던함은 동그라미일까. 무던함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갖고 싶은 무던함이란…… 무엇일까. 어떤 일이 생겨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고 싶다. 호들갑 떨지 않고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고 싶다. 쉽게 상처 입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그래, 내가 찾는 무던함이 딱 그거인 것 같다.
사실 무던한 사람은 하나의 부류가 아니다. 세상에는 무던한 사람과 무던한 척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스스로의 예민함과 뾰족함을 너무나도 잘 알아 그 부분을 예리하게 감출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 네가 가장 무던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심 억울했다. 스스로 만든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내 인내를 알아주지 않는 점에 섭섭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그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 무던함이 좋다는 의미였으므로 굳이 뾰족하게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전자는 정말로 무던한 사람이다. 한때 나는 전자가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나는 그들 역시 수백, 수천 번의 고통을 겪었을 거라 믿었다. 자신의 뾰족함과 세상의 뾰족함에 찔리고 찔려 굳은살이 박인 거라 생각했다. 이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지, 이젠 이 정도 뾰족한 바늘은 따갑지도 않네…… 뭐, 이런 생각이라도 할 거라고 믿었던 걸까. 그들이 바늘이 뾰족하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당혹감과 동시에 질투가 치밀었다. 나도 무던해지고 싶다.
그런데 어떤 무던한 사람들은 그 무던함으로 타인을 찌른다. 진정으로 무던하고 남을 해할 생각조차 없다는 점에서 놀랍다못해 신기한 일이다. 특히 그 무던함에 자주 베이고 찔리는 사람은 예민한 사람이다. 무던함은 기본적으로 단단한 속성을 가지기 때문에, 가뜩이나 연약한 속성을 가진 예민한 사람들은 치명타를 입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무던한 사람이고 싶다. 무던함이 무기가 되어 남을 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인 걸까. 남이 어떻게 상처를 입든 상관 없다는 태도는 아닌데……. 내 무던함이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이 무던해지고 싶다는 희망사항과 별개로 머릿속에 별개의 기둥처럼 우뚝 서 있을 뿐이다.
뭐, 의미 없는 고민이기는 하다. 나는 결코 무던한 사람이 될 수 없을 테니까.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는 예민하고 예리하고 뾰족한 사람이다. 이것은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며 특성이다. 나는 이 특성을 활용해 글을 쓰고 사람을 대한다. 내가 무던해진다는 것은 지금껏 해 온 모든 일들의 도구를 버린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겠지.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걸까.
아니, 그건 아니다. 이거야말로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어쩌면 나는…… 지쳤는지도 모른다. 무던해지고 싶은 게 아니라 무감각해지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나는 아플 때만 감각을 잃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편리한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