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졸다
동사 잠을 자려고 하지 않으나 저절로 잠이 드는 상태로 자꾸 접어들다.
요즘 자주 졸리다. 앉아서도 서서도 불쑥불쑥 하품이 난다. 춘곤증인가? 춘곤증을 느끼기엔 아직 이른데. 졸음을 주체하지 못해 고개를 이리저리 꺾으며 나는 생각한다. 할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잠은 왜 달아날 생각이 없는지. 흔한 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나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원인을 찾는 습관이 있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 방법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졸린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가능성을 나열해 보기로 한다.
1. 수면 시간이 부족해서?
며칠째 졸음을 이기지 못해 10시면 잠에 든다. 적어도 7시간은 채워서 잤을 것이다. 절대적인 수면량에는 문제가 없다.
2. 에너지가 부족해서?
최근 식사를 부실하게 한 면이 있긴 하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제대로 챙겨 주기로 한다. 허한 느낌은 사라지고 배부른 상태로 졸기 시작했다.
3. 만성 피로?
피로에는 비타민 B와 C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약국에 가서 괜찮은 종합 비타민을 하나 구입했다. 건강한 몸과 화려한 소변 색을 얻고 계속해서 졸게 됐다.
4. 카페인 때문에?
애당초 요즘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다. 마셔봤자 이른 아침 아메리카노 한 잔이 전부다. 나는 심지어 커피를 마시는 도중에 졸지만, 그것조차 끊기로 한다. 잠시 정신이 드는 시간도 없이 하염없이 졸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졸음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노곤함과 무기력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나는 지금 할 일이 많은데. 이럴 때가 아닌데. 집에서 일하는 나에게 게으름은 쥐약과 같다. 어떤 핑계가 생겨도 이겨낼 수 있는 자만이 재택근무를 할 자격이 있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나는 몽롱한 머리로 되뇐다. 작업을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나는 자주 졸지만 자주 자지는 않는다. 조는 나는 있을 수 있지만 자는 나는 있어선 안 된다. ‘자다’는 능동이지만 ‘졸다’는 수동이다. 한 일도 없이 휴식을 취하려는 스스로를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오직 나만을 믿는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냉소적인 태도나 오직 나만이 모든 일을 완벽히 해낼 수 있다는 오만 때문은 아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변하거나 뜻대로 되지 않지만, 내 행동만큼은 오롯이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내 이 태도는 아주 합리적이라고 볼 순 없다. 온종일 조느니 차라리 1시간 푹 자고 일어나서 일하는 편이 더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는다. ‘움직이는 나’, ‘계산하는 나’가 졸고 있는 나를 이끌어 줄 거라 믿는다.
나는 애써 키보드를 두드리고 펜으로 끄적이다 책상 위에 엎드려 버린다. 머리는 노곤하지만 자세가 불편해 제대로 잘 수 없다. 왜 이럴 땐 찬물을 마시거나 세수를 한다는 선택지조차 떠오르지 않는 걸까? 나는 애써 눈을 부릅뜨고 읽히지 않는 글자들을 노려본다. 나는 오직 나만을 믿을 수 있는데…… 믿어야 하는데…… 어쩌면 나는 나만을 믿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