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과파이를 메인 디저트로 취급하는 카페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주문도 받고 음료도 만들고 청소도 했는데, 주된 업무는 사과 깎기였다. 보조 업무도 아니고 주 업무가 사과 깎기라니?!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미리 언질을 받은 적도 없었다. (여긴 생과일 주스 전문점도 아니었고 디저트는 디저트일 뿐인 평범한 카페였다.) 그래도 나는 사과를 깎았다. 매일 몇 박스씩 껍질을 벗기고 깍뚝썰기해서 큰 솥에 끓였다. 보글보글…… 사과가 익는 특유의 시큼한 냄새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는 매일 매장의 가장 깊은 곳에서 라텍스 장갑을 끼고 끈적끈적 즙이 나오는 사과와 싸우다가 문에 매달아 놓은 종이 딸랑 울리면 “어서오세요!” 외치며 뛰어나갔다. 다시 말하지만 속았다.
하루는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의 사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량 주문 예약 건 때문이었고, 명절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있었다. 나는 명절 선물로 사과 파이가 그렇게나 많이 선택되는 줄은 몰랐다. 여태껏 봐 온 명절 선물이라 해 봐야 참치캔이나 식용유, 과일, 치약 세트, 돈을 좀 더 써 보자면 한우와 굴비 세트가 고작이었으니까. 사과파이를 명절 선물로? 언밸런스하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뻔한 선물 대신 이쪽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엇비슷한 선물들 사이에 놓인 사과파이는 어쩐지 더 상큼하지 않은가.
아무튼 명절이었고, 예약이 많았다. 얼마나 많았느냐면 명절 선물 세트를 준비하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생까지 고용해야 할 정도였다. 사과파이는 하루 만에 짠!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를 만들더라도 고객에게 전달하기까지 최소 하루 이상이 필요했다. 그 말인즉슨 내가 언제 예약 주문을 받든 최소한 하루 이상의 여유가 생긴다는 뜻이었다. 예약 당일 무리해서 파이를 만들지 않아도 며칠 전부터 생산량을 늘려 놓으면 날짜에 맞춰 예쁘게 포장된 파이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말에 담긴 함정을 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이 생산량 조절이 가능하다는 건 미친듯이 예약을 받아 놓고 며칠 내내 사람을 갈아 넣을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우리는 사과 지옥에 빠졌다. 사과가 나인지 내가 사과인지 알 수 없는 물아일체의 경지였다.
“다음 생엔 사과로 태어나려고요.”
단기 아르바이트생인 A양이 말했다. 이미 사과 껍질이 무릎 높이까지 쌓여 있었으니 퀭한 얼굴이었다. 나는 A양에게 갑갑하더라도 라텍스 장갑을 꼭 끼고 작업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는데, A양은 그것이 위생 때문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물론 그것도 맞다.) 손을 깨끗이 씻고 두 시간 정도를 열심히 일하더니 따가워 죽겠다며 우는 소리를 했다.
“사과를 요리할 때 또 언제 쓰는 줄 알아요?”
내가 물었다.
“언젠데요?”
A양이 되물었다.
“고기 연육할 때요.”
“아.”
“축하합니다. 당신은 연육이 잘 된 고기입니다.”
우리는 지친 와중에도 이런 우스갯소리를 하며 킬킬댔다. 그러니까 그 타이밍에 사장님이 화를 낸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넌 어떻게 교회에 다닌다는 애가 그런 소릴 할 수가 있니?”
진지하게 혼을 내는 투라서 당황한 나머지 웃음이 멈췄다. 교회와 사과의 관련성을 이해하지 못해 당혹스러웠다. 사람이 아니라 사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그런가? 아니면 선악과가 사과를 의미해서? 내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동안 A양은 앞으로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고 사과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장님도 용서했다. 나로선 따라갈 수 없는 대화의 흐름이었다.
교회와 사과의 관련성을 알게 된 건 또 다른 기독교 신자인 친구 B를 만나고 난 이후였다. 내가 이 일화를 이야기하자 B는,
“원래 기독교엔 환생 개념이 없어!”
말했다.
나는 그제야 사장님이 화를 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사장님은 같은 기독교 신자인 A양이 사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환생은 불교의 관점에 가까웠다. 불교에서조차 사람이 아닌 다른 생물로 태어나는 것은 악한 생의 업보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내가 무교였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죽음 뒤에는 천국이나 지옥만 있는 게 기독교적으로 옳은 거지?”
“그렇지.”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납득할 수 없는 답이었지만 그 반응을 이해할 수는 있게 되었다.
대개의 상황에서 나는 조금 더 깊게 생각하거나 입장을 바꿔 생각함으로써 오해를 피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닿을 수 없는 지점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아마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와중에도 몰래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꼭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