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스스로 생각하는 행복을 위해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위해 유한함을 만들죠.
화목한 가정, 넉넉한 경제력, 명예로운 직업까지
우리는 각자의 신념에 따라,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정하고 그것을 이루려 합니다.
그러나 화목한 가정도, 넉넉한 경제력도,
내 존재 속 무언가를 고정한다는 것은 이 무한한 순간에 역행하는 일이 됩니다.
나를 위해 세운 ‘나의 것들’이
결국 내가 존재하는 이 순간을 왜곡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한한 이 순간과 다른,
우리가 추구하는 ‘내 것’으로 고정된 유한함은
곧 고통이 됩니다.
삶은 우리가 가진 굳건한 신념의 형태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매 순간,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우리는 부딪힙니다.
그리고 나의 유한함을 고집할수록
그 부딪힘은 충돌과 왜곡을 낳게 되죠.
부부 관계에서 어른들이 자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라고 자주 말합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의 유한한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무한하게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와 같은 타인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마음 말고는,
다른 이의 마음을 그저 추측하고 상상할 뿐,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으며,
정확히 다르기에,
내 것을 가지고는
그들을 온전히 그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무한할 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처럼,
나의 유한함을 스스로 알아차릴 때,
나는 무한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 순간마저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무한한 이 순간에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나의 유한함으로 고통받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무한하기에 이 순간이 무한한 것인지,
혹은 이 순간이 무한하기에 제가 무한해져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둘은 서로 닮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결국 이 순간이며,
제가 이 순간에 온전히 통합되어 있는 것,
그것이 곧 그대로의 존재입니다.
무한함을 그대로 보지 못한 채,
계속 옳으셔도 좋습니다.
옳은 이에게는,
그 옳음이 곧 그대로의 진실일 테니까요.
우리 모두는 옳고 싶어하며,
또 옳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한함 속에서
유한함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이자 본성입니다.
다만, 고통이 한두 번 쌓일 때마다
옳은 스스로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모르는 곳에,
무한함과 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렇게 적었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옳고 싶습니다.
다만, ‘내가 옳다’라 여기는 스스로를 안다면,
그 자체로 이미 무한함 속에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