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가깝기에, 오히려 더 명확하고 명료해야 한다.
서로의 독립이 한순간 섞여,
배우자가 내가 되고, 내가 배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독립을 돕고 존중할 수 있는 부부가
가장 건강한 관계다.
대부분의 부부는 머릿속에 만들어진 사고에 쫓겨,
사랑과 친밀함이란 ‘착각’ 속에 빠져든다.
잘 생각해보면,
부부는 이미 사랑만으로는 건강할 수 없다.
우리가 아는 사랑은 ‘소유’를 기반으로 한다.
소유는 내 것이기에,
나는 그 안에 나를 쉽게 투영한다.
나와 다른 나의 배우자를
나와 같다고 여기는 것은,
정확히 존중의 반대다.
스스로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의식하는 나의 존재, 그뿐이다.
존재 대 존재로,
서로를 정확히 분리해낼 때
‘나’에게도, ‘배우자’에게도
비로소 삶과 자유가 생긴다.
우리는 멀고 어려운 관계에서는
내가 가진 것을 함부로 뿜어내지 않고,
그저 존중하려 한다.
존중이 있기에, 그 관계는 건강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존중에 익숙하지 않다.
내안에 또 다른 나라 여긴다.
"그것이 진짜 '나'임을 모른채 살아간다."
나에게 '나'는 없기에,
존중할 나 조차 없다.
마음대로 품어내고 뿜어낼 수 있는 관계가
‘가깝다’고 느껴진다면,
당신은 이미 스스로를 받아줄 ‘나’를 잃은 것이다.
‘나’가 없기에, 공허하다.
그래서 ‘가깝다’고 착각하는 관계 속에서
당신은 자신을 끝없이 배출한다.
그것이 바로 ‘나’ 없는 우리,
현대적 관계의 왜곡이다.
독립되지 않은,
독립하지 못한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
내가 나를 받아주지 못하는,
고립되고 공허한 내 안을 마주할 때 모든 관계의 해답이 그 안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