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인터스텔라 영화

by 서고독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밀러 행성의 1시간은 지구의 7년에 해당했다.

지구보다 훨씬 강한 중력의 그곳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쿠퍼와 브랜드는,

노화된 얼굴의 동료 로밀리 박사를 마주한다. 그는 홀로 그곳에서 23년을 보냈다.

그들은 놀랐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사고가 만든 ‘유한함’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고에는 언제나 ‘임무’, ‘가족’, ‘우주선에 홀로 남을 로밀리’ 라는 지구 중심의 좌표가 있었다.

그들의 중심이 ‘지구’를 향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시간의 상대성에 놀란 것이다.

만약 그들이 ‘지구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 있었다면, 로밀리는 단지 “그 순간을 살아가는 로밀리”였을 뿐이다.

그에게는 기다림도, 손실도, 23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순간을 살아낼 뿐.

지구인에게 23년이란 시간도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삶을 살아냈을 뿐이다.

절대적인 기준은 '고통'을 만들고, 이 순간을 가려낸다.

모두가 이 순간, 자신이 놓인 자리에서 그저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중력이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의식의 깊이 사고의 밀도에 따라

누군가의 5분이 누군가에겐 1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사고로 묶고, 비교하고, 기다리고, 종속시킨다. 그래서 기다림이라는 착각이 생긴다.

"우리는 어쩌면 로밀리 박사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쿠퍼를 기다리며 ‘기다림의 23년’을 살 것인가,

아니면 이 순간이라는 23년을 최선의 삶으로 살아낼 것인가.

그 선택은 오직 당신의 몫이다.


쿠퍼와 브랜드가 밀러 행성에서 그들 자신과 인류를 위해 최선을 다했듯,

당신 또한 이 순간 당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모두가 이 순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고,
오직 이곳,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낼 때 그때 가장 완전한 결과 또한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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