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술은 참 중요했다.
술은 동력이자 변화이며, 사고의 전환이자 이완이었다.
어른들이 말하길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난 사실 다들 말하는 그 어른이
어떻게 술을 먹고 무엇을 알려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술은 이렇다.
술에 취하는 것이 좋아서 먹는 이가 있을 것이고,
술에 취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교류하기 위해 먹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난 술에 취하는 것이 좋아서 먹는 이에 대해 말하려 한다.
우리는 술을 먹으며 매번 목표 지점이 있다.
혹은 그 목표 지점조차 있는지 모른 채 술을 마신다.
옛적 나의 목표는,
그 옛날이 길고 많지만
취해서 내가 좋아하는 영상을
심취해 보는 것이 나의 낙이던 적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들어온 정보는 쾌락일 뿐,
남는 것은 없었다.
남기려 사는 인생은 아니지만,
오직 그 순간만을 위한 건
내가 가려 하는 방향이 아니다.
특정 목표를 위해 술을 들이붓는 건
‘이 순간’에 대한 모독일 뿐이다.
들이붓고 있는 그 순간은
우리가 기다리는 취한 순간을 위해 소비되고,
몸까지 받쳐야 한다.
어느 순간, 무르익듯 취한다 말하며
우린 부어 마신다.
내 삶에, 그리고 나에게 중요한 술
그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술은 서브이고 관계나 모임이 우선이라 말한다 해도,
술도 관계도 우리의 삶엔 정확한 역할이 있기에
뭉뚱그려 하나로 말하는 건
본인 삶에 대한 책임의 문제라 말하고 싶다.
우리의 문화는, 그리고 우리의 식습관은
술을 과격하게 먹게 한다.
취기라는 건 결국 ‘느껴 내는 것’인데,
천천히 함께, 또는 홀로 느끼기보다
부어 넣고
어떤 반응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결국 우린 자각하며 느껴야 하는 것이
이 삶이자 존재이다.
우리의 본질이 ‘느끼는 것’인데,
느끼지 못하니
부어 넣고 느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지 못하게 붓는다면
몸은 처리하느라 바빠지고,
도저히 느끼기 어려워진다.
내가 느끼는 순간엔
이미 몸은 과부하이다.
그리고 그걸 우린 ‘취한다’라 느낀다.
뭐든 과해진 세상이다.
조금씩 조절하며 정확히 다가가기보단,
부어 넣어 놓고 나온 결과에 헤맨다.
몸은 보이지 않는다.
많고 다양하다면
그만큼 명확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알아낸 것은 이렇다.
술을 이해하기가 가장 어려웠고,
가장 나의 의도가 많이 들어가
멈출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멈추고 싶지도 않다.
난 나의 자유를 존중하니.
곧 더 깊은 층위의
나만의 해답을 찾을 수 있겠지.
그리고 자유롭게,
그리고 나답게
술을 대할 수 있겠지.
자유롭게 훨훨 날듯 살아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