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간은 사랑이 아니라 고통의 연속이다.

고통이라는 종속을 사랑이라 부르다.

by 서고독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사실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 책임감에서 비롯된 구속이다.

무한한 존재가 이 땅에 태어난다.

그 무한함과 달리, 부모는 유한하다.

부모는 아이에게 자유와 무한함을 보여주는 대신, 자신의 유한함으로 그들을 가두려 한다.

그러나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유한한 존재는 자신이 갇혀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서 있는 좁은 자리가 곧 세상 전부라 여기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는, 그런 부모와 매번 부딪힐 수밖에 없다.

부모는 아이가 그대로 '존재'하기에 그 순수함에서 사랑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들의 순수함이라는 무한함이 주는 불확실성이 불안하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를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하려 한다.

부모가 유한하기 때문에, 아이의 무한함을 두려움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아이와 연결되며 느낀 사랑은 아이 존재 그대로에서 나오는 연결이었다.

그러나 부모는 그 연결을 소중히 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성으로 변질시켜, 아이를 자신의 사고에 가둔다.

육아란, 사실 아이의 방향을 묵묵히 봐주고 지켜주는 일이다.

내 길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진정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존재를 그대로 봐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봐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매번 자신의 사고와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아는 숙명처럼 어렵다.

우리는 아이에게 내 때를 묻히고,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구속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끝에 남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실은 미안함이다.

책임이 만든 미안함, 끝까지 책임지려는 마음이다.

순백의 도화지 같은 아이에게 부모의 색을 칠한 결과, 나는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아이와 나를 서로 종속시킨다.



부모는 자신의 선택으로, 원래 없을 수도 있었던 생명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부모의 숙명이자 스스로의 책임이다.

아무리 짧고 긴 고민을 거쳤다 하더라도,
경험해보지 못한 자식과의 길고 깊은 관계 앞에서
부모가 맞닥뜨리는 이 순간은 언제나 무한할 수밖에 없다.

부모는 책임을 느끼지만, 그 무한함 앞에서 종종 아쉬움을 품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자기 중심적이어서, 가장 먼저 나 자신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문득 이렇게 중얼거리곤 한다.

“내가 혼자였으면…”
“이 모든 게 내 것이었으면…”

당연히 책임감을 알지만,
그럼에도 아이에게 아쉬움을 표현하고 만다.

“너에게 든 돈이…”
“널 위해 내가 희생한 것들이…”

부모가 말하지 않아도, 자식은 그 무게를 느낄 수 있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줬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식은 이미 ‘감사’를 넘어선 부담을 안게 된다.

그 순간, 부모의 아쉬움은 자식을 구속한다.
자식은 언제든 떠나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부모를 떠올리며 매순간 부모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 바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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