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나'

by 서고독

‘맛’

먼 옛날에는 ‘소금’, ‘설탕’, 그리고 ‘물’까지 단독적이고 개별적으로 쉽게 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술은 발전하고, 소금·설탕과 같은 것뿐만 아니라 인간이 원하는 것은 얼마나 어떻게든 점점 더 세분화하여 원하는 것을 추출해 냅니다.

개별적으로 모든 것을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맛’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소고기, 돼지고기 등 각자가 가지고 있는 나트륨과 미네랄 등의 성분 그 자체가 ‘맛’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본이 되는 베이스에 다양한 재료를 섞어 ‘맛’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강하고 자극적으로 맛을 냅니다.

“환경이 인간의 본질적 구조보다 훨씬 빠르게 진화합니다.”

우리의 몸은 진화론적으로 아직 저 먼 과거에 있는데, 우리의 의식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 있죠.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자 특별함일 것입니다. 동시에 존재 그 자체로 살 수 없는 아픔이자 고통이죠.

인간이 만들어낸 ‘맛’은 강한 밀도를 만들어내고 우리는 그것을 ‘자극’이라 부릅니다.

자극적인 맛으로 고기 한 점의 밀도가 강력해지면 뇌는 ‘많은 양이’ 들어왔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몸에 들어온 것은 아주 소량이 되죠.

뇌는 즉각적이며 빠릅니다. 그러나 몸의 신호는 항상 뇌보다 느립니다.

강한 자극은 그 격차를 크게 벌리게 됩니다. 그리고 뇌는 자꾸 속은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죠.

뇌는 아주 정확합니다. 내가 느끼는 것이 그대로 동기화되지 않도록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뇌는 “기준을 끌어올립니다.”

- 아직 충분하지 않다.

- 기준이 낮았다.

뇌는 받은 신호 대비 실제 충족이 부족했다고 여기고, 다음엔 더 확실한 신호를 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극은 점점 세지게 되고 속도는 빨라지고 밀도는 높아지게 되죠.

뇌가 기대한 보상과 실제 몸이 받은 충족의 어긋남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몸은 만성적으로 동기화가 실패되어 버리죠.

자극만을 찾는 삶이 되어버립니다. 매번 오는 큰 자극은 당연한 삶의 일부가 되고, 우리는 스스로와 섬세하게 이야기하고 다룰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식습관의 현 위치입니다.

인간의 대단한 적응력 덕에 우리는 ‘지금’에 적응하고 푹 빠져 있죠.

뇌는 ‘좋은 상태’보다 ‘익숙한 상태’를 더 안전하다고 판단합니다.

‘좋은 상태’와는 점점 더 멀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대단한 인간이 만들어낸 첨단 기술의 ‘환경’에 익숙해지겠죠.

점점 더 우리 자신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입니다.

동시에 언제나 ‘나’를 알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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