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무엇에 열광하고 있는가.

by 서고독

인간의 유전학적·진화론적 구조는 환경을 따라갈 수 없다.

여기서 구조란 신경과 대사를 이루는 ‘생명적인 육체의 구조’이다.

환경은 그런 구조와 다른, ‘생명’이 아닌 의식 그리고 인식과 상관관계를 이룬다.

‘사고’라는 생각을 하는 인간만의 고유함이다. 그렇기에 인간만이 가진 괴리이자 격차이다.

생각할 수 있기에 인간이 생각한 대로 환경은 발전했다. 발전이 이 세상을 위한 것 같지만, 발전은 발전이라 여긴 그 순간의 인간만의 것일 뿐이다.

발전은 그 순간의 개인과 다수의 몫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사고’의 결과물이 되고, 생명이라는 구조와 동떨어지기 충분하다.

인간은 본질이라는 구조를 돌아보지 않고 ‘사고’에 치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격차는 벌어지고 스스로를 잊게 된다.

‘사고’해 내어 만든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머리’를 편하고 편리하게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생명의 구조’와는 저 멀리 떨어지고 만다.

우리는 ‘머리가 편한’ 환경에 적응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환경에 ‘머리’가 먼저 적응하고, 몸은 머리와 함께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닌 ‘버티는 방식’으로 그 환경에 적응하고 만다.

‘머리’로 다가가기엔 이미 우리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지식과 편견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이 순간에 ‘적응’이라는 이름으로 중독되어 왔다.

‘의미’와 ‘정의’에 빠진 채로 너무도 발전된 지금 이 환경에 ‘중독이라 불리는 적응’을 해 있다.

인간 모두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다면, 본질적인 기술의 발전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스스로를 돌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바로 인간이기에, 지금 여기까지 이렇게 온 것일까.

우린 도대체 무엇에 열광하고 있는가. 그리고 왜 열광하는가.

끝없는 발전과 편의는 인간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찌른다. 경쟁과 비교라는 순위를 세우고, 나를 잊기에 알맞은 것들이다.

본인의 본질을 망각한 채 밖만 바라보며, 밖으로 모이기 좋은 것들이다.

어쩌면 그런 모습이 우리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본질이라는 것은 각자가 믿는, 각자 눈앞에 펼쳐진 세상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존재에 다가간다면, 그 소리에 생명에 집중한다면 그때 비로소 본질이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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