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않고 싶은 것들.
영상이 넘쳐난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보지 말아야 할지, 내가 무엇을 보고 싶지 않아 하는지 모르겠다.
영상이라는 TV의 발명과 발전은 새로운 세계들을 만들어낸다.
스포츠나 CCTV 화면처럼 실제로 있었던 일도, 상상으로 만든 스토리를 사람이 직접 구현해 보여 주는 드라마, 영화 등도 있다.
폭력, 복수, 배신, 경쟁, 비교.
모두 인간이 ‘자극’으로 느끼는 우리의 '쾌락'들이다.
‘현실’이라는 삶에서 느끼고 볼 수 없는 살인과 폭력이라는 과격함까지, 어느새 영상들은 오직 ‘소비’의 목적으로 ‘자극’만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평생을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영상을 통해 경험하고 만다.
우리는 참으로 무한하게 다양하고 자극적인 것을 원하기에, 그런 인간에게 알맞은 발전이자 필연적 흐름이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돌아보기보다는 오직 쾌락과 자극으로 적응하고 중독되고 만다.
평생 싸울 일이 없는데도 둘 중 한 명이 쓰러질 때까지 싸우는 영상을 보며 즐긴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극은 꽤 깊고 오래 머릿속에 각인된다.
우리는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경험하고 만다.
상상은 언제나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보는 영상들은 언제나 실현 가능하다.
가상이라 믿지만 동시에 실현 가능한 것들이 엄청난 고통이 되고 만다.
온통 자극뿐인 현대 사회이다. 자극은 돈이고, 돈은 이 사회를 설명할 수 있기에 우리는 끝없이 자극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너무 많이 알기에 고통받는 것이다.
너무도 알려고만 한다. 왜 알아야 하는지, 지금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인지 모른 채 말이다.
아는 것이 즐거움이고, 보다 많고 보다 넓게 자극받으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나를 더 모르게 만든다.
인간의 상상은 무한하다. 그것으로 만들어진 작고 큰 무한한 자극을 경험했다면 그걸 이해하고 내 것으로 소화하려면 ‘시간’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되돌아보지’ 않고, 계속 집어넣고, 스스로를 밀어넣고 무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