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의존증 그리고 자유.

by 서고독

알코올 의존증의 단계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의존의 완치는 거의 없다고 의학적으로 말하곤 한다.

한국 사회의 특성상 음주는 당연하며 또 관대하다. 우리 삶에 깊고 넓게 퍼져 있는 하나의 문화이자 정체성이다.

알코올은 서서히 우리의 삶에 잠식하기 시작한다.

술은 마시면서 음식, 감정, 기억들을 엄청난 도파민이 라는 자극과 함께 패턴과 구조로 우리의 뇌에 저장시킨다.

‘쾌락’은 익숙해지고, 강한 쾌락에 중독된다.

쾌락 같지도 않다고 의식을 느끼지만, 몸과 뇌에는 강력한 쾌락이기에 우린 다시 술잔을 든다.

술과 나의 삶이 만나 ‘정체성’이 된다. 술은 깊숙히 내 삶 곳곳에 구조적으로 의존된다.

뇌가 학습한 경로라는 구조를 풀어헤쳐 돌아본다는 건 단순한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병의 완치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생을 통틀어 돌아봐야 하는 것이고, 알코올은 그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있다. 하나둘 돌아본다고 하여도 알코올은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기에 그 끝자락에서야 보인다."

인생의 모든 것을 돌아본다는 것은 나와 의존된 모든 것을 비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기에,

"뇌가 학습한 구조를 돌아봐 완치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정신적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완치는 없다.

완치가 없다는 것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냉정함과 한계가 아니라 경험을 이해하고 다르게 해석해 더 깊고 넓게 품을 수 있음을 말한다.

술은 잔잔하고 부드럽게 또 깊숙히 스며들어 있는 쾌락이라는 즐거움이다.

누구나 이 삶이라는 시간을 행복으로, 쾌락으로 채우고 싶어 한다. 인간적이며 본능적인 우리의 모습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채울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채우지 않고 머물 수 있는 것이 ‘자유’이다.

술은 ‘자유’의 정 반대로 역행해 나를 인도한다. 끝없이 채워야 하는 결핍들을 만든다.

나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린 끝없이 행하려는 자신을 보며 ‘자유’라 속는다.

알코올 의존증은 인생을 통틀어 돌아보고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사유한 자만 ‘이해’할 수 있다.

즉, 돌아보지 않는 자에겐 끝까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우리가 그리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겠는가.

스스로가 알콜의존증인 것을 인지하여도, 돌아보는 것은 또 다른 일이기에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그래서 ‘참는다.'

참아야만 하는 인생이 되는 것은 "인간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안 참고 이해하여 자율을 얻기에는 뇌가 술과 함께 학습한 중독이 너무도 깊다.

알코올 의존증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 종속의 괴로움이 심해질수록 '우린 스스로를 돌아보기 어렵기에'

'참는다.'

인간의 가장 기본 권리인 ‘자유’를 박탈당하며 참아야만 하게 되고, 그 역설은 가슴 아프며 또 혼란스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의 권리라는 스스로를 믿으며 확신하려 한다. 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를 믿고 금주, 단주, 절주를 하려 한다.

그러나, 당신이 만든 구조적 얽힘을 완전히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당신의 의지는 구조를 이길 수 없다. 당신의 구조 속에서 의지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구조가 자꾸만 ‘술’을 쾌락으로 기억하기에, 당신의 자유는 술을 마시는 것에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당신이 그 구조를 돌아보지 않는 이상 구조를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의지를 가지고 참는 것이 아니라, 그 의지로 돌아본다면 그 의지는 비로소 참된 것이 되는 것이다.

구조를 돌아보지 못한다면 평생 참아야 하고, 구조를 돌아보지 않은 채 자신의 의지를 믿으려 하기엔 그 구조가 너무도 명확하다.

내가 병원에 들어가거나 무인도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이미 내 주변에 술은 너무도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주변이자 환경이고, 내 삶의 정체성이 술과 얽혀 있기 때문이다.

너무 가깝다. 내가 먹는 음식도, 친구도, 가족도, 휴일도, 여행도 술과 엮여 있기에 내가 부린 ‘자유’는 다시금 형성되어 있는 루트로 회귀하고 만다.

그리고 다시 취한다. 참아온 만큼 더 쉽고 빠르게 취한다.

이것이 알코올 의존증이다. 별것 아닌 알코올이 우리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빼앗아 간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매번 우리의 뇌는 기억한다. 참 불편하게도 모든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결국 별것 아닌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책임이며, 동시에 우리 인간의 인지는 너무도 정확하다.”

구조 자체가 해결되지 않기에 술 앞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것은 본인이다.

술 앞에서 스스로를 믿을 수 있다면 자유이다.

술 앞에서 피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닌, 부딪혀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것, 술을 넘어서 내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믿고 싶지만, 술이 만들어 놓은 정체성은 믿음과는 별개로 구성된 대로 돌아간다.

스스로의 확신이라는 믿음은 술이 만든 경로와 술을 완전히 이해해 그것이 나의 것이 되었을 때 생길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배워내는 것만큼 멀고도 어려운 길이다.

모두가 술의 깊이와 광범위한 구조적 중독을 모르기에 ‘난 아니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알코올 의존증의 시작이며 중독 단계로 들어갈 수 있는 빌미가 된다.

아니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술이 나의 정체성과 삶으로 하나 되어 스스로의 삶을 옹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술은 삶 그 자체가 된다. 깊고 넓게 침투한다.

이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술이라는 도구의 모습이다.

술을 돌아보며 진정한 자유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동시에 자유라는 길이 참으로 무한하고 고되기에, 그것이 진정한 자유 같기도 하다.

술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미 우리의 구조와 구성을 모른 채 많은 것을 쌓아왔다. 술이 좀 더 극명하게 자극하고 삶에 침투했을 뿐이다. 술의 역할이 명확한 것 뿐이다.

우리는 끝없이 쌓고 끝없이 채우려 한다. 그것이 중독이자 스스로의 깊고 광범위한 짐을 지는 것인지 모른 채 말이다.

"그래서 그 짐을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짐은 명확하고, 우리는 짐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돌아본 자에게만 ‘하지 않아도 되는, 가만히 있을 수 있는, 멈출 수 있으며, 머물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아예 모른 채 살아갈 수는 있어도, 뇌에 구조적으로 깊게 박힌 경로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경로를 풀어 확장하고, 그것을 품고 비워내는 것이다.

정신적인 질병에 완치가 없는 이유다.

우리는 사고하는 존재이기에 우리가 경험한 것을 우리의 뇌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알기에 더 명확하고 간결하게 비우고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은 족쇄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 본인의 해석 차이자 성장과 확장의 이정표다.

앎을 이해하면 주인으로서 ‘자유’에 다가갈 것이고,

앎을 무시하면 자유라 믿는 스스로 기록된 쳇바퀴를 돌리며 나의 앎은 족쇄가 될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자유이다.

하려 하는 의존을 돌아보고 의존 없는 고요한 상태에서 내 삶을 그대로 사는게 자유다.

자극이라는 외부를 중도로 인지하고 무응답 할 수 있는 상태이다.

설명할 필요가 없이 조용한 나의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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