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나의 칼에 난 매번 찔리고 만다.
우리 모두 허리춤에 칼집 하나씩을 차고 살아간다.
날은 보이지 않지만, 언제든 뽑아들 수 있는 칼이다.
서로가 서로의 칼을 경계하며,
사회는 점점 병들어 간다.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필연적인 흐름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이 세상에 대해,
나는 잠시 멈춰 글을 써 내려가려 한다.
인간의 무한함을 스스로 알며 느끼는 방향이 아니라,
욕망과 욕심으로 잡아내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유’라 착각한다.
오늘날 인류 전체의 흐름은 더 빠르고, 더 많은 것에 맞춰져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심을 교묘히 자극하며,
우리는 그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많다는 것, 빠르다는 것은 곧 비교와 경쟁이다.
모두가 지금 자신이 최고이고 싶어 한다.
생명력에서 나오는 당연한 표현일 것이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할수록 우리는 뒤처지지 더욱 '밖'을 바라 보게된다.
기술 발전은 눈부시게 빠르고,
인터넷은 그보다 더 무서운 무한함을
작은 손바닥 크기의 기계 안에 담아낸다.
세상은 온통 “많음”과 “무한”으로 가득하다.
우리 의식 또한 무한하기에, 세상이 곧 나인 것 처럼 속는다.
그러나 내안에 '나'가 없기에 우리는 더 엄격히 붙잡으려 한다.
엄격히 붙잡는다는 것은, 이미 그만큼 편향되었다는 증거다.
요즘 매체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것보다 원초적인 것들을 선호한다.
알맹이 없는 자신의 모습에 이미 실증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 격투기,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
모두 우리의 본능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작은 실수라도 보이면
사람들은 누구보다 날카롭게 공격한다.
과정과 전체를 보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흐름에 따라 비난한다.
스스로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유 없이 아프기에,
우리는 더욱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오늘의 사회는,
서로가 칼을 품은 채 칼집에 숨기고 살아간다.
언제 꺼낼지 몰라 칼집을 만지작거리며,
서로의 칼을 경계한다.
같은 칼을 가진 이들끼리 모여 다른 칼을 비난하고 욕한다.
인터넷 속에서는 칼집조차 필요 없다.
익명성으로 무차별적으로 휘두른다.
우린 모두 칼집 속 칼을 들고 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내 칼을 스스로 들여다보는 일이다.
왜 날카로운지, 왜 이렇게 서 있는지를 알아차린다면,
칼은 사라질 것이다.
칼이 없으니, 그것을 숨길 칼집 또한 필요하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