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참 별나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스스로의 무한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무한함은 곧 불안과 불확실을 낳는다.
그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늘 무언가를 붙잡아 왔다.
잡아 통제했을 때 비로소 안정된 듯 느끼지만,
세상은 매순간 변화한다.
안정이라 믿었던 것은 결국 고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 또한 그렇다.
그 자체로 ‘불확실’이며, 부모에게 불안을 일으키는 존재다.
세상을 아직 모르는 그들은 자유롭게, 무한히 해집고 다닌다.
그래서 부모는 큰 부담을 느낀다.
육체적 수고보다도, 그 불확실이 주는 정신적 무게는 이루 말하기 어렵다.
아이 하나도 현재의 불확실이라면, 둘, 셋으로 늘어날수록 그 무게는 커져만 간다.
결국 우리는 삶에서 늘 해왔듯 ‘통제’라는 카드를 든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해,
불확실한 순간을 명확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나 통제는 인간의 본성을 역행한다.
아이는 본능 그 자체로 무한하다.
그 무한함을 통제로 가두려는 순간, 그것은 이미 '폭력'이 된다.
억제할수록 아이는 신경질을 내고,
세상이 싫어진다.
'별난 아이'가 아니라,
억제당한 본능이 만들어낸 반응일 뿐이다.
당신이 스스로의 무한함을 알지 못하기에,
아이 또한 당신처럼 별나게 만들려 하는 것이다.
단순히 “당신을 닮았다”는 말이 아니다.
그 아이는 당신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창의성을 보여주는 존재다.
그러나 동시에,
당신이 삶을 역행하며 얼마나 스스로의 본질을 모르고 살아왔는지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아이의 무한함을 품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부모 스스로 자기 삶을 돌아보고,
인간이란 무엇인지 탐구해야만 닿을 수 있는 자리다.
우리는 늘 이렇게 본능에 역행하며,
잡아내고 통제하며,
그것을 안정이라 믿고, 자유라 부르고,
꿈을 이뤘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